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선욱의, 경기필하모닉의 도전

[더프리뷰=서울] 이종민 음악 칼럼니스트 =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경기필하모닉)의 올해 첫 마스터즈 시리즈의 부제는 '아마데우스'다. 모차르트의 '최후의 3대 교향곡'으로 불리는 <교향곡 39번> <교향곡 40번> <교향곡 41번 '주피터'>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공연이다. 세 교향곡은 1788년 6월에서 8월 사이 고작 6주 만에 완성됐다. 세 곡이 각자 다른 성격과 형태를 취하며 형식적, 기법적, 정서적으로 고전파 교향곡의 가장 높은 경지에 올랐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모차르트의 당시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1787년 오페라 <돈 조반니> 작곡 전후였다.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났으며, 그가 주최하는 공연의 관객이 줄어들며 공연 자체를 접어야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수입이 줄어든 모차르트는 이를 타개할 방법을 열심히 찾아다니게 된다. 이 사태의 배경은 러시아와 오스만 제국의 전쟁에 오스트리아가 끼게 되면서였다. 남자 귀족들은 전쟁터로 떠나고 황실 지원금은 줄어들었다. 아내는 중병에 걸리고 아이들도 아팠다. 이런 상황에서도 모차르트는 이 시기 고전주의 교향곡의 정점에 오르며 음악적으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남겼다.
김선욱은 “모차르트의 우아한 39번 교향곡, 긴장감 넘치는 40번 교향곡, 그리고 마지막 교향곡인 웅장한 41번으로 짜여진 프로그램은 모차르트의 천재적이고 감각적이며 창의적인 세계를 탐구한다.”라며 “이 세 곡을 잘 연주하는 것은 말러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보다 더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이번 시즌에서 제일 도전적인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악단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전하지 않는다면 발전이 없기 때문에 선택했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과연 오늘 경기필하모닉은 김선욱의 바람대로 '잡티 없이 깨끗하고 순수한' 모차르트를 들려줄 수 있을지 관심을 모았다.

김선욱은 첫 곡이었던 <교향곡 39번>부터 직접적으로 몇 가지 시도를 하였는데 먼저 음과 음, 주제와 주제의 강약 대비를 크게 가져가면서 리듬감을 살리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이날 김선욱은 지휘봉을 쓰지 않고 맨손으로 지휘했는데, 온몸으로 강세와 소리의 흐름을 표현하였고, 손가락으로는 음의 유형을 표현하는 등 세심하게 한 음마다 신경을 쓰는 느낌이었다. 마치 공중의 피아노를 치는 것처럼 지휘하며 아티큘레이션을 살리려고 하기도 하였다. 피아노 연주자로서 모차르트에 일가견이 있는 김선욱인 만큼 자신의 장점을 지휘에서도 최대한 악단에 녹이려는 모습이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시도는 휴지를 길게 가져가는 것과 장음을 길게 가져가는 것이었다. 다만 이는 과한 느낌이 있었다. 갑자기 느려지면서 음을 길게 끌어버릴 때는 오히려 앙상블까지도 깨지는 느낌이 들었었고, 그 타이밍이 악단과 제대로 협의가 되지 않은 것인지 김선욱이 다시 시작하기 위해 손짓을 하기도 전에 미세하게 먼저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길게 끌었던 휴지도 이 곡의 작곡가가 모차르트인 것을 감안하면 과하게 느껴졌다. 거기에 템포도 오히려 느리게 가져가면서 모차르트의 가볍고 통통 튀는 느낌보단 중후하고 진중한 느낌까지 들었다.

악기 배치도 눈에 띄었다. 왼편부터 시계방향으로 제1 바이올린(12대), 첼로(6대), 첼로 뒤에 콘트라베이스(4대), 비올라(8대), 그리고 가장 오른편에 제2 바이올린(10대)을 배치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에서 목관과 금관의 편성은 그렇게 큰 편이 아니다. 플루트 한 대와 바순 두 대, 호른 두 대는 고정이지만 <교향곡 39번>에서는 트럼펫 두 대와 팀파니가 들어가고, <교향곡 41번>에서는 동일하지만, 클라리넷 두 대를 오보에 두 대가 대체한다. <교향곡 40번>에서는 팀파니와 트럼펫 두 대가 빠지며 클라리넷 두 대가 들어간다. 현 파트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보니 소리의 균형이 맞지 않는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제1바이올린의 소리와 콘트라베이스의 소리, 즉 최저음과 최고음의 소리만이 두드러지고 중간 음역대의 소리는 명확하지 않은 느낌이 강했다. 목관의 소리는 전진 배치된 무려 22대의 바이올린 소리에 가려졌는데 팀파니와 트럼펫조차 없는 <교향곡 40번>에서는 교향곡보단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K.525> 같은 현으로만 편성되는 세레나데를 듣는 것 같았다. 또한 객원 악장으로 정하나(현 인천시향 악장)가 참여하였음에도 앙상블이 생명인 모차르트 연주에서 아티큘레이션이 명확하지 않거나 피치가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였다. 오히려 바이올린의 숫자를 줄이면서 앙상블의 합도 더 끌어올리고, 동시에 소리의 밸런스도 맞췄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행히 중간휴식 후 <교향곡 41번>에서는 앞선 아쉬웠던 부분들을 김선욱도 인지했는지 앙상블과 소리 균형도에 더 신경을 쓴 느낌이었고, 1부에 비해서 훨씬 좋은 연주를 보여준 점은 고무적이었다.
올해 경기필하모닉은 각 공연별로 주제를 정해 그에 맞는 곡들을 골라 말러, 브람스, 멘델스존, 차이콥스키 등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또한 베를린 필하모닉 비올라 수석 아미하이 그로츠, 첼리스트 지안 왕,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 세계적인 연주자들과의 협연을 통해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세계적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신동훈의 <실낱 태양들>을 아시아 초연, 손일훈에게 위촉한 신작 <팡파레>를 세계 초연하는 등 또 다른 도전들도 기다리고 있다. 안주보단 도전을 택한 김선욱의 경기필하모닉에서의 2년 차. 어떻게 발전할지 기대를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