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대구] 나여랑 공연평론가 = 가끔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혼자 있고 싶지만 혼자 있고 싶지 않다. 혼자 있고 싶지 않지만 나가고 싶지 않다. 그럴 때 우리는 가상의 세계로 들어가 세상과 소통한다. 굳이 찾아보자면, 휴대폰 비밀번호를 해제하는 것부터가 세상과 소통하는 단계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나와 휴대폰 사이의 규약인 비밀번호를 해제하고 가상의 세계에 입장을 하면 친구나 가족, 지인들에게 연락을 하는 등의 직접적인 소통을 할 수 하고, SNS나 이메일 등으로 직간접적인 접근을 하기도 하며, 조금 더 간접적인 소통방법으로, 관심사를 검색하거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노출된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모든 과정들은 세상과 대화하는 과정 중 하나이다. 가상세계 안에서의 다양한 소통은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중요한 연결고리가 된다. 이 연결고리는 마치 튜브와 같다. 한 대의 자동차가 완전체로 탄생되고 자신의 기능을 다하도록 유지하기 위해 각각의 장치들을 복잡하게 이어주는 튜브, 우리 현대인들의 튜브는 가상세계에서의 만남으로 시작되고, 확장되고, 유지된다.
실제 뿐 아니라 가상공간에서까지 복잡다양한 관계로 점철된 오늘날의 삶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다.
나(i)의 튜브(tube)는 무엇일까.
지난 6월 17일 대구문화예술회관 팔공홀에서 열린 대구시립무용단의 정기공연 <i tube episode>에서도 같은 질문을 한다.
카프카의 ‘굴’처럼 우리도 굴에서 살고 있다.
벗어날 수도 없지만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삶 속에 갇힌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카프카의 소설 <굴>은 이번 작품 <i tube episode>를 탄생시킨 영감의 소재다. 새로움, 확장, 일탈, 변화 등의 개념들과는 동떨어진 채 각각 주어진 삶의 틀 안에서 그 목적들을 이루는 것에 만족하며 살아가야만 하는 많은 이들의 모습은 카프카의 <굴>이 독자들에게 던지는 메시지이면서, 대구시립무용단의 <i tube episode>가 작품 속 튜브(tube)를 통해 관객에게 보여주려 했던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튜브의 속성
공연이 시작되면서 무대 중앙에 말없이 놓여진 거대한 튜브는 누구나 겪게 되는 인생의 틀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데 효과적인 이미지가 된다. 튜브의 거대함은 공간을 장악하고, 그 장악력은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간에 큰 튜브가 존재하고 있는 것 자체로 존재감을 느끼도록 장치되었다. 질감이 딱딱해 보이는 튜브는 딱딱하고 정형화된 둥근 형태로 무대 위에 있다. 무용수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이 튜브는 고정적이면서 거대한 우리 삶의 틀, 그리고 관계의 고리들을 아주 흡사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빈 무대에서 거대 튜브의 단독 등장은 첫 장면부터 강한 미장센을 구축한다.
하지만 공연이 시작된 뒤, 무용수들이 등장을 하고 동작들이 시작되면서 무대 위에 놓인 거대 튜브의 물성은 변화한다. 동그란 거대 튜브 가장자리를 한 손으로 잡고 위태롭게 매달리는 모습, 미끄러지듯 튜브 안 둥근 공간을 무한히 거닐고 있는 듯한 인물의 모습, 튜브를 맴돌며 반복적인 행위를 일삼는 인물의 모습 등으로 역할한 무용수들의 동작들로 인해 튜브의 물성이 바뀌는 것이다. 튜브는 동작과 함께 공간에 존재하게 되면서 마치 고무처럼 유연하고 변화무쌍하면서, 어떤 외부적 존재가 끼어든다고 한들 별로 신경도 쓰지 않는 유일한 존재로 그 정체성과 존재성이 변화한다. 게다가 무용수들의 동작 중 유난히 여러 번 등장하는 안무들이 눈에 띈다. 매달리고 버티는 움직임, 미끄러지는 듯 나가거나 뒷걸음치는 움직임은 동작이 가진 고유의 유연함으로 거대 튜브의 물성을 부동의 상태에서 탄성으로 변화시킨다. 이는 비단 무대 위에 존재하는 튜브의 물성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소통하면서 만들어내는 유연함이 그들 사이의 연결 상태 역시 탄력 있는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함께여서 할 수 있는 것들
이번 작품 <i tube episode>는 재미난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그것은 ‘나’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솔로 무대를 펼치는 무용수가 빛이 나도록 강조하여 그의 역량의 특정 장면을 장악하는 연출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틀거리 안에 갇혀서 사는데 그것이 특정한 누구의 삶이 아니라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삶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삶이 집단 공동의 고민이 아니라 각각 개인이 가진 특별한 틀거리 안에서 겪어내야 할 개별적 문제라는 점도 설파한다. 따라서 기량과 퍼포먼스 출력 능력(움직임이 분명하고 뚜렷하며 테크닉도 뛰어나서 무대에서 돋보일 수 있도록 동작을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특정 무용수를 스타로 내세우지 않으면서 다양한 개인의 모습을 한꺼번에 담아내고 있는 연출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부분이 가능했던 것은 대구시립무용단이라는 시스템과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고 안무를 연출한 안무가 김성용의 강한 리더십이 협력적으로 병치된 긍정적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지역의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단체가 가진 정형성, 항상성이 무용수 간의 풍부한 연습 블로킹의 기회를 주었을 것이다. 또한 단체만이 할 수 있는 집단성이나 표현의 형태를 최대치로 표현하기 위해 작품의 주제와 표현방식을 오랜 시간 숙고 끝에 고려한 안무가의 사유의 시간들이 <i tube episode>를 온전히 완성시킬 수 있었다.
미장센의 향연
이번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확실하고 단순한 명제를 정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창작자들은 거대 튜브를 등장시키고 이를 우리가 견디고 살아가는 ‘틀’로 치환하는 요소로 유연성 짙은 동작들을 활용하여 작품 전체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하는 데 기여하도록 노력했다. 그런가 하면 주제를 부각하기 위해 설계한 각 장면의 디테일 장치들은 다양한 미장센의 활용으로 강조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말의 미장센
눈에 띄는 미장센 중 하나는 ‘말’이다. 연극도 영화도 아닌 무용에서 말이 그냥 ‘날것’으로 등장했다. 책에 나온 구절을 읽거나 평소 생각을 단순히 나열하듯 노출한 장면들이 자주 나왔다. 일반적으로 말이 말의 형태로 그대로 등장하거나 이야기가 나열되면 설명적이거나 메시지가 단순화될 수 있는 여지기 있기 마련이지만 이번 작품에서 ‘말’들의 등장은 오히려 육감으로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정서나 감정으로 장면을 이해하게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간헐적으로 들리는 단어들이 주는 느낌들이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때때로 매치되거나 대립하면서 장면의 이해도를 높였다. 그런 점에서 말의 사용은 이번 작품에서 강렬한 미장센 중 하나였다고 생각된다.
정서의 미장센
또 한 가지 인상에 강하게 남는 미장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조명의 변화가 주는 각 장면의, 혹은 전체 장면 흐름의 정서 변화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작품 초반에는 거의 조명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로 공연이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관객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개인으로서, 집단 내부의 구성으로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소통과 연결고리들을 마주하게 된다. 깊은 물 속에 들어가 중력의 느낌을 받아야 하는 순간들, 밝고 위트 있게 움직이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순간들, 동료와 어떤 방법으로 함께 갈 것인지 고민하기 위해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혔다가 멀어지게 만드는 과정들, 만났다가 헤어지는 시간들 등이 각각의 장면들로 채워진다. 그 과정에서 조명은 서서히 조도를 높여가는데, 작품 후반부에 가서는 밝은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튜브에서 무용수들은 그 어느때보다 자유로운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다. 수 많은 관계와 요소들 사이에서 자신만의 연결고리 즉, 튜브(tube)를 찾게 되는 과정과 순간으로 해석해볼 수도 있겠다. 이 과정을 거쳐 결국에는 거대 튜브가 둘로 나눠져 나란히 놓여지고, 자유롭게 회전되는 장면이 연출되는데, 벗어날 수 없지만 벗어나고 싶지도 않은 ‘나만의 튜브’를 발견한 이의 삶의 절정의 순간을 표현한 듯한 정서를 전달한다.
누구의 것이 아닌 나의 것을 찾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첨예한 갈등을 그린 서사가 주는 몰입에 대한 부담감, 강렬한 인상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 뇌를 풀 가동해야 하는 중압감, 진부한 이야기로 시작해 뻔한 결말을 맞이하는 것이 주는 심심함.
과거 예술이 대중에게 줬던 클리셰를 조금도 언급하지 않은 이 작품은 나의 것을 찾아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하였지만 이해와 해석의 무게를 관객에게 전가하거나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새로운 긍정적 측면을 가진다. 모두가 가진 삶의 모양과 시간을 인정하지만, 나는 어떻게 관계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가, 세상을 어떻게 만나야 할지 고민을 강요당하지 않으면서 함께 생각해보도록 이끈 작품이라는 점이 <i tube episode>가 가진 매력이라고 본다.
*필자 소개*
나여랑은 한국과 스페인을 오가며 공연예술분야 평론가로 활동중이며, 창작공연, 초연작 등에 특히 관심이 있다. 연극, 무용, 미술, 문학을 중심으로 장르별 특성에 따라 교차지점에 대해 평론을 쓰는 것을 주된 작업으로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