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유희성 공연칼럼니스트 = 2023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에서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한 <시지프스>는 2024년 12월 과수원 뮤지컬 컴퍼니의 허강녕 프로듀서에 의해 본격 상업뮤지컬로 제작돼 지금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2관에서 연일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그동안 <루드윅> <프리다> <인터뷰> 등에서 콤비 플레이로 자타공인 믿고 보는 작품을 이끌어 낸 추정화 작/연출과 허수현 작/편곡/음악감독의 신작 뮤지컬로, 매니아들의 커다란 관심을 이끌며 본격적인 뮤지컬로 거듭났다.
20세기의 지성이자 실존주의 문학의 대표, <이방인>의 작가 알베르 까뮈의 또다른 명작 <시지프스>를 관통하는 삶과 죽음,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와 형식적인 면의 깊이는 오늘날까지도 문학 뿐 아니라 세계 문화사에 폭풍같은 영향을 끼치며 끊임없는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까뮈가 <시지프스>에서 언급했던 공허하고 부조리한 세계를 앞에 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자살’과 ‘희망’이다. 그러나 그것은 삶을 직시하는 명철한 의식에서 벗어나 빛의 세계 밖으로의 도피로 인도하는 치명적인 유희라고 그는 말했다.
삶을 초월하고 그 삶을 승화시키며 삶에 의미를 주어 결국은 삶을 배반하는 어떤 거창한 관념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의 속임수라고도 했다.
그리하여 그런 부조리에서 그는 또 다른 귀결로 이끌어간다.
그것은 바로 ‘반항’ ‘자유’ ‘열정’의 감각이라고 했다. 자살과 희망은 삶을 직시하지 않고 망각과 무로 도피하는 처사라고 그 한계를 두었다. 돌을 산 위로 밀어 올리기를 영원히 반복하고 또 반복하도록 저주 받은 시지프스와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려는 반항적 의지와 저주를 한 몸에 받은 고통 속에서도 미소를 띨 수 있는 삶을 향하여 다시 샘 솟는 열정이라고 그는 전했다.
이러한 원작의 세계를 바탕으로 추정화 작가는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또한 본인이 한동안 깊게 경험했던, 어쩌면 아직까지도 애증의 관계에서 저울질하고 있을 것 같은 배우의 삶과 가치를 중심에 두고, 늘상 주변에서 마주한 배우들의 삶의 애환을 작품의 서사에 반영, 배우 뿐 아니라 본인이나 타인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적 뮤지컬 텍스트로 변환했다.
마찬가지로, 한때 배우였던 김병진 안무자의 움직임과 동선이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더불어 출연 배우들은 다소 육체적으로 버거운 작품이었다 하더라도, 바로 나의 단상과 우리의 이야기인 것 같은 텍스트에 훅하고 들어오는 동질감의 흡수력에 기꺼이 배우로서 최선을 다해 나와 동료, 배우의 삶을 입혀 그 어느 때보다도 파이팅을 보여주었다.
오랜 기간 찰떡 호흡을 맞춰 왔던 콤비 플레이어서 그렇겠지만, 작가와 작곡의 합이 어느 순간 적절한 밀당과 드라마의 정서에 따른 캐릭터 송을 이끌어내며, 유려한 듯 폭발적이고 고요한 듯 휘몰아치는 넘버들로 객석을 순식간에 하나 되게 했다.
또한 전체 프로덕션의 중심을 조명에 두고, 원 세트 개념의 무대(무대디자인 김미경)이지만 음향(음향디자인 송선혁)의 음악적 포인트에 적합하게 다양한 위치의 각도에서 비추는 조명(조명디자인 백시원)으로 인한 순식간에 여러 장소로의 변환, 매쉬 LED를 통한 급격하거나 은은한 판타지로의 변이, 또한 한 순간 조명인 듯 영상인 듯 살포시 어우러지게 드러내지 않은 합과 협업이 무대와 공연의 완성도를 확연히 드러나게 했으며, 의상(의상디자인 조문수)과 소품(소품디자인 권민희)까지 전반적으로 소극장 무대에서 빚어낸 세련된 완성도의 무대 미장센이 작품의 결을 공고히 했다.
또한 네 명의 배우는 각양각색 다양한 숨결로 <시지프스>라는 작품을 통해 ‘배우’들의 삶과 고충, 그래도 어떻게든 운명처럼 다시 다른 작품을 통해 새롭게 더 잘 찾아가려는 역할과 작품에 대한 희망을 향한 파이팅으로, 작품의 곳곳에 최선을 다해 모든 열정을 쏟아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누군가를 상징하며, 군대 제대 후 복귀작으로 이 작품을 택한 조환지(언노운 역) 배우는 여전히 캐릭터에 대한 이입과 언제 들어도 통쾌하고 절절한 가창력으로 무대를 압도하며 바로 캐릭터에 공감하게 했으며,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하면서 그의 운명적인 삶 자체를 응원하게 만들었다.
또한 시인같은 포엣 역 박선영의 맹활약이 무대를 풍성하게 하는 좋은 에너지를 발산했다. 더불어 가끔은 어릿광대 같은 클라운 역의 정민 또한 안정된 연기와 믿음직한 가창으로 작품의 축을 잘 받쳐주었고, 팔색조 같은 전천후 변화무쌍 매력을 발산한 극태와 극성은 관객들로 하여금 흐뭇한 미소로 화답하게 했다.
앞으로도 과수원뮤지컬컴퍼니의 공식 레퍼토리로 자리잡아 재연, 삼연을 거쳐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창작뮤지컬로 자리매김해 나가길 바란다. 아울러 글로벌 뮤지컬로의 도약도 기대해 본다.
시지프스는 신들을 기만한 죄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았지만, 그래도 시지프스는 행복하다는 역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게 인간의 행로에 미덕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언제나 행복의 순간은 그렇게 길지만은 않다.
또한 빛과 환상이 사라진 우주 속의 인간은 결국, 다시 누구나 이방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