[공연리뷰] 올해의 창작산실 첫 무대, 백주희의 '당신을 배송합니다'

- '망작산실'이라는 오명, 올해는 과연 벗을 수 있을지

2025-01-10     김미영 무용평론가

[더프리뷰=서울] 김미영 무용평론가 = 2024 창작산실이 시작되었다. 1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선정작들이 이제 무대에 설 준비를 마치고 속속 공연소식을 전해왔다. 시간이 꽤나 지난 탓에 어느 팀이 선정되었었는지, 지원금은 어느 정도 규모였는지 다시 한번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순전히 나날이 깜빡깜빡하는 속도가 높아지고 있는 나 자신 때문이기도 하다.

무용부문 최종 7개 선정작은 와이즈발레단의 김성민 안무 <갓세렝게티(God : Serengeti)>(지원금 8천9백만원)를 비롯해 99아트컴퍼니 장혜림 안무 <피안의 여행자들>(6천만원), 류장현과 친구들 류장현 안무 <GRAVITY>(9천만원), 백주희 안무 <당신을 배송합니다>(7천1백만원), 언노운피에스(unknownps) 김판선 안무 <TIME IS SPACE SPACE IS TIME>(9천1백만원), 아트로버컴퍼니 최재헌 안무 <녕(寧), 왕자의 길>(9천만원), 창작그룹 괘념치(5 thoughts go) 문성연 안무 <로망(Roman)노망(老妄)>(6천만원)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이번 선정작들의 관람 포인트로 ‘춤과 움직임을 통해 본 사회문제, 인간에 대한 성찰’을 꼽았다.

김남진, 김세연, 김신아, 김진원, 박성혜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의 심사총평을 보자면 “한국무용 창작부문이 실연심의에 많이 참여했다는 점과 사회문제들에 대한 안무가들의 관심과 작품화가 큰 특징을 보여주었다. 노인치매와 택배노동과 같은 주제들을 무대화하면서 나름의 안무적 전략을 일반인 참여, 작업장에서 구현되는 움직임과 동선을 리서치한 작업들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룰 때 단순한 접근과 소재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우려가 동시에 작동되지만 나름의 준비성과 전문성으로 안무적 대안이 인상적이기에 추후로도 기대되는 내용을 보였다”라며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나타냈다. 이는 이미 선정 과정에서부터 다소 실험적인 심사였음을 시인한 셈이다.

이어 “한국춤을 기본으로 제안되는 지원작들도 단순한 서사 나열, 이미지 중심, 제의식의 첨예화가 다소 의구심이 들었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준비한 세심한 준비와 다양한 조언자들의 역할이 효과적으로 작동되리라는 신뢰가 들었다”는 내용이 첨언되었고, 마지막으로 “다양한 문제의식과 예술적 시도들, 도전적이고도 혁신적인 작업 방식들이 매우 인상적이었기에 무용 공연의 미학적 층위가 다양해지는 동시에 두터워지고 있음”을 긍정적으로 보았다는 내용이다.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은 모든 무용인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면서 동시에 무용인이라면 누구나 선정되기를 꿈꾸는 그런 무대이다. 그러다보니 관객의 입장에서도 우리 무용계의 흐름을 선도하는 참신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작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예산도 다른 사업에 비해 많은 편이고 준비기간도 1년이나 가질 수 있다. 정작 작품에 돌입하는 시간은 몇 개월에 지나지 않겠으나 쇼케이스 준비부터 갈무리하는 시간까지 1년이라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하긴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작품들도 안무가의 구상은 진작부터 이루어졌을테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긴 만큼 기대는 더욱 커질 수 밖에. 특히 이름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던, 혹은 안무 경험이 많지 않은 무용가이거나 대부분 무용수로 활동했던 이가 사실상 최초로 대극장에서 1시간 이상의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면 기대와 우려는 공존할 수밖에 없다.

창작산실의 첫 포문을 연 백주희가 그랬다. 창무회에서의 오랜 활동으로 무용수로만 알고 있던 그녀가 덜컥 창작산실에 선정되었다. 작품 내용은 매우 흥미로웠다. 무용수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대부분 레슨을 하는 데 비해 백주희는 쿠*의 새벽 배달을 해왔다고 한다. 2년 여의 시간 동안 동이 트기도 전부터 바삐 배송을 다녔던 그녀가 겪고 느꼈을 수많은 경험과 감정들이 작품에 표현된다면 얼마나 흥미로운 작품이 만들어질지 기대되었다. 코로나 이후 우리나라 하루 배달물량이 30억 건에 이른다고 하니 심사총평에서 언급된 것처럼 이만큼 시의적절한 소재가 또 있을까. 가혹할만한 업무량으로 죽음의 직업이라고 까지 불리는 배달기사들의 안타까운 소식들이 심심찮게 들려오니 충분히 다뤄볼만한 가치가 있다. 더구나 안무가가 <당신을 배송합니다>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그저 배달기사에 대한 내용 그 이상을 의도하지 않았겠는가.

배달을 다니면서 만나는 수많은 물품과 요청사항들을 보면 직접 대면할 일 없는 수취인을 일일이 만나는 것 만큼이나 그 사람에 대해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럴만도 하다. 우리 집에도 항상 오시는 기사님이 있는 것처럼 그녀도 항상 배달을 가는 집이 있을 터. 어떤 사람인지 대강 알 수도 있겠다 싶다. 더구나 그녀의 말처럼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더구나 집앞 주차도 어려운 곳에 생수 24리터에 신선식품까지 배송하는데, 요청사항이 “문닫고 가!!”라는 반말 명령어라면 수취인의 인격을 알아볼만도 하니 ‘물품배송’이 아닌 ‘당신배송’이 맞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걱정스러웠던 것은 이런 경험들이 춤이 되기 위한 필터를 어떻게 지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작품에서 그녀가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알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작품을 시작하기 전 선물백을 들고나와 추첨으로 객석에 선물을 배달한 것이 그나마 ‘배달’이라는 소재를 전달했다고 할까? 정작 작품에서는 보고 싶었던 그녀의 경험담을 소재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 삶의 철학이나 의미는 찾기 힘들었다. 영상에서조차도 배달기사의 애환이나 분주함, 생사를 넘나드는 죽음의 배송현황, 비인간적 대우 혹은 따뜻한 인간애를 보긴 어려웠다. 움직임은 처음엔 연극적으로 시작하다 이내 동작의 나열, 반복, 대열의 변화, 등장 무용수의 수적 변화 등에 집중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상자 대신 명절선물세트 가방을 사용한 것도 좀 특이했다. 거의 매일 택배를 받는 나로서는 한 번도 그 가방으로 받은 적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물류센터의 분위기를 내고자 했던 철조 파티션이나 천장에 드리워놓은 쇠사슬보다 상자 몇 개가 오히려 더 작품과 어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무엇보다도, 관객은 그녀의 배달 현장을 무대에서 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의 경험이라는 프리즘을 투과한 춤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각자가 삶에서 겪는 치열함이나 모멸감 혹은 인간애 등으로 아주 주관적이거나 확장된 해석들을 마음껏 쏟아놓기를 원한다. 그것이 춤이다. 상징적이고도 은유적인 움직임의 언어들을 각자의 삶으로 해석할 수 있을 때 춤은 비로소 가치를 갖는다.

어쩌면 이 작업이 처음부터 그녀에겐 버거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70여 분의 작품을 거금을 들여 만드는 것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중견 안무가들조차 20여 분 길이의 작품으로 쇼케이스에서 호평을 받은 후 60분으로 확장해 무대에 섰을 때에도 혹평을 받는 일이 많은 이유이다. 심사총평에 있는 ‘우려도 있지만 나름의 준비성과 전문성으로 안무적 대안이 인상적이었다’는 '나름의 준비성과 전문성'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좋은 작품을 선정해야 하는 것이 심사위원의 의무(물론 그것이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지만)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을 보면서 안무가의 자질과 그릇에 따라 적절한 지원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더불어 깨달았다. 그러니 전문 심사위원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는다. 서류와 인터뷰, 쇼케이스까지 거치면서도 쉽지 않은 일임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많은 공연들을 보고 다양한 무용가들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어야 그나마 분별이 가능하다. 안무가의 역량에 맞는 지원을 할 때 그 안무가는 더욱 성장할 가능성을 가진다. 지금 당장 큰 작품을 할 수 없는 안무가라도 작은 작품들을 통해 내실을 기한다면 언젠가는 훌륭한 안무가가 될 수 있다. 역량도 없이 큰 작품부터 시작해 거북한 소리부터 듣는다면 오히려 성장할 기회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번 작품은 주제선정과 연출의도가 매우 참신했다. 생계를 위해 새벽배송으로 땀흘렸을 백주희 안무가에게 박수를 보낸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이었고 2년간 그녀가 겪었을 다양한 경험은 때때로 그녀를 넘어뜨리기도 하면서 그녀를 성장시켰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이번 작품이 보완, 수정된다면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만드는 작품이 아니라 안무가 자신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집중했으면 좋겠다. 택배기사가 이토록 어렵다는 것을 말해 택배기사의 고충(현실적, 정신적)에 집중할 것인지 아니면 수취인들의 비인간적 태도에 집중해서 ‘당신을 배송하는 것’에 집중할 것인지, 무엇보다 택배 그 자체는 모티브로 하고 결국 춤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그려봤으면 좋겠다. 소재가 좋은 만큼 완성도를 갖추어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 이 작품은 백주희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꼭 60분 이상이 아니더라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