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베로나 페스티벌의 원조를 재현하다 –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공연리뷰] 베로나 페스티벌의 원조를 재현하다 – 아레나 디 베로나 '투란도트'
  •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4.11.16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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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한혜원 음악칼럼니스트 = 지난 10월 12-19일, 잠실 올림픽체조경기장 KSPO 돔에서 올해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 개막작이었던 <투란도트>가 공연되었다. 한국-이탈리아 수교 140주년 및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 솔오페라단과 아레나 디 베로나가 공동으로 선보인 무대였다.

이번 <투란도트> 프러덕션은 2019년 세상을 떠난 프랑코 제피렐리의 연출작이다. 아레나 디 베로나의 예술부감독인 스테파노 프레스피디가 재연출을 맡았다. 지휘 역시 아레나 디 베로나 오페라 페스티벌의 음악감독 다니엘 오렌이 맡아 베로나의 <투란도트>를 완벽하게 재현했다.

베로나의 무대 규모를 그대로 재현한 '투란도트' (사진제공=솔오페라단)
베로나의 무대 규모를 그대로 재현한 '투란도트' (사진제공=솔오페라단)

베로나에서 전부 공수해온 무대는 웅장하고 화려한 규모를 자랑했다. 지휘자 다니엘 오렌은 뉴서울필하모닉과 호흡을 맞추었고, 위너오페라합창단이 합창을 맡았다. 송파구립소년소녀합창단도 청아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보탰고, 아레나 디 오페라의 연기자들이 무대에 올랐다. 일반 오페라보다 훨씬 많은 합창단원 및 무용단, 연기자들이 투입되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었다. 수많은 이들이 디테일하게 움직이며 춤과 무술이 극적 효과를 높여 무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드라마틱하게 울려 퍼졌다.

아쉬운 점도 있다. 첫째, 장소의 특성상 마이크를 사용한 것인데, 인공적인 볼륨업은 감동을 불러일으키기 어려웠다. 그 점을 감안하고도 음악은 훌륭했다. 또 하나, 장소의 안타까움이다. VIP석이 55만 원에 이르렀는데 체조경기장이다 보니 단차 없이 배치한 간이의자에 앉아서 봐야했다. 의자의 불편함 역시 어쩔 수 없었으나 입장권 가격에 비해 좌석의 편안함이 아쉬웠다. 베로나 페스티벌이 열리는 아레나는 천정이 뚫린 돔인데, 체조경기장은 실내 체육관인지라 꽉 막혀서 답답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천시를 고려해서 내린 최선의 결정이리라 짐작되었다. 이밖에 좌석을 옮겨 다니는 이들을 통제하는 요원이 없어서 어수선하기도 했다. 실내가 넓고 주위가 올림픽 공원이다보니 잡다한 소음도 있었다.

투란도트의 정점은 두 사람의 결혼이 아닌 류의 죽음이다(사진제공=솔오페라단)
'투란도트'의 정점은 류의 죽음이다 (사진제공=솔오페라단)

확실히 <투란도트>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인물은 류다. 사랑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류. 원래 희곡에는 없었던 류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비극을 딛고 솟아오른다. 원래 희곡은 칼라프가 투란도트의 수수께끼를 풀고 결혼하는 것이었다.

류를 맡은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는 피아니시모를 기막히게 구사했다. 류의 노래는 사실 피아니시모에 달려 있다. 끊어질 듯한 피아니시모 속에는 나라 잃은 왕을 모시는 강단과 단 한 번의 눈길을 준 칼라프에게 목숨을 거는 여인의 용기가 담겨 있다.

칼라프 역의 마틴 뮐레의 음성은 단단한 스핀토 테너였다. ‘공주는 잠 못 이루고’에서 몽환적인 합창을 뚫고 나오는 옹골찬 소리는 화려하고 강렬했다.

날이 선 칼처럼 날카로운 투란도트지만 류의 죽음으로 심경의 변화를 맞는다(사진제공=솔오페라단)
날이 선 칼처럼 날카로운 투란도트지만 류의 죽음으로 심경의 변화를 맞는다 (사진제공=솔오페라단)

투란도트를 노래한 우크라이나 출신의 소프라노 옥사나 디카는 얼음공주 같았다. 서늘한 음색과 팽팽한 호흡은 듣는 이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투란도트>를 볼 때마다 느끼지만, 투란도트 역 성악가에게 요구되는 연기력이란 정말 어려운 것이다. 참 말도 안 되는 심경의 변화를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남자라는 존재를 혐오하고 조상이 당한 비극을 되갚으려 작심한 공주가 3막의 키스 이후로 갑자기 패배주의자처럼 변하다가 급기야 사랑한다고 외치니 어색하기 마련이다. 그래도 옥사나 디카는 꽤 자연스럽게 넘어간 것 같다.

티무르 역의 페루치오 푸를라네토도 든든한 저음으로 중심을 잡아주었고, 핑, 팡, 퐁 역의 엘리야 파비안, 리카르도 라도스, 그레고리 본파티도 캐릭터에 딱 맞는 음색과 맛깔 나는 연기로 무대를 누볐다.

핑, 팡, 퐁은 무거운 작품에 훌륭한 감초 역할을 한다(사진제공=솔오페라단)
핑, 팡, 퐁은 무거운 작품에 훌륭한 감초 역할을 한다 (사진제공=솔오페라단)

솔 오페라단이 아레나 디 베로나의 프러덕션을 고스란히 가져와 재연한 시도는 예년과 다른 스케일이라 놀라웠다. 지휘와 연출, 성악가들 뿐 아니라 무대, 의상, 기술진 모두 원조 그대로 투입한 대작이었다. 야외 오페라라고 하기는 어려운, 실내 돔에서의 공연이라 원조의 느낌을 완전히 살리기는 어려웠으나 한국 무대에서 이런 스케일의 대작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호사를 누린 느낌이었다.

좌석에는 오페라라는 장르가 생소한 듯 이야기를 하는 관객들이 더러 보였다. 오페라나 클래식 음악에 친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이 무대가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은 분명하다. 이벤트 성 대작에 비싼 값을 치르고 오페라 관람의 길에 들어선 이들이 규모가 작더라도 수준 높은 다른 무대에도 꾸준히 발걸음하도록 하는 일은, 솔 오페라단을 포함한 모든 오페라단들이 짊어져야 할 과제다.

(사진제공=솔오페라단)
공주의 등장 (사진제공=솔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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