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무용 다시보기-16] 속 시원히 알려주는 트릭의 재미! - '밤길'과 '알쏭달쏭'
[신무용 다시보기-16] 속 시원히 알려주는 트릭의 재미! - '밤길'과 '알쏭달쏭'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4.12.05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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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밤길>과 <알쏭달쏭>은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의 정체를 가벼운 트릭으로 감췄다가 그 비밀을 알려주는 과정의 춤이다. 관객은 춤추는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혹은 한 명인지 두 명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집중한다. 복잡하지 않은 트릭은 어딘가 허술해 보일 정도라, 몇 개의 춤사위를 보노라면 누구든 쉽게 춤꾼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다. 비밀이 발각된 이후에는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들끼리 그저 웃고 즐기면 된다. 자극적이지 않은 주제와 서사, 그리고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에 간단한 트릭의 재미가 더해진 <밤길><알쏭달쏭>. 두 작품은 사적 자료가 충분치 않고 아직 다각적으로 연구되지 못한 경향이 있으나, 신무용의 다양한 면면을 탐색하는 데 빠뜨릴 수 없는 춤이라 하겠다

손주 업고 밤길 걷는 할아버지

<밤길>은 할아버지가 어린 손녀를 등에 업고 어두운 길을 걷다가 일어나는 사건들을 묘사한다. 손녀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있거나 일시적으로 아파서 스스로 걷는 것이 여의치 않다. 연로한 할아버지 역시 몸이 가볍지 않지만, 어여쁜 손녀가 행여 다칠세라 귀하게 업고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하나의 몸으로 할아버지와 손녀를 연기하는 무용수는 실물만큼이나 커다랗게 제작된 할아버지 인형을 가슴과 허리에 매고 등장한다. 상체는 어린 여자아이를 연기하느라 색동저고리에 땋은 댕기머리이고, 하체는 남자 노인을 연기하느라 무채색의 풍성한 바지, 그리고 짚신 차림이다. 얼굴은 뽀얗게 만들어진 손녀 탈을 쓰는 버전이 있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맨얼굴로 추는 버전이 있다. 한 손으로 할아버지 인형의 어깨를 끌어안고 다른 손으로는 청사초롱을 들어 할아버지 등에 업힌 손녀 모습을 감쪽같이 연출한다.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은 서로 다른 질감으로 완벽하게 분리되는데, 하체는 손녀의 무게를 지탱하는 할아버지의 묵직하고도 노련한 걸음걸이고, 상체는 할아버지 인형에 살짝 기대어 천진난만하게 주변을 둘러보는 아이의 몸놀림이다.

‘밤길’(사진제공=리틀엔젤스 예술단)
‘밤길’ (사진제공=리틀엔젤스 예술단)

등에 업힌 아이는 본질적으로 어른의 움직임으로부터 독립할 수 없는 처지다. 하체의 움직임이 필요치 않고 어른의 움직임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다. 아이를 업은 어른 역시 두 팔로 아이의 엉덩이를 받쳐야 하므로 상체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다. 그러므로 아이와 할아버지가 가슴과 등을 서로 맞붙인 채 상체와 하체의 움직임을 내어주는 이 자세는 12역을 수행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이다. <밤길>의 무용수는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할아버지 인형을 놓지 않고 두 개의 자아를 표현한다. 인형을 직접 잡고 춤추게 만든다는 점에서 인형극의 유형으로 볼 수도 있겠다.

작품의 구성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장은 손녀를 업은 할아버지가 등장하여 평탄한 길을 걷는 듯 무대를 가로지른다. 도중에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만나 걸음걸이의 속도나 무게가 변화하기도 한다. 냇가에서 징검다리를 건널 때는 다리를 크게 들어 풀쩍 뛰는데 손녀의 몸을 연기하는 무용수의 상체가 사정없이 휘며 관객을 아찔하게 만든다. 두 번째 장은 피곤해진 할아버지가 자리에 앉아 잠시 쉬는 모습, 심심해진 손녀와 숨바꼭질을 하며 장난치는 모습, 갑자기 들이닥치는 비에 놀라 허둥대다 넘어지는 모습들이 해학적으로 묘사된다. 세 번째 장은 손녀의 재롱에 활기를 얻은 할아버지가 덩실거리며 춤추다가 잠이 든 손녀와 함께 퇴장한다. 퇴장했던 무용수는 다시 무대로 나와 인사를 하는데, 얼굴에 쓰고 있던 손녀 탈을 벗고 할아버지 인형의 머리를 번쩍 뽑아 트릭의 실체를 속 시원히 보여주며 박수를 받는다. 대부분의 관객은 작품 초입 혹은 중반부터 1인 2역의 실체를 알아챘을 것이고, 비밀을 알면서 감상했기에 무용수의 연기력과 움직임 운용 능력에 더욱 감탄하며 편히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밤길>은 관객을 완벽히 속이는 마술쇼 혹은 판토마임을 곁들인 연극과 차별되며, 무용 작품이자 연희의 성격을 강하게 가져간다.

작품의 음악은 경쾌한 민속곡 여럿을 빠르게 전환하는 방식으로 배치하였다. 기본적으로 늴리리야 3소절, 군밤타령 3소절, 타악 휘모리 12장단, 꼭두각시 2소절이 활용된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전승 집단마다 악기와 곡 배치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무대는 밤의 풍경을 연출하기 위해 어둑한 조명을 쓰다가 비가 오는 등의 날씨 변화, 인물의 심경 변화에 따라 조명을 달리할 뿐 그 외의 특별한 연출은 부재한다. 평탄한 길, 오르막길, 내리막길, 냇가의 징검다리, 쉬어 가는 자리 등의 공간 이동은 오로지 무용수의 춤과 연기를 통해 관객의 상상에 맡겨진다. 자연히 무용수의 동선과 위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감정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무대 앞쪽에서 춤을 추고, 평탄한 길을 걸으며 다양한 춤사위를 보일 때는 옆 모습을 보여주며 좌우를 가로질러 이동한다. 또 징검다리를 휘청거리며 건너고 넘어질 때는 뒷모습을 비스듬히 보여주며 둥글게 원을 그려 이동한다.

작품에 나타나는 동작은 걷기, 앉기, 건너뛰기, 다리 떨기, 넘어지기, 손으로 눈 가리기, 이마의 땀 닦기, 청사초롱을 움직여 이리저리 비추기, 주먹으로 두드려 안마하기 등으로 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 동작의 조합이다. 움직임에 내재한 심층적 의미를 해석하거나 상징성을 탐색하는 것은 작품 의도와 맞지 않고, 쉽고 간단하게 설정된 인물과 상황의 표현을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 적절하다. <밤길>이 관객의 공감과 감동을 일으키는 지점은 누구나 삶에서 경험하는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일상의 면면이기 때문이다. 몸이 맘처럼 가뿐히 움직여지지 않는 데도 손녀를 절대 내려놓지 않는 할아버지의 모습, 상체와 하체가 서로 종속된 만큼 애착도 강하게 느껴지는 둘의 관계, 피곤해 보이는 노인과 기운 찬 어린아이의 상반된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부모와 자식의 관계, 노년의 회한, 유수같은 세월을 상기시킨다.

박성옥, 그리고 리틀엔젤스의 <밤길>

<밤길>의 안무와 연출은 한국 근대의 저명한 무용음악가이자 안무가인 박성옥(1908-1983)이 맡았다. 박성옥은 1세대 신무용가 최승희와 조택원, 남방계 무용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장추화의 무용발표회에서 음악 일체를 담당했으며, 최승희 전속 악사라 불리기도 하였다. 또 민속춤, , 연기를 결합한 무대로 성공가도를 달렸던 여성국극의 인기 레퍼토리 <햇님과 달님>(1949), <가야금>(1951) 등의 음악을 편곡했다. 박성옥은 6.25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피난하여 대한음악무용연구소를 개설하였는데 당시 어린이 중심의 무용작품을 활발히 발표하였고, 이러한 활동은 이후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초기 레퍼토리 창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리틀엔젤스 예술단은 1962년 선화어린이무용단으로 창단되었으며 국내 및 해외 순회공연을 통해 민간 평화사절단의 역할을 현재까지도 이어오고 있는 단체이다. 박성옥은 리틀엔젤스 예술단의 초대 단장 신순심과 협력하여 <부채춤> <꼭두각시> <시집가는 날> <장구춤> <농악> <꽃의 향연> <강강수월래> 등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켰다. <밤길> 역시 박성옥이 안무하고 작곡하였으며 1960년대 리틀엔젤스 단원이었던 이숙향(국립무용단 지도위원, 삼성무용단 단장 역임)에 의해 1968년 초연되었다.

박성옥은 국악기를 개량하여 음량을 확장하고 색다른 소리를 내는 것에 관심이 많아, 명주실을 꼬아 만들었던 산조 가야금을 철사 혹은 구리줄로 바꿔 철금이라 명명하고 <밤길> 음악에 적극 활용하였다. 과거의 전통공연은 실내 혹은 아담한 규모의 야외 무대에서 주로 이뤄졌으므로 그에 맞는 음량과 음색을 내는 악기들이 활용되고 있었는데, 근대 이후 큰 무대와 멀리 앉은 관객을 아우를 수 있는 공연 형식 및 악기의 등장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서구식 무대에서 무용 동작의 범주와 호흡의 크기가 확장될 필요성을 느낀 무용가들이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신무용 태동에 영향을 미쳤던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밤길>은 이후 1970년대 국립무용단, 1990년대 서울시립무용단에 의해 활발히 연행된 바 있으며 2013년 사단법인 대한무용협회에 의해 12호 명작무(이숙향)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밤길’(사진제공=리틀엔젤스 예술단)
‘밤길’ (사진제공=리틀엔젤스 예술단)

여성국극에서 밤길보존회로 이어지는 <밤길>

<밤길>의 또 다른 전승 갈래로서 여성국극단 출신 이소자(본명 이영희)로부터 이어지는 흐름이 있다. 1960년대 이후의 신무용은 여성국극단, 국립무용단 및 각 지역의 공공무용단, 그리고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같은 어린이무용단의 공연 레퍼토리로서 흡수되었다. <밤길>을 안무한 박성옥 역시 여성국극단의 레퍼토리 음악을 작곡하는 등 밀접하게 교류하였으며, 1952년 창단된 햇님여성국극단의 배우로 활약했던 이소자가 박성옥으로부터 <밤길>을 사사하여 체계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소자는 국극단 레퍼토리였던 <바보온달> <마의태자> 등에서 악역을 주로 맡으며 실감나는 연기실력으로 인기를 얻었던 배우다. 그는 1960년대 초반 국극단이 해체된 이후인 1974년 하와이 호놀룰루로 이민하였다가 2009년 완전히 귀국하였으며 여성국극의 부활을 위해 국립국악원에서 <춘향전>을 올리고, 남원에서 '햇님여성국극보존회'를 출범하는 등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흐름에서 전통가면무 <밤길>을 제자 유원숙에게 전수하고 유원숙은 2017년 '전통가면무 밤길보존회'를 설립하여 맥을 잇는 중이다. 이 기관의 공연 영상에 의하면 독무로 추는 것은 물론, 여러명이 함께 추는 군무로 재구성한 활동 역시 볼 수 있다. 이들의 <밤길>은 보다 해학적이며 관객과 즉흥적으로 소통하며 연기하는 특성이 강하다. 또 얼굴에 탈을 쓰지 않는 리틀엔젤스 버전과 달리 손녀 얼굴탈을 착용한다. <밤길>은 탈과 인형을 활용하여 인물의 특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황해도 강령탈춤의 영감-할미 과장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밤길보존회가 전승하는 <밤길>에서 특히 정제되지 않은 탈놀이의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소자의 '밤길' (2013.10.15. 서울남산국악당)(사진 제공=ArtsKorea TV 영상캡쳐)
이소자의 '밤길' (2013.10.15. 서울남산국악당)
(사진 제공=ArtsKorea TV 영상 캡처)

남자일까? 여자일까? 순식간에 전환되는 성별과 춤

<알쏭달쏭>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는 무용수 한 명이 남자 역할과 여자 역할을 모두 취하는 1인 2역의 춤이다. 얼굴에는 여자 탈을, 뒷통수에는 남자 탈을 쓴 채 앞모습과 뒷모습을 번갈아 보여주며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남자에서 여자로, 여자에서 남자로 전환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빠르게 이동하며 춤을 추다가, 반바퀴 휙 돌아 탈과 의상이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남자 탈이 앞을 향할 때는 힘차고 장난스럽게 양쪽 팔과 다리를 크게 벌려 뛴다. 반면 여자 탈이 앞을 향할 때는 가녀리고 새침하게 다리는 모아서 뛰고, 검지 손가락을 뺨에 찍어 애교를 부린다. 몸의 앞면과 뒷면 중 한쪽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상하체를 대각선으로 비트는 등의 입체적인 형태는 나타나지 않고, 전반적으로 납작한 춤사위를 구사한다.

<알쏭달쏭>의 움직임, 의상, 인물의 관계를 볼 때 어린이 무용인 <꼭두각시><처녀총각>과 유사한 부분이 많은 점을 알 수 있다. 장난기 많은 남자가 여자를 놀리고, 여자는 토라져서 울다가 다시금 화해하여 즐겁게 노는 서사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추는 다수의 신무용 작품에서 발견되는 특성이다. 다만 <알쏭달쏭>은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한 명이 맡고 실제 연기하는 무용수의 성 정체성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성 역할을 횡단하는 발칙함과 풍자적 태도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정인방-은방초-서영님으로 이어지는 <알쏭달쏭>

정인방, 은방초, 서영님으로 이어지는 <알쏭달쏭>은 '앞뒤탈춤'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과 함께 전승되고 있다. 국립무용단 초대 단원이었던 정인방은 <알쏭달쏭> <신로심불로> <시집가는 날> <향로>와 같은 신무용 계열 창작춤을 발표하고 <살풀이춤> <호남검무>와 같은 민속춤까지 두루 섭렵한 무용가다. 정인방의 제자 은방초 역시 춤의 유형을 가리지 않고 학습한 뒤 전주에 무용연구소를 열어 후학 양성에 힘썼고 국립무용단의 정기 레퍼토리 공연에도 다수 출연하였다.

은방초는 사람들이 단번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새로운 춤을 만들고자 전통적인 탈춤에 변화를 가해 <알쏭달쏭>을 창안하였다고 말한다. 미주한인 이민사 인터뷰에서 그는 "전통은 요즘 사람들에게 안 통하니까 탈춤을 가지고 현대화, 무대화를 했어요. 춤 하나 가지고 남자 역할, 여자역할을 하기 위해 돌아서서 옷을 벗으면 여자가 되고, 옷을 입고 탈을 들면 남자가 되는 방식으로 창작을 했어요."라고 말한다. 은방초의 춤 활동에서 같은 춤 작품이라도 남자 복장으로 춤을 춘 버전과 여자 복장으로 춤을 춘 버전이 각기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춤과 연결되는 고유한 성 정체성을 돌파하고 보다 자유로운 예술 표현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은방초의 제자 서영님은 현재 은방초춤보존회 이사장으로서 스승이 창안한 춤 작품들을 복원하고 역사적, 미적 가치를 탐색하고자 재구성, 재안무의 시도를 다년간 지속하고 있다. <알쏭달쏭>의 경우 남자 3, 여자 3명의 춤을 통해 코믹하면서도 역동적인 무대를 구성한 바 있다.

은방초의 '앞뒤탈춤' (사진제공=서영님 은방초춤보존회이사장)
은방초의 '앞뒤탈춤'
(사진제공=서영님 은방초춤보존회이사장)
서영님의 '앞뒤탈춤' (2003. 국립국악원 예악당)(사진제공=서영님 은방초춤보존회이사장)
서영님의 '앞뒤탈춤' (2003. 국립국악원 예악당)
(사진제공=서영님 은방초춤보존회이사장)
서영님의 '앞뒤탈춤' (2003. 국립국악원 예악당)​​​​​​​(사진제공=서영님 은방초춤보존회이사장)
서영님의 '앞뒤탈춤' (2003. 국립국악원 예악당)
(사진제공=서영님 은방초춤보존회이사장)

배구자-배한라-매리 조 프레실리로 이어지는 <알쏭달쏭>

<알쏭달쏭>을 전승하는 또 다른 맥으로 현재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소재한 한라함무용연구소를 들 수 있다. 이 곳은 배구자의 친척으로 알려진 배한라에 의해 1960년 창립되었으며 현재 독일계 미국인 매리 조 프레실리(Mary Jo Freshley)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한라함무용연구소는 특정 유형의 한국춤을 전승하기 보다는 궁중정재, 민속춤, 종교의식춤, 신무용 계열 창작춤, 전통타악 연주 작품까지 두루 섭렵하며 전승 및 공연하고 있다. 특히 배한라가 무용연구소의 소장으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민요를 무용음악으로 삼아 한국적 소재를 서사화한 <군밤타령> <꼭두각시> <노들강변> <노인춤> <도라지타령> <무당춤> <아리랑> 등의 신무용 계열 창작춤 활동이 두드러졌는데 <알쏭달쏭> 역시 이들과 유사한 유형으로 안무된 작품이다.

메리 조 프레실리의 '알쏭달쏭'(1987.3.14. 하와이 동서문화센터)(사진제공=Mary Jo Freshley)
매리 조 프레실리의 '알쏭달쏭'
(1987.3.14. 하와이 동서문화센터) (사진제공=Mary Jo Freshley)

한편 로스앤젤레스(LA)에서 무용교육 및 공연으로 활동하는 이정임무용단은 박금슬 선생으로부터 사사한 <알쏭달쏭>을 전승하고 있으며, 뉴저지 팰리세이드 파크에 위치한 춤누리한국전통무용단(단장 안은희) 역시 공연 레퍼토리로 <알쏭달쏭>을 섭렵하고 있다. 이처럼 <알쏭달쏭>의 전승활동이 국내보다 해외 디아스포라 중심의 무용단 및 무용교육기관에서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이유는 신무용 발전에 기여한 무용가들 중 여럿이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 따른 예술활동의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월북, 도미, 도일하여 한국을 떠난 경우가 많았다는 사실과 연결된다. 이들의 춤 활동은 이민 후에도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았고, 주변 지역에 거주하는 한인 교포들의 애정과 호기심으로부터 지지 받으며 현재까지 명맥을 잇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신무용의 행방

<밤길><알쏭달쏭>이 공통적으로 가진 특성을 정리해보면, 경쾌하고 빠른 안무 리듬, 가볍게 즐길 수 있는 트릭,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재와 자연스러운 감정선 등이다. 이러한 특성은 성인 무용가들의 정제된 테크닉으로 구사될 수도 있겠으나, 어린이부터 청소년에 이르는 학생들이 쉽고 재미있게 무용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서도 활용도가 높다. 실제로 <밤길>을 안무한 박성옥은 대한음악무용연구소와 리틀엔젤스 예술단에서 어린이를 위한 무용작품 창안에 힘썼으며, <알쏭달쏭>을 안무한 은방초 역시 무용학원을 운영하며 어린이 수강생들이 학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노력을 쏟았다. 즉 1960년대 이후 두각을 드러낸 무용가들은 신무용의 방법론을 활용하여 어린이 교육 및 후학 양성에 주의를 기울였으며 이것은 최승희, 조택원, 배구자와 같은 1세대 신무용가들이 개인의 안무철학 탐색에 주목하며 개인발표회를 열거나 해외 순회공연 활동에 무게를 뒀던 흐름과 차별되는 부분이다.

한국무용사의 흐름에서 1960년대는 다양한 패러다임이 정치적, 문화적으로 얽혀 격동을 일으킨 시기다. 문화재 보호법의 시행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유산원 관리)로 지정된 춤과, 지정되지 못한 춤으로 새로운 갈래가 생겼으며 보다 오래된 전통춤에 주목하는 활동 경향이 생겼다. 무용가 개인의 창의적, 예술적 활보에 무게를 뒀던 신무용은 공공무용단의 레퍼토리 창안과 어린이 무용교육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취하게 되었다. 또한 적지 않은 수의 신무용가들이 정치적, 경제적 상황에 의해 해외로 이주하여 디아스포라 중심의 무용집단이 구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역사의 중심에 신무용이 자리한다. 한국춤에 대한 객관적이고 전체적인 시각을 취하기 위해서는 보다 다각적이고 포용적인 신무용 연구가 활발히 전개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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