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김준형 음악칼럼니스트 = 클래식 음악 애호가가 아니라도, 모차르트를 연기했던 배우 톰 헐스의 인상적인 웃음소리와, 시작과 함께 긴박하게 다가온 교향곡 25번의 서두로 영화 <아마데우스>는 우리 기억에 깊게 남아 있다. 이 <아마데우스>의 모든 음악을 연주했던 아카데미 오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네빌 마리너가 1958년 창단한 영국의 유서 깊은 실내악 단체다. 2016년 네빌 마리너 경이 서거하기 직전, 이들을 이끌고 삼성전자 인재개발원 콘서트홀에서 들려줬던 모차르트의 교향곡 연주는 필자에게 평생 기억될 참으로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다. 이후 음악감독을 맡았던 머레이 페라이어의 지휘로 들려줬던 하이든 교향곡도 고전파 음악의 정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다. 당초 지휘자 없는 앙상블을 꿈꾸며 결성된 단체답게 여유로우면서도 치밀한 앙상블, 특히 아름답기 그지없는 현악합주가 일품이다.
이번에는 얼마전 모차르트의 협주곡 20번과 23번을 함께 녹음한 조지아 출신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시빌리와 함께 내한해 같은 레퍼토리로 아트센터 인천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돌연 취소되어 아쉬움을 크게 남겼다. 이들은 오케스트라만 내한하여 예정과 다른 곡목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연주를 들려주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들은 창립자 네빌 마리너와 함께 다양한 레퍼토리를 소화하며 엄청난 녹음을 남긴 바 있는데, 어느 것 하나 할 것 없이 명연주로 정평이 나 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29번>으로 연주를 시작하였다. 이들이 네빌 마리너와 함께 필립스(PHILIPS)의 아날로그 녹음 기술이 만개했을 시절 남긴 연주에 비견할 순 없지만, 무척 자연스러운 연주를 들려주었다. 특히 느린 악장에서 숨죽인 현의 고적한 사운드가 이들의 전통을 웅변해 주었다. 지휘자 없이 악장 벤자민 길모어(유서 깊은 필하모니아의 악장이었고, 지금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리더다)의 보잉에 맞춰 전개되는 음악이, 정교함과 파격적인 효과 면에서 아쉬운 점이 없진 않았으나, 그들만의 음악성을 보여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느린 악장에서 숨죽인 현의 고적한 사운드가 이들의 전통을 웅변해 주었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역시 이들만의 전통을 갖고 있는 곡목. 여러 번 명반을 남겼으나, 영국을 대표하는 트럼페터 존 윌브라함과 함께 남긴 레코딩이 유명하다. 이번에는 이들의 수석 주자인 마크 데이비드의 협연. 위압적이지 않고, 자연스럽고 격조있는 솔로 연주에 관악주자들과 하모니가 멋졌다. 이처럼 아름답게 울리는 트럼펫 연주를 언제 들었나 싶었다.
2부는 멘델스존의 <핑갈의 동굴> 서곡으로 시작했다. 지휘자 없이 연주하기 어려운 작품인데, 저역대의 현악 연주가 깊고 강력하면서 뭉클했다.
마지막은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세레나데>. 아르고(Argo) 레이블에 지금도 회자되는 유명한 오디오 파일 음반을 남긴 바 있다. 녹음은 다소 어둡고 진한 음색으로 포착되었으나, 이번 연주는 밝고 따스한 음색이 아름다웠다. 앙코르로 들려준 시벨리우스 <벨사자르의 축제> 가운데 녹턴은 플루트 수석 마이클 콕스의 화사하면서도 강렬한 연주가 이끌며 신산한 여운을 남겼다.
비록 예정과는 다른 연주회였으나, 네빌 마리너 경과 이 악단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을 갖고 있는 음악 애호가들에게는 큰 선물이었다. 이들이 오랜 세월 동안 연주했던 시그니처 레퍼토리만으로 구성된 콘서트를 통해 그 시절에 대한 기억과 향수, 그리고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