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국립극단이 민간 극단들과 상생하고 더 많은 관객들에게 뛰어난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2024 기획초청 Pick크닉>을 선보인다. 올해를 시작으로 앞으로 3년간 여름 및 겨울 시즌 동안 이어질 ‘기획초청 Pick크닉’은 국립극단이 고심해 직접 고른 작품들을 관객 앞에 즐거운 소풍처럼 펼쳐 보인다는 의미를 담았다.
국립극단은 민간극단에 공연 제작비를 지원하고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의 공연장 제반 시설과 무대 사용을 제공한다. 국립단체의 역할로서 한국을 대표할 공연 레퍼토리의 성장을 돕고 연극계를 비롯해 민간 공연계, 문화예술계와 호흡을 같이하겠다는 취지다.
국립극단 박정희 예술감독은 “공연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관객을 만나지 못하면 그 생명력을 잃는다”라며 “뛰어난 작품들이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지 않도록 더 많은 관객 앞에서 그리고 더 많은 무대 위에서 계속 숨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국립극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국립극단의 자체 제작뿐만 아니라 민간 창작단체의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별, 소개함으로써 명동예술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선택지도 다양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증된 작품이라는 점에서 초심자도 연극의 즐거움을 느끼고 연극적 경험을 확장할 수 있으니 잠재적 관객층 발굴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국립극단은 기대하고 있다. 여가활동과 예술소비가 활발한 여름과 겨울철에 집중해 사업을 진행, 명동예술극장에 더 많은 관객의 발걸음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첫 라인업으로는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연극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 이자람 판소리 <노인과 바다>가 선정됐다. 세 작품은 대중소설, 구술문학, 판소리에 근간을 둔, 우리말의 번뜩이는 재치와 솜씨가 돋보이는 수작들이다. 또한 시대에 맞서거나 시대를 품고 살아온 굳세고 진심 어린 한 편의 인간서사로, 오늘의 관객들에게 삶의 용기와 위로를 전할 것이다.
K-드라마의 원조, '일제강점기를 강타했던 막장 드라마' -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가장 먼저 무대에 오르는 작품은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김말봉 원작, 정안나 연출)다.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이 작품은 지난해 공연 당시 대학로에 ‘통속마니아’ ‘통속인’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통속 붐’의 열광적인 팬덤을 만들어냈다. 그해 한국연극 베스트 7, 공연과 이론 올해의 작품상, 한국여성연극협회 올빛상 연출부문 등을 수상하며 선풍적 인기와 작품성을 함께 인정받았다.
국악을 재해석한 퓨전 밴드 더튠의 라이브도 함께해 극의 활기를 더한다. 옴니버스로 김말봉의 대표작 세 편을 이어가는 연출적 기지도 뛰어나다. 1930년대 무성영화 변사와 만담가를 김말봉과 그의 대표작을 소개하는 해설자들로 등장시켜 세 편의 이야기 흐름에 자연스러움을 더한다. 만담꾼과 변사 두 사람이 주고받는 찰떡같은 호흡의 티키타카도 또 하나의 볼거리.
극단 수수파보리의 정안나 대표가 김말봉의 생애와 대표작을 중심으로 대본을 재창작하고 연출했다. 2022년 이해랑연극상을 수상한 남명렬을 비롯해 김영선 김정우 이한희 신정은 이진철 김하진 안병찬 임윤호 이태희 김단경 배우가 코믹하면서도 애처로운 질감의 연기로 열연을 펼친다. 8월 18일 공연 종료 후에는 드라마투르그 배선애의 사회로 김말봉 전문 연구자인 국문학자 진선영, 연출 정안나, 배우 이태희와 김단경이 참석하는 예술가와의 대화를 진행한다.
'실화라고는 믿기 힘든 그날의 기록' 코러스 연극의 정석 -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
8월 31일부터 9월 8일까지는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진주 작, 김희영 연출)이 무대에 오른다. 제41회 대한민국연극제 대상, 연출상, 연기상, 최우수연기상 4관왕을 거머쥐며 제8회 이집트 샬름엘셰이크 국제청년연극제 대상과 연기상 수상, 제12회 루마니아 바벨 페스티벌 초청작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그 우수성을 입증한 작품이다. 2018년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으로 선정돼 2019년 초연됐던 공연은 올해 예술경영지원센터 2024 공연예술 유통 공모사업에 뽑히기도 했다.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은 극작가 진주가 한국전쟁 당시 전북 임실군 옥정호 인근 배소고지에서 벌어진 양민학살 생존자 200여 명의 구술기록을 토대로 창작한 작품이다. 특히 역사의 전면에서 소외된 여성의 목소리로 전쟁을 복기했다는 점에서 기존의 전쟁극들과 차별화된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무대미술과 배우들의 흠잡을 데 없는 연기 역시 극을 든든히 받치는 한 축이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아직 끝나지 않는 전쟁’을 보여주는 작품은 살아남기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만 했던 그 시절의 삶과 선택을 3명의 여성 주인공과 코러스 앙상블로 풀어낸다.
이 작품은 ‘코러스 연극’의 정석으로 불린다. 한마을 안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지만 뜻하지 않은 비극으로 한순간 등을 돌려야만 했던, 생존이 전부였던,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는 배우들의 호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주역 배우의 대한민국연극제 연기상 수상과 더불어 유례없이 코러스 전원이 최우수연기상을 공동 수상하면서 무대 위의 모두가 관객의 눈과 마음에 가닿는, 잘 만든 코러스 연극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환희 물집 화상> <그녀를 용서할 수 있을까> 등을 통해 주체적인 여성서사를 무대언어로 서술하고 입체적인 여성상을 그려온 김희영이 연출을 맡았다. 황세원 임정은 서미영 임다은 김승환 윤일식 김솔빈 김동하 오준석 김윤서 조희윤 안선하 박지수가 출연해 담담하다가도 절절히 끓는 감정연기로 관객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남기는 무대를 빚어낸다.
공연 이야기를 창작진에게서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 9월 1일 공연 종료 후 작가 진주, 연출 김희영, 배우 황세원 임정은 서미영 김승환 등이 참석하고 평론가 엄현희가 진행하는 예술가와의 대화가 예정돼 있다.
'어부는 바다로, 소리꾼은 판으로' 수평선 너머의 어부 - 이자람 판소리 <노인과 바다>
국가무형유산 판소리 이수자, 소리꾼이자 뮤지션, 배우이자 작창가, 이름 세 글자가 장르가 된 대체불가 예술가 이자람이 2024 기획초청 Pick크닉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9월 13-14일 무대에 오르는 이자람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재창작한 동명의 판소리를 노래한다. <노인과 바다>는 스스로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대본과 작창을 만들고 싶다는 의지로 이자람이 직접 원작의 각색에 참여했다. 2019년 두산연강예술상 수상자 신작으로 두산아트센터에서 초연된 후 런던 사우스뱅크 센터 등에서 세계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동요 <내 이름 예솔아>로 다섯 살에 방송활동을 시작한 이자람은 서울대 국악과를 거치며 명창 은희진과 인간문화재 오정숙 송순섭 성우향 명창을 사사했다. 1997년 <심청가>를 완창하고 2년 뒤인 1999년에는 20세 나이로 최연소 <춘향가> 완창 기록 세웠다. 이후 이자람은 2007년에는 <수궁가>, 2010년 <적벽가>, 2015년 <흥보가>까지 주요 판소리 다섯 작품을 모두 완창했다.
2007년부터는 작창극을 통해 대중을 만났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희곡 <사천의 선인>을 원작으로 한 <사천가>로 세계 순회공연을 하고 2011년에는 <억척어멈과 자식들>을 모티브로 한 <억척가>의 대본, 음악, 연기를 맡으며 젊은 관객들을 국악의 세계로 이끄는 성과를 거뒀다.
<노인과 바다>가 시작되면 이자람은 특별한 장치가 없는 휑한 무대에 돗자리 하나를 깔고 고수와 함께 등장한다. 인사를 대신하는 여는 소리 한 자락으로 시작하는 공연은 곧장 망망대해에서 커다란 청새치를 낚는 노인의 사투 속으로 관객을 이끈다. 쿠바의 어촌에 얹은 판소리 가락 안에서 이자람은 1인 다역을 소화하며 넘실대는 파도, 팽팽한 낚싯줄, 청새치의 숨통을 끊는 작살 등을 소리로 관객의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2시간 여를 바닥에 앉아 북을 치는 고수의 역할은 <노인과 바다>에서 핵심적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대전 무형유산 판소리 고법의 박근영이 고수로 이자람과 호흡을 맞춘다. 박근영 고수 특유의 묵직하면서도 흥겨운 장단이 강단 있는 이자람의 목소리에 어우러져 바다 위의 사투를 그리는 데 힘을 더할 예정이다. <죽음과 소녀> <추물/살인>으로 제51회 동아연극상 신인연출상을 수상한 박지혜가 연출하고 무대미술가/연출가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여신동이 시노그래퍼로 참여했다.
2024 기획초청 Pick크닉 공연의 입장권은 국립극단과 인터파크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
프로그램 | ||
공연 | 일시 | 장소 |
음악극 <통속소설이 머 어때서?!> |
8월 18일(일) - 25일(일) 평일 19시30분, 토·일 15시 (화요일 공연 없음) |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 |
<배소고지 이야기; 기억의 연못> |
8월 31일(토) - 9월 8일(일) 평일 19시30분, 토·일 15시 (화요일 공연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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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 판소리 <노인과 바다> |
9월 13일(금) 19시30분 14일(토) 16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