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최찬열 무용평론가 =갈라진 민족을 하나로 합치는 통일이 필요 없다는 사람들이 부쩍 늘고 있다. 분단된 채로 너무 많은 세월이 흘러가 버려 이제는 분단되었다는 사실조차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를 비틀고 구부러뜨리는 여러 요인 중 주요 원인 하나를 콕 집어 말하라면, 그것은 틀림없이 분단 현실일 것이다. 그로 인해 민족 구성원들의 삶의 고통이 여전히 가중되고 있는, ‘바로 지금’ ‘이곳’에서 이러한 근본적 문제에 대한 통찰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다. 예술, 혹은 춤에서도 이는 예외일 수 없다. 즉 민족의 역사적 현실을 담아내는 춤 실천은 여전히 중요하고 요긴하다. 근래 선보인 임학선댄스위의 <DMZ·비무장지대에 서서>(2023년 11월 18-19일, 두리춤터)가 의미 있게 다가온 이유이다. 민족의 분단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특정 장소의 사회적 삶을 올곧게 직시하는 이 공연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는데, 1막에서는 이 단체의 예술감독 임학선이 1995년 발표했던 <비무장지대에 서서>를 재연하였고, 2막에서는 정보경과 김주빈이 공동 안무를 맡아 <비무장지대에 서서>를 오늘의 관점으로 재해석해 새롭게 만든 작품 <DMZ>를 선보였다.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어슴푸레한 조명 빛이 비치는 어두침침한 무대 여기저기에 춤꾼들이 물구나무서 있다. 그들은 무성하게 자라 바람결에 흔들리는 수풀처럼 두 발을 허우적거린다. 첫 새벽의 비무장지대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그 사이를 헤집고 서서히 이동하고, 휘파람을 불며 뭔가를 살피듯 먼 곳을 바라보는 여성 춤꾼을 반대편에서 등장한 남성 춤꾼이 손전등으로 비추어 보다가 빠르고 둔탁한 타악기 소리가 흘러나오면 둘이 엇갈리게 뛰어서 무대 양옆으로 퇴장한다. 그러다 뛰고 걷고 뒹굴다가 팔과 상체를 휘저으며 휙 돌고 쓰러지기도 하는 예닐곱 명의 춤꾼들과 대조되게 두 명의 춤꾼이 무대 정중앙에서 포옹하면, 그들 주위를 혼란스럽게 오가던 이들이 붙어 서 있는 이 둘을 갈라버린다. 요컨대 한반도를 둘러싼 어지러운 지정학적 정세와 그로 말미암아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을 간략하면서도 단순한 춤으로 명징하게 묘사하는 장면이다. 이른바 남남북녀라고 했던가, 남과 북을 상징하는 남녀가 그들을 떼어놓는 군무를 사이에 두고 끝내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그려지는 것이다.
분단 현실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춤은 이어진다. 즉 남녀가 원형을 이룬 춤꾼들을 사이에 두고 안팎으로 갈라서면 남성 춤꾼이 그들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여성 춤꾼에게 다가가지만, 그는 그녀 주위를 겉돌기만 하다가 끝내 갈라서고, 이런 둘을 애달파하듯 구슬픈 음악이 흘러나오기도 한다. 그러다 잇고, 화합하고, 또 배척하는 춤이 펼쳐진다. 무대 중앙에 홀로 서서 부드러우면서도 애잔한 춤을 추던 여성 춤꾼이 뒤로 이동하면 무대 뒤쪽에서 다른 이들이 연이어 등장해 차례차례로 그녀와 손을 맞잡은 후 무대로 들어온다. 그러다 사선으로 두 줄로 선 춤꾼들이 서로 마주 보며 손을 내밀어 맞잡고, 어깨 짓과 굴신 동작이 돋보이는 군무를 이어간다. 갈라진 남북을 다시 잇고자 하는 의지가 발현되는 춤이다. 또 모두 펄쩍펄쩍 뛰고 빙글빙글 돌며 기세를 올리는 군무를 펼치기도 하는데, 통일에 대한 결기가 감지되는 춤이다. 하지만 곧바로 무대 가장자리를 휘돌며 여기저기에서 춤을 추던 그들이 다시 두 줄로 사선을 만들어 등을 맞댄 채 어르다가, 둘씩 짝을 이뤄 밀치고 버티고 두 패로 갈린 채 격하게 부딪친다. 둘의 대립 상이 도드라져 보이는 장면이다. 말하자면 화해롭게 조화하다가 또 서로를 배척하기도 하며, 냉탕과 온탕을 왔다갔다 하는 등, 둘 사이에 형성된 팽팽한 긴장 국면이 묘사된다.
급기야 무대 맨 앞에까지 나온 그들이 일렬횡대로 선 채 어깨동무하고 모두 함께 손을 잡았다가 놓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다 흩어져 무대 뒤로 천천히 걷던 그들이, 밝고 희망찬 음악이 흘러나오면, 뒤돌아 등을 보인 채 일렬로 서서 재차 손을 잡고 아주 느리게 걸어서 무대 오른쪽 뒤로 퇴장한다. 진지하면서도 의연하게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면이다. 이를테면 30여 년 만에 재연된 <비무장지대에 서서>는 잘 짜진 오늘날의 작품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비무장지대 앞에서 느끼는 한 존재자의 심상과 통일에 대한 염원을 상징적인 몸짓으로 분명하면서도 능란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들뜨지 않고 차분한, 훈련이 잘된 춤꾼들의 빼어난 춤과 의미를 명징하게 시각화해 마침맞게 전하는 아기자기한 구성이 돋보이는 공연이다.
극장 지하 무대에 오른 1막 공연과 달리 2막은 1층 무대에서 펼쳐진다. 그런데 같은 묵직한 주제를 다룸에도 2막은 1막에 비해 훨씬 명랑하고 발랄하다. 즉 남북의 대치 상황과 군비 경쟁 등 오늘 이 땅의 구체적 현실을 장면화하는 <DMZ>는 <비무장지대에 서서>에서 모티브를 취하지만, 이를 재치 있는 위트와 우화적 기법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공연이다. 무대 뒷벽 높이 설치된 큰 스크린에 간이 의자에 앉아 인터뷰를 준비하는 듯한 출연진의 모습이 연달아 나타난다. 이어서 다급한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비상 상황이 발생했음을 알리는 이 소리는 한때 우리 사회에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수시로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몇 번 되풀이해 울리지만, 지금의 출연진은 무덤덤하게 인터뷰 준비에만 열중한다. 그 소리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던 과거의 우리와 사뭇 달라 보인다. 이어서 스크린이 사라지면 철망이 쭉 쳐진 무대 뒷벽 높은 난간에 큰 곰의 탈을 쓴 남성 춤꾼(김주빈) 한 명이 두 팔을 쭉 뻗어 올린 채 서 있다. 아마도 비무장지대에나 서식하고 있을 법한 곰일 것이다. 그가 한동안 활기차게 춤추면 다시 스크린이 내려오고 화면에 여성 유튜버가 멘트하는 장면이 나온다. 자기가 지금 있는 곳이 DMZ라고 밝힌 그녀는 지뢰를 피해 비무장지대 안으로 들어가 보겠다고 말한 뒤, 그곳으로 진입한다. 하지만 곧바로 곰이 등장하고, 혼비백산 놀란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면 화면이 꺼진다. 곧바로 조명이 무대를 비추면 방금 가상현실에서 도망친 유튜버가 무대 바닥에 자빠져 있고, 행진곡풍의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얼굴에 검은 칠을 한 채 똑같은 차림을 한 여성 춤꾼 둘이 등장한다. 이른바 가상현실과 실제 무대를 넘나드는 장면 구성을 통해 비무장지대의 풍경을 스케치해 보여주면서 분단 상황을 환기하는 장면이다.
꼭 닮은 여성 춤꾼 둘의 절도 있으면서도 합이 잘 맞는 일사불란한 춤이 이어진다. 출중한 춤 기량을 뽐내며 활발한 움직임으로 무대를 휩쓸고 다니던 그들이 껑충껑충 뛰어서 무대 가장자리를 각각 반대 방향 돌더니 중앙에서 서로 맞선다. 그 순간 스크린에도 둘의 모습이 나타난다. 화면에 잡힌 둘은 서로의 긴 댕기 머리를 하나로 연결한 채 걸어간다. 그들은 쌍둥이 자매이다. 둘은 하나의 몸처럼 놀이터에서 놀이기구를 타고 음료수를 마시고 뭔가를 함께 보는 등 정답게 생활한다. 그러다 길 위에 난 하얀 선을 사이에 두고 누운 그들이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는 순간 스크린이 꺼진다. 둘이 갈라선 것이리라. 그래서인지 무대에 있는 실제의 그들이 발로 차고 싸우는 등 거칠게 대립하기 시작한다. 이들처럼 원래는 하나였지만 지금은 둘이 된 남북이 서로 적대시하고 갈구는 현실을 실제 쌍둥이 자매 춤꾼(강은비, 강진비)을 캐스팅해 묘사하는, 무척 인상적인 장면이다.
칼바람이 부는 듯한 음향을 배경음 삼아 한동안 맞부딪치던 둘이 멀리 떨어진 채 열중쉬어 자세로 서 있으면, 흰 운동화 한 짝이 그들 사이에 툭 떨어진다. 이어서 무대 난간, 그러니까 비무장지대에 있는 곰이 연이어 운동화를 떨어뜨린다. 하얀 신발은 비무장지대에서 지뢰를 밟는 등 각종 사건, 사고로 산화한 무명의 용사들을 상징하는 메타포일 것이다. 이윽고 쌍둥이 춤꾼이 신발을 하나하나 집어 들어 무대를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두 개의 긴 라인을 만든다. 한반도의 허리를 가르며 지나가는 38선이다. 두 선의 중간 구역은 비무장지대이고, 또 두 라인 바깥에 각각 서서 냉랭하게 바라보는 둘은 남과 북을 상징하는 인물일 것이다. 급기야 서로를 적대적으로 응시하던 그들이 상대를 향해 침과 가래를 뱉으며 대거리한다. 남북이 대치한 채 서로 헐뜯고 싸우는 상황이 이렇게 유치한 짓일 뿐이라는 말일 테고, 또 같은 얼굴, 같은 모습을 한 그들이 심하게 대립할 때는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는데, 이는 아마도 그들이 서로를 향해 침을 뱉지만, 둘이면서도 하나인 쌍둥이이기에, 꼭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브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적절하게 살리면서 남과 북이 서로를 대하고 비방하는 형세를 은밀하게 비꼬는 매우 역설적인 장면이다.
이번에는 갑자기 군화 한 짝이 툭 떨어진다. 그리고 스크린의 뉴스 화면에는 북한 주석 김정은의 모습과 미사일 발사 장면, 북한의 열병식 장면 등이 잇달아 나타난다. 그러면 쌍둥이 춤꾼이 군화를 독차지하기 위해 싸우기 시작한다. 두 줄 사이, 곧 비무장지대에서 두 춤꾼은 밀치고 당기고 버티고 짓밟고 짓누르며 거칠게 투쟁한다. 남과 북이 경쟁적으로 벌이는 군비 경쟁을 은근히 비판하고 은유하는 춤이다. 뒤이어 갑질을 한 여성, 영끌 족과 높아진 대출 이자, 묻지 마 학교 폭력 등에 관한 뉴스가 전해지는 가운데 쌍둥이 춤꾼은 무대 바닥에 놓인 신발을 걷어 각각 무대 뒤 양편에 쌓고, 그 뒤에 웅크리고 앉는다. 고만고만한 사건 사고가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남북은 암암리에 군비를 확장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둘의 대치 국면은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다.
이어서 견고한 긴장 국면 속에서 펼쳐지는 군화를 든 여성 춤꾼(송윤주)의 솔로 춤이 시사하는 바는 커 보인다. 여러 종류의 군화에 짓밟히고 도륙당한 이 땅의 무수한 여성들을 떠올리게 하듯, 또 초강대국 주도의 냉전체제에 휘말려 고통당하는 민족의 현실을 은유하는 듯, 붉은 의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뒹구는 그녀의 몸통 위에서 군화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비참하면서도 무자비한 사건, 사태가 연유하는 근본적인 요인이 남북 분단이라는 사실을 일깨우기라도 하듯, 무대 양편 방호벽에는 남북이 대치하듯이 두 춤꾼이 도사리고 앉아 있다. 그녀가 힘들게 군화를 위로 밀어 올리며 일어선다. 하지만 힘에 부친 듯 불쑥 주저앉고 다시 비틀비틀 일어나 힘차게 우뚝 선다. 그러다 마침내 군화를 집어 던져 버린다.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계속해서 회전하는 그녀의 춤은 아마도 환희와 기쁨에 찬 해방의 몸짓일 것이다.
해방의 춤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버려진 군화를 든 곰이 그녀에게 성큼성큼 다가오고, 둘은 듀엣 춤을 춘다. 하지만 군화는 이제 그들을 억압하는 무력의 상징이 아니다. 외려 단순한 놀이도구일 뿐이다. 곰의 어깨에 올라탄 채 군화를 머리에 얹은 그녀의 얼굴에 해맑은 미소가 번진다. 나라 간, 남북 간에 벌이는 군비 경쟁 따위는 아랑곳하지 말고, 우리끼리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춤이다. 군비는 이제 즐거운 삶과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리라. 군화를 놀잇감 삼아 던지고 받으면서 추는 둘의 경쾌하고 발랄한 춤은 온전한 삶과 일상의 행복을 저당 잡힌 채 벌이는 군비 경쟁의 무용함을 일깨운다. 이윽고 밝은 조명 빛이 내리쬐는 무대 중앙에 군화를 놓고, 곰이 그것을 짓밟아 버리면, 폭죽이 터지면서 휘황찬란한 꽃가루가 허공에 날리고, 모든 춤꾼이 함께 어울리며 기뻐한다.
다시 스크린에 인터뷰 화면이 나타난다. 공연을 보러 온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에게 유튜버가 질문을 건네는 장면이다. 누구나 일상에서는 당연한 듯 까마득하게 잊고 말지만, 우리는 엄연히 아직도 전쟁 중인 나라에 살고 있고 남북은 여전히 휴전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문답이다. 그리고 핵폭탄이 터지는 영상이 스크린에 가득 담기고, 모든 출연진이 무대 중앙에 모여 그것을 바라보면 막이 내린다. 그리고 이 장면과 상반되게 “언젠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많은 사람이 마음 속에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강한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곡, 서태지의 <발해를 꿈꾸며>가 온 극장에 울려 퍼진다. 전쟁에 대한 경각심과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동시에 일깨우는 엔딩 씬이다.
지난 시기 분단의 질곡을 극복하려는 이 땅의 지식인들과 운동가들이 보여준 분투는 우리에게 새로운 실천적 전망을 자극했다. 인간다운 일상적 삶의 조건이 상실되고 상식적인 생각이 거부되는 근본적인 원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공통된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기에. 그리고 이러한 책무는 아직도 완수되지 않았고,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책무를 저버리는 경향이 없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통일은 민족의 아름다운 미래를 희망적으로 전망하는 일임이 틀림없는데도 말이다. 정보경과 김주빈은 30여 년 전 그들의 스승이 <비무장지대에 서서>에 담았던 이러한 문제의식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오늘 <DMZ> 공연에서 되살려낸다.
즉 이 공연은 분단 상황이라는 지역의 특수성을 한국적 정서가 물씬 묻어나는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몸짓으로 장면화하고, 여기에 영상과 미디어, 오브제 등 현대적 요소를 더함으로써 오늘날의 감성을 파고들 수 있는 감응적 힘을 갖춘다. 요컨대 구체적인 삶의 토대인 오늘 이 땅의 현실을 반영하며 통일 반대를 반대하는 <DMZ·비무장지대에 서서>는 세계 춤의 중심만 바라보는 경향이 일반화된 한국 춤세계 일각의 편견을 간과하지 않고, 한국춤의 독특한 감각을 보존하고 유지하면서도 여기에 현대성과 주류 정서를 입히는, 이른바 로컬의 감각과 동시대성을 아울러 담고 있는 매력적인 공연이다.
altai21@hanmail.net 한국춤 전공 후 모스크바대 인류학 석사,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인류학 박사과정 및 미학 박사학위 취득. 지금은 몸의 예술과 인문학에 기반한 통섭적 문화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다른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