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드쿠플레 8년만에 내한공연 '샤잠!'

2024-10-05     이다연 기자

[더프리뷰=서울] 이다연 기자 = 상상력 가득한 복합예술공연의 선두주자, 프랑스의 연출가 겸 안무가 필립 드쿠플레가 대표작 <샤잠!>으로 8년 만에 다시 한국 팬들을 찾아온다. 드쿠플레는 춤, 연극, 서커스, 마임, 비디오, 영화, 그래픽, 건축, 패션 등을 뒤섞은 화려한 비주얼과 멀티미디어 효과로 공연예술의 미래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복합공연예술의 아이콘으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작업 스타일 때문에 ‘드쿠플르리’(Decoufleries: 드쿠플레의 것)'란 신조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그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올림픽 개막식으로 꼽히는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을 총연출했으며, 태양의 서커스의 <아이리스(Iris)> <파라무르(Paramour)>, 파리의 3대 카바레 중 하나인 크레이지 호스의 쇼 <욕망(Désirs)>의 연출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지난 1998년 가을 유네스코 국제무용협회(CID-UNESCO) 연례총회 참석차 처음 방문했으며 이를 계기로 1999년 예술의전당 초청으로 <샤잠>, 2000년 제3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 초청으로 세종문화회관에서 <트리통(Triton)>을 공연했다. 2014년과 2016년에는 LG아트센터 초청공연 <파노라마> <콘택트>가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2023년 에르메스 코리아 홈 컬렉션에서 ‘에르메스 퍼레이드’를 선보이며 그의 독특한 창의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EO5AHGxOS8 )

필립 드쿠플레가 10월 25-27일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 홀에서 공연할 <샤잠!>은 1998년 초연 이후 전 세계 주요 극장에서 200회 넘게 공연한 명작이자, 그가 이끄는 무용단 DCA 컴퍼니의 최고 히트작이다.

칸 영화제 50주년을 기념해 만든 ‘오리지널 융복합 공연’

<샤잠!>의 마법은 공연장 로비에서부터 시작된다. 커다란 털모자를 쓰고 화려한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지휘봉을 흔들며 퍼레이드를 펼치고, 북을 두드리며 트럼펫을 연주하는 라이브 밴드가 그들을 뒤따른다. 신나는 그들의 행진을 따라 객석으로 들어서면 관객들은 필립 드쿠플레가 창조한 기묘한 세계에 당도한다.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무용수들의 고난도 움직임과 거울, 액자, 영상 등을 활용한 시각효과가 함께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은 실재와 가상의 이미지가 혼합된 놀라운 순간들을 만나게 된다. 드쿠플레는 공연의 오프닝에 직접 무대 위에 오를 예정이며, 한국인 무용수 예호승이 통역이자 게스트 무용수로 함께 출연한다.

1998년 칸 영화제 50주년을 기념해 창작된 <샤잠!>에는 영화의 본질인 실재와 구분할 수 없는 가상의 이미지 및 아날로그 촬영기법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 있다. 거울, 또는 영상을 통해 중첩되는 무용수들의 몸은 어디까지가 허구이고 어디까지가 실제인지 분간할 수 없다. 드쿠플레는 이를 통해 실재와 가상의 벽을 허무는 일련의 시각적 실험을 시도한다. <샤잠!>은 오페라 가르니에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극장에서 공연됐다.

유쾌하고 환상적인 드쿠플레 월드로의 초대장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될 <샤잠!>은 필립 드쿠플레가 무용단 창단 35주년을 기념해 2021년 제작한 리뉴얼 버전이다. 드쿠플레는 초연에 함께 했던 무용수와 연주자들을 다시 불러모아 새로운 의미를 더해 작품을 새롭게 복원했다. 재탄생한 <샤잠!>은 2021년 파리 라 빌레트(la Villette)를 비롯해 프랑스 전역을 돌며 걸작의 귀환을 알렸다.

<샤잠!>은 창립단원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드쿠플레가 어떻게 하면 세월이 지나도 ‘순간의 예술’인 무용을 보존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20여 년 전 무대 위 스크린에서 촬영된 오리지널 <샤잠!>의 영상과 중년이 된 무용수의 실제 움직임을 동시에 감상하며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샤잠!>은 필립 드쿠플레라는 위대한 안무가의 역작을 부활시킴과 동시에, 춤과 춤을 기억하는 방식에 대한 필립 드쿠플레의 30여 년에 걸친 대답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매일매일의 일상으로부터의 시적 탈출을 꿈꾸며 스릴 넘치는 낯선 세계를 보여주는 것”을 창작 목표로 삼고 있는 필립 드쿠플레는 이번에도 모방할 수 없는 독창성과 기발한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쇼를 창조해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고 있는 관객이라면 <샤잠!>을 통해 드쿠플레가 창조해낸 낯설고 환상적인 세계로 여행을 떠나보자. 90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만큼 흠뻑 빠져들게 될 것이다.

필립 드쿠플레(Phillipe Decouflé)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은 모두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대체 이것이 무슨 장르인지, 그의 공연을 정의할 기존의 예술방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프랑스 언론은 세상에 없던 단어를 만들었고, ‘드쿠플르리(Decouflerie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드쿠플레의 방식’ '드쿠플레의 것들'이란 뜻의 이 신조어는 그의 창의적인 연출방식이 기존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어서 탄생한 것이다.

어린 시절 만화가가 되고 싶었던 필립 드쿠플레는 열다섯 살 때 보통의 정규 학교를 자퇴하고 팬터마임의 대가 마르셀 마르소(Marcel Marceau)가 설립한 국제마임학교에서 마임을 배웠다. 이 또한 금방 싫증이 난 그는 또다시 자퇴, 이번에는 아니 프라텔리니(Annie Fratellini)의 프랑스 국립서커스학교에서 서커스를 배웠다. 이후 머스 커닝햄(Merce Cunningham)에게서 현대무용을, 알윈 니콜라이(Alwin Nikolais)로부터 빛, 소리 등의 무대연출을 익히며 자신의 것으로 쏙쏙 흡수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다방면의 교육을 받은 그는 더 나아가 만화, 비디오, 그림자극, 영화 등 다채로운 장르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22세 젊은 나이에 설립한 무용단 DCA(Diversité, Camaraderie, Agilité)를 통해 스펀지처럼 습득해 온 다양한 장르를 자신만의 방식대로 과감히 섞기 시작하였다.

작품성과 예술성, 대중성까지 동시에 인정받은 드쿠플레는 2011년 캐나다의 세계적인 서커스단인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와 작업하게 된다. 꼬박 3년 반 동안 제작한 <아이리스(Iris)>는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코닥 극장에서 공연되었다. 2016년에 다시 한 번 태양의 서커스의 위촉을 받아 <파라무르(Paramour)>를 연출,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했다. 아울러 65년 동안 명성을 유지하며 프랑스 3대 카바레의 하나로 불리는 크레이지 호스 파리(Crazy Horse Paris)에서도 러브콜을 받아 <욕망(Désirs)>을 연출한다.

국내에서 드쿠플레가 다시 주목 받은 것은 2023년 ‘에르메스 퍼레이드’를 통해서였다. 에르메스 코리아 홈 컬렉션의 발표와 함께 제품들을 퍼포먼스와 연계한 ‘에르메스 퍼레이드’를 선보이며 그는 다시 한번 관객들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