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모니터] 극도로 창백하고도 찬란한 빛, 양지혜의 '토하는 방법들'
[공연모니터] 극도로 창백하고도 찬란한 빛, 양지혜의 '토하는 방법들'
  • 이다연 기자
  • 승인 2025.01.11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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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이다연 기자 = 역겹다. 모두가 역겨워하고 있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흔들리고 있다. 그 간극 속으로 언제 떨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숨 막히는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그 공간의 청년들은 토를 한다. 정해진 방법 없이 각자의 방식대로. 본인의 욕구, 충동이 가득한 세계로, 물 밖에서 물 안으로, 관객들을 인도한다. 

<열혈X쌍방 경계인 발굴 프로젝트: 뭐가 되려고 그런다?!>는 열혈예술청년단 주최, 쌍방과 오손도손 콘텐츠랩의 협력으로 신진 청년 예술가들의 작품 세계를 구체화하고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이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24년도 예술단체 예비예술인 최초발표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11월 23일부터 3주간 주말마다 열혈스튜디오에서 열렸다. 

참가작은 김채린 <우주에서 살아남기>, 맹물 <겸허히 으스러지는 선>, 멍(양지혜) <토하는 방법들>이었으며, 마지막 작품인 양지혜 안무 <토하는 방법들>은 12월 7일과 8일에 열혈스튜디오에서 공연되었다. 안무가를 제외한 송지우, 우두균, 위다나, 정서연, 천우진 이렇게 5명의 퍼포머가 무대를 꾸렸다.

양지혜의 <토하는 방법들>은 청년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탐구한다. 세상이란 무대 위에서 누군가는 웃음을, 누군가는 허탈감을, 그리고 누군가는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충동을 표출한다. 특히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제시한 이드(Id), 자아, 초자아의 삼중구조를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인간 내면의 억눌린 욕망은 무의식이 되어 우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자, 때로는 삶의 균열을 초래하는 불안의 원천이 된다. 이러한 측면은 무대 위에 제시되며 청년들의 내면적 소용돌이와 이를 억제하려는 힘 사이의 긴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양주시에 위치한 열혈스튜디오는 공장들 주위에 둘러싸여 있다. 고립된 영화 촬영장 같기도 하고, 이제는 쓰지 않는 공장의 뒤 건물 같기도 하다. 인적도 드물고 차도 잘 오지 않는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안에서 무엇이든 실험적인 일을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는 곳에 극장이 있다. 무대 바닥 또한 아스팔트 바닥이며, 외관은 공장이지만 안은 아늑한 집처럼 생긴 곳. 그 건물 자체가 열혈스튜디오인 동시에, 오늘의 극장이다.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처음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비닐하우스처럼 투명한 비닐이 입구를 가로막고 있다. 관객들은 추위를 피해 극장 안으로 들어와 다 같이 대기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그 속에서 조그만 빛들이 새어 나오는데, 비닐에 반사되어 일렁거리는 빛들은 마치 물속에 잠수해 있는 듯 심해의 분위기를 연출한다. 일정한 빛이 투영되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달라지는 빛의 세기와 위치, 그리고 바람과 인기척에 의해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비닐은 작품으로의 딥다이브, 공연의 시작을 의미한다. 

한 여성 퍼포머(송지우)는 공연 시작 전부터 대기 공간 앞에서 관객들과 함께 엉켜있으며, 대중과 동일시되기도 하고 따로 독립되기도 한다. 누군가를 뚫어져라 응시하기도 하고, 혼자 떨어져 손을 배배 꼬고, 머리를 부둥켜안는다. 손톱을 물어뜯기도 하고, 혼자 아파하기도 하고,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그는 마치 자신의 욕망에 이끌린 사람처럼 보인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어디론가 충동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며,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은 정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의 모습을 연출한다. 그 불편한 감정에 몰입되는 순간, 그는 빛이 이끄는 곳으로 입수하듯 들어가며 관객들 또한 함께 본 공연장으로 입장한다.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이후 마주한 그 안의 모습은 더욱더 황폐하다. 검정 비닐로 한쪽 팔이 묶인 남성, 머리를 풀고 고개를 푹 숙인 피아노 연주자, 그리고 양쪽 벽면에는 일기장에 써놓은 듯한 문장들이 마구잡이로 길게 적혀 있다. 라이브 음악으로 연주자의 감정에 따라 연주되는 곡은 충동적이며 내면의 여러 감정을 자극한다. 이후 한쪽 팔이 묶인 남성은 한 팔로 네모난 상자를 밀며 원을 그리면서 계속 바닥을 기어다니고, 알 수 없는 음정들로 무대를 가득 채우는 서늘한 피아노 소리, 그리고 흐릿한 초점을 가진 여성 퍼포머가 있다. 그리고 양 비닐 뒤에서는 일기장을 쓰듯 계속해서 그림과 글을 적고 있는 여성 퍼포머, 그 반대편은 검정 물감을 비닐에 마구 묻히고 있는 남성 무용수, 총 5명이 알 수 없는 허공을 응시하며 본인만의 충동에 따라 무언가에 지배 당한듯 움직인다. 

그 장면은 마치 안과 밖이 구별된 장소 같으며 때 묻지 않은 안, 그리고 사회라는 세계에서 맞이하는 여러 종류의 구정물과 새로운 자극들이 계속해서 생성되는 곳이 분리되어 보인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개인 사회화의 단계, 이드와 자아의 구별을 뜻한다. 5명의 퍼포머 모두가 본인의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하고 있으며, 이러한 설정과 연출은 관객들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관객들도 보는 방향이 모두 달라지며 각자 다른 퍼포머들을 감상하게 되지만, 확실하게 공통된 한 가지는 그들이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본인이 욕구하는 무언가를 얻어내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그 불안감과 자극, 그리고 충동들이 그 공간 위로 드리워진다. 

이후 한참 동안 비닐 밖에서 글을 쓰던 무용수는 비닐을 아예 찢어버리고, 반대편에서 물감을 묻히던 남성 무용수는 웃통을 벗은 채로 관객석 안으로 들어온다. 이는 내면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짐을, 어떠한 안전지대도 없음을 뜻하며 무대의 감정이 격정으로 달함을 의미한다. 한쪽 팔이 묶여 한 팔로 상자를 끌며 기어다니는 무용수는 숨이 턱 끝에 찰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처음 관객을 인도한 퍼포머는 네모 상자 위로 올라가 교수형에 매달리는 동작을 취하기도 하고, 앞쪽에 걸린 은색 판에 자기 머리를 부닥치며 삶을 부정하고, 도망치고자 하는 욕구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아름다운 청년들이 창백한 모습을 하고 감정을 드러내고자 했을까.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통제할 수 없이 굴러다니는 내면의 욕망은 서로 섞이지 못한 채 불안정하고 예민한 형태로 존재한다. 장면 중에서 웃통을 벗고 자신의 내면을 내비친 무용수가 한 여성 무용수를 끌어안는 장면이 있다. 프로이트는 리비도주의를 주장하며, 무의식의 욕망은 어린 시절과 성적인 문제로 귀결된다고 보았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나르시시즘의 시기는 청년기에 극도에 달한다. 그들이 겪는 수많은 감정의 소용돌이, 그리고 하나의 자아가 분열하는 트라우마적 충동들은 그들이 견뎌내기 힘들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 

모두가 겪어왔지만 누구나 이해할 수는 없는 성적 욕구의 감정들, 혹은 내면 감정의 권력관계들은 하나의 구역질로 남아 이들을 토하게 만든다. 각자의 방식대로, 모두 다른 토를 하고 있지만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는 같다. 그들의 모습은 피폐하고 극도로 창백하며 안쓰럽지만 찬란하게 아름답다. 역설적이다.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이후 검은색 물감을 손과 얼굴에 잔뜩 묻힌 남성 퍼포머(천우진)는 나머지 네 명의 퍼포머가 가져다주는 흰 양동이에 자신의 몸에 묻은 검정 물감을 하나둘씩 씻어낸다. 씻어낼 때마다 검정 물감은 흰 물을 구정물로 만들지만, 이후 몇 번을 반복하니 물과 그의 몸은 말끔하게 씻겨 내려간다. 물 속에서 숨을 머금고 본인의 때를 지워내기 위해, 씻어내기 위해 애를 쓰는 모습은 마치 프로이트가 말한 자아가 분열되는 모습처럼 보인다. 내 안의 또 다른 자아를 만나며 또 한번 분열되는 그의 모습은 추위에 벌벌 떨며 빛이 바랜 소년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는 하얀 빛이 스며 나오는 듯, 말하지 않아도 관객들이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후 소년은 비워진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이리저리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 친다. 쉬어지지 않는 숨을 쉬려는 애처로운 몸짓, 그리고 모든 걸 해탈한 듯 초점 없는 눈빛은 누군가에 의해 잡아먹힌 느낌을 들게 한다. 그가 뒤집어쓰고 있던 검정 물감이 흰 물에 의해 모든 게 희석되는 순간, 하얀 것이 검은 색을 먹어버린 장면은 그 둘을 구별할 수 없어 바닥에 스며든 물의 상태로 존재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그에 의해 비워진 양동이 하나는 위에서 내려온 고리에 달려 바닥에 떨어진 비닐들로 가득 채운 채로 올려보내진다. 그가 비우지 못해 안달이던, 그에게 고통을 부여하던 비닐들을 모두 밀도 있게 담아 구겨 넣은 채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토하는 방법들' (사진제공=열혈예술청년단) 

<토하는 사람들>은 빛바랜 사람들의 빛나는 이야기이다. 공연장에서 받은 포스터 사진, 그리고 공식 포스터 사진에 실려 있는 검정 물감을 손으로 쥐고 있는 모습과도 닮아 있다. 먼저 검은색 물감은 아무리 색이 진해지고 시간이 지나 물감이 굳어 단단해져도 물을 부으면 금세 녹아 흰 물로 희석된다는 점, 그리고 액체인 물(구토)을 아무리 손으로 쥐려 해도 손에 쥐어지지 않는다는 점. 이 둘의 특징은 완결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무리 내면의 이드의 충동이 거세져 검은 기운이 내 몸을 지배하고 감정을 지배하더라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성적 자극, 또는 다른 자극이 나를 자극해도, 이는 언제든, 언젠가 반드시 씻겨 내려간다는 점에서 너무나도 찬란하다. 무대의 시작을 마치 물 속에 온 듯 비닐과 빛으로 물 속과 물 밖의 윤슬을 연출한 점도, 아직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더불어 내가 지금 떠 있는 물이 어느 색의 물인지 알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 유려하다. 스스로 상상하는 대로 형성할 수 있는 그 공간의 감정과 느낌을 관객에게 제시하며, 그 속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간 5명의 무용수 또한 매끄러운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나갔다. 

몇몇 장면에서 절제되지 않은 모습, 그리고 의도하지 않은 장면들마저 하나의 의도된 장치처럼 느껴졌으며, 청년만이 할 수 있는, 그 생생한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퍼포머와 안무가가 무대를 꾸린 작품으로 다가왔다. 그들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창백했지만,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음을 극명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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