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이미우 기자 = 일곱 살 짜리 주인공 ‘나’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들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한다. 아이스크림, 물총싸움, 밤에 몰래 TV 보기 등등. 그 후 성인이 되어 대학에 입학한 ‘나’는 사랑과 상실을 경험하며 다시 목록을 쓰기 시작한다.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눌러와도 ‘내게 빛나는 모든 것’들은 ‘나’를 기쁘게 해 줄 수 있을까?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Every Brilliant Thing)>이 2022년 LG아트센터 서울 개관 페스티벌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렁스(Lungs)> <1984>로 잘 알려진 영국의 젊은 극작가 던컨 맥밀란(Duncan Macmillan)의 대표작이다. 2013년 영국 초연 후 미국, 프랑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을 순회했으며, 2016년 HBO에서 공연 실황을 다큐멘터리 영화로 제작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내에서는 2018년 두산아트센터, 2021년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된 바 있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12월 15-18일 LG아트센터 서울 U+ 스테이지 공연(평일 오후 5시, 8시/주말 오후 1시, 4시, 7시)에 이어 12월 22일부터 25일까지는 의정부 아트캠프 무대에 오른다. 공연시간 90분.
독백으로 진행되는 1인극이자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연극’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배우 한 명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1인극이자, 관객 참여로 완성되는 인터랙티브 연극이다. 무대를 4면으로 둘러싼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배우의 요청에 따라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의 목록을 읽어 주거나, 주인공 아버지나 연인의 역할을 대신해 주는 등 자연스럽게 연극에 참여하게 된다. 이를 통해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은 주인공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모두가 함께 웃고 울며 공감하는 이야기로 변모한다. 던컨 맥밀란의 극본은 재치 있는 유머와 함께 우울과 상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전달하며 관객들을 몰입시킨다.
내게 빛나는 것들의 목록을 작성해 나가는 주인공 ‘나’ 역은 이창훈, 김아영, 정새별 등 세 배우가 맡아 공연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연극 <비 BEA> <옥상 밭 고추는 왜> <형제의 밤> 등과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최중목 역으로 알려진 이창훈, <광주> <마리 퀴리>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뮤지컬과 연극에서 활약하고 있는 김아영, 연극 <클래스>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 <죽음의 집> 등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였던 정새별 등 3명의 배우가 출연한다. 연출은 연극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라스트 세션> <그라운디드> <한꺼번에 두 주인을>, 뮤지컬 <시티오브엔젤> <레드북>의 오경택이 맡았다.
던컨 맥밀런(Duncan Macmillan)
영국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던컨 맥밀런은 연극 뿐 아니라 라디오, TV, 영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연극 <몬스터(Monster)>로 맨체스터 로열 기사체인지 극장(Royal Exchange Theatre)이 주관한 제1회 브룬트우드 극작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는 워싱턴 D.C.의 스튜디오 극장(Studio Theatre)에서 상주작가로 활동하며 쓴 <렁스(Lungs)>로 오프 웨스트엔드 어워즈 작품상을 수상하며 세계 공연예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조지 오웰의 <1984>를 공동 연출/각색하여 2017년 UK Theatre Awards에서 최우수 연출상을 수상하는 등 연출가로서도 활발한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 노트
답을 찾고 싶은 문제가 있는데, 주변의 어떤 누구도 그 문제를 이야기하지 않을 때, 저는 글쓰기를 시작합니다. <내게 빛나는 모든 것>을 쓰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자살과 우울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데도 불구하고, 성숙하고 책임감 있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이야기하는 작품이 없었습니다. 자살과 우울은 종종 금기시되거나, 아닌 척 무시되거나, 지나치게 미화되기도 합니다. 자살을 선택한 록스타나 예술가들의 죽음은 마치 그들이 그 세계를 다른 사람보다 강렬하게 받아들여 일어난 특별한 사건으로 묘사되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자살은 훨씬 단순하고, 일상적이고, 많은 사람이 겪는 흔한 일인데도 말이죠.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는 대신, 삶을 계속 살기로 결정한 이야기를 연극을 통해 하고 싶었습니다. 자살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우리가 자살에 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가 다른 사람들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살을 더 책임감 있게 다루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요? 자살과 우울을 마냥 암울하게 이야기하거나,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다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방식은 옳지 않으며, 도움이 되지도 않으니까요. 제가 선택한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객석에 조명을 켜고, 작품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희극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관객들 스스로가 작은 커뮤니티가 되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공통의 경험을 나누는 거죠. “당신은 혼자가 아니며, 이건 이상한 게 아니고, 결국 이 모든 과정을 통과할 것이다. 그리고 오직 당신만이 스스로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냉정하게 들릴 수 있고, 뻔한 이야기라고 치부될 수 있지만, 이 연극을 통해 저는 진심으로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 2016년 호주 퍼스국제예술축제(Perth International Arts Festival)와의 인터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