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이시우 기자 = 중진 연출가 김아라가 에세이집 <충동>을 냈다(이라운드 출판사). 40여 년 동안 줄기차게 가꾸고 빚어온 자신의 작품들을 되짚어 보면서 매 순간 자신과 나눈 내적 대화를 이제는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쓴 책이다.
김아라의 작품들은 쉽게 이뤄낸 것이 없다. 힘든 여건 속에서 땀 흘리고 눈물 흘리며 만들어 낸 것들이다. 그럼에도 공연연습은 늘 웃음꽃이 피는 행복한 작업이었다. 그녀는 말한다. 모든 창작의 원동력은 기쁨이라고. 이 세상에 태어나 자신만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많은 이들에게 꿈과 도전의 영감을 주고 삶에 충동을 주며 세포 하나 하나를 깨워 주는 글들이다. 무대에 막이 내리면 가슴 뜨거워지며 감동이 밀려오듯 독자들에게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환기시키는 글들이다. 40여 년을 연극 현장에서 살며 앞으로도 살아갈 시간의 사랑과 열정, 충동의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 글들이다.
책 속으로
"바다에 섬이 있다. 그 섬에서 바다를 바라보면 당연히 그리워지는 것은 뭍이다. 또한 바다를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그 바다를 떠날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다. 그래서 바다에서 자란 사람은 늘 떠난다. 불분명하게 미래에 거대한 도시 한가운데 놓여 있으리라는 생각은, 바다를 정원인 듯 내려다보며 자란 어린 김아라가 시달린 예감이었다. 그리고 기회만 닿으면 떠날 준비를 했다. 광주에서 여수로, 여수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미국 위스콘신주로, 위스콘신에서 뉴욕으로, 뉴욕에서 다시 서울로, 서울에서 죽산으로, 죽산에서 다시 서울로, 서울에서 캄보디아로, 그리스로... 출장 같은 여행을 합치면 난 머무르지 않았다. 늘 떠났다.
연극이라는 작업도 떠나는 일이다. 시시각각 나와 나의 생각들, 그리고 내가 믿어왔던 것들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나는 끊임없이 보따리를 꾸리듯 내가 머물렀던 그 연극의 흔적에서 소멸되기를 열망했다. 나는 나의 충동을 사랑한다. 앞뒤 가늠 없이 어떤 열망에 사로잡히면 무조건 저지른다. 그리고 간다. 가고 나서 돌아본다. 그때서야 나는 그 충동의 시작과 끝을 본다. 그리고 다시 떠난다." - '머리말' 중에서
"이념이 관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좌, 우로 나뉜 극단적인 대립이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다. 어제의 친구를 의심하고 어제의 친구를 배척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러면서 기실 우리는 각자 개인주의로 추락 중이다. 고독과 소외를 말하면서 집단을 그리워한다. 결국 대부분의 우리는 이념의 울타리를 포기하지 못한다. 오른쪽? 아니면 왼쪽? 우리는 기계소년 조이처럼 전기 콘센트에 자신을 연결시키고 거수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칼끝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신념을 가진 이의 침묵과 조용한 행동을 사랑한다. 이 세상이 상생과 평화에 이룰 때까지." - '신더스' 중에서
"국립극단 45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연출가, 최연소 연출가라는 두 개의 훈장을 달고 장충동 국립극장으로 향했다. 방송작가 이상현 선생의 첫 희곡이었고 작업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도 않았다. 데뷔 5년 차 신출내기 연출가에게 더없이 영광스러운 기회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말 그대로 40일 동안의 순발력 작업이었다. 생각하고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직관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40일 안에 대본 각색을 완료하고 연습하고 공연하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순간 떠오르는 영감을 재단하지 않고 곧바로 달려가버린 작업에서 나는 예술이란 그 어떤 논리보다 직관이 살아 있어야 함을 터득했다. 그날 이후, 나는 오랜 몽상과 게으름에 나를 방치하지만 시간이 오면 단숨에 연출 플랜을 세우는 연출가가 되었다. 나의 직관을 믿기 시작한 결과이고 그것은 옳은 결론이었다." - '사로잡힌 영혼' 중에서
저자 김아라는
실험과 전위로써 대중적 성공과 연극미학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연출가의 길을 걸으면서 <숨은 물> <에쿠우스> <사로잡힌 영혼>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그리스 비극 연작> <정거장 연작> 등 총 60여 편을 연출했다.
1992년 ‘극단 무천’을 창단, 베를린 한국 페스티벌 폐막공연, 덴마크 아루스 국제무대예술제 개막공연 등 대형축제 및 주제공연을 제작, 총감독, 연출했고 1996년 안성시 죽산면에 야외극장을 설립, 연극공동체 운동을 주도했다.
'유적지 연작'으로 캄보디아, 그리스, 제주도 우도, 한강 등 종횡무진 무대영역을 확장한 연출가이기도 하다. 백상예술대상, 동아연극상, 문화부장관 표창 등을 받았다. 2007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공연 <A Song of Mandala>의 총제작과 연출을 맡기도 했다.
2021년과 2022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공식 초청 받았으며 2023년에는 리움 미술관 초청으로 <WE&WE?>를 연출했다. 최근에는 서울문화재단이 선정한 NFT 아티스트 32인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현재 전쟁을 주제로 한 연작 ‘그리스 신전 프로젝트’와 ‘우크라이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