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그슈타트] 김경명 기자 = 지난 7월 12일 그슈타트 메뉴힌 페스티벌이 7주간의 여정을 시작했고, 임윤찬의 독주회는 17일 저녁 7시 30분 자넨(Saanen) 교회에서 열렸다.
멘델스존의 <무언가>로 시작한 이날 연주회는 차이콥스키의 <사계(Les Saisons)>를 거쳐 무소르그스키의 <전함람의 그림>까지,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 해석과 표현이 각기 달랐으며, 처음부터 작곡가와 문화별로 차이를 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버려지는 음 하나 없이 터치 그대로 모든 소리가 잘 들렸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독주곡 <사계>는 열두 달을 표현한 짧은 캐릭터피스(Character piece-성격소품)이다. 차이콥스키가 <백조의 호수>를 작곡하는 중간중간 썼다고 하는데, 가끔 그의 작품 중 하나일 것 같은 구간이 느껴져 재미를 주는 작품이다. 이날 그의 <사계> 연주는 처음엔 매우 차분했다. 평화롭고 여유로웠다. 하지만 여름인 8월을 넘어가면서 그의 표정이 변하며 분위기가 고조되었다가 조용한 12월, 겨울로 마무리하며 모든 손가락이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듯이 느껴졌다.
<전람회의 그림>은 연주자와 음악, 그리고 연주가 함께 그려내는 회화음악 그 자체였다. 열 손가락으로 온몸을 내려꽂는 듯한 파워풀한 소리는 감동 그 자체였다. 자넨교회는 역시 소문 그대로, 이런 공연에는 최적의 장소이다.
연주가 끝난 뒤 그슈타트 메뉴힌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크리스토프 뮐러(Christoph Müller)는 “임윤찬은 현재 가장 뛰어난 피아니스트이다.”고 말하며, “그슈타트를 찾는 많은 클래식 마니아들이 있고, 그들은 그들 나름의 스타가 있다. 조성진도 많은 한국의 팬들을 그슈타트로 오게 했는데 오늘 임윤찬도 기대 이상의 팬들을 몰고 왔다. 한국 팬들의 환호가 즐겁다.”라고 말했다. 이 페스티벌의 프로그램 기획자인 다니엘 켈러할스(Daniel Kellerhals)는 임윤찬의 연주에 감동받았으며, 나이가 무색한 그의 퍼포먼스에 압도됐다고 했다. 티켓 부스의 코린 로이텔레르(Corinne Reuteler)도 많은 한국인들의 입장권 예매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17일 임윤찬이 공연했던 자넨교회는 그슈타트 페스티벌의 상징과도 같은 곳으로, 메뉴힌이 이곳에 온 후 공연장으로 애용했던 곳이다. 작은 교회라 최대 300명 정도가 들어올 수 있지만, 음악 애호가를 가까이서 접하고 싶었던 메뉴힌의 의도와 잘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이날 한국인 관객은 대략 50-60명으로 추산됐다. 연주자는 관객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고, 관객은 연주가가 마치 나만을 위해 연주해주는 감동을 느끼게 한다.
교회 앞에는 란트하우스(Landhaus)가 있다. 이전에 마을행정 사무소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영업 중이고, 아직도 마을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이곳 2층에는 마을회관으로 쓰이는 작고 아름다운 홀이 있는다. 페스티벌 기간에는 연주자들이 마스터클라스를 위해 즐겨 사용하는 곳으로, 이번에 임윤찬도 공연 전 연습을 위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1층 레스토랑은 공연 전과 후 모두 예약이 꽉꽉 차는 곳으로, 이미 한국에서 날아온 임윤찬의 팬들로 가득했다. 작은 마을이라 한국사람이 한두 명만 있어도 눈에 띄기 마련인데, 이날은 이 작은 골목에 한국인이 넘쳤다.
한 한국 관객은 임윤찬의 유럽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왔다, 다음 공연이 있는 베르비에(Verbier, 스위스 남서부 도시)로 갈 것이라면서 여행으로 들른 것이 아니라 임윤찬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온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제 스포츠 스타의 경기를 보러 다니는 팬층을 넘어 클래식 연주자의 공연을 찾아다니는 시대가 된 것 같아 몹시 새로웠다.
60년 역사의 그슈타트 메뉴힌 페스티벌
인구 약 6,900명인 자넨란트(Sannenland)는 그슈타트(Gstaad)를 비롯해 자넨(Saanen), 쇤리트(Schönried), 자넨뫼서(Saanenmösser), 그룬트바이그슈타트(Grund bei Gstaad), 압렌첸(Abländschen) 등 모두 7개 마을이 있는 작은 곳이다. 이 곳을 비롯해 주변 다른 행정구역의 마을인 렌크(Lenk), 루즈몽(Rousmont), 라우에넨(Lauenen), 츠바이지멘(Zweisimmen) 등이 페스티벌의 협력 마을이며, 매년 이맘때 주민의 3배가넘는 관광객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다.
1950년대 중반 예후디 메뉴힌(Yehudi Menuhin)과 그의 가족은 자넨란트와 그슈타트를 발견한다. 자연과 산의 원초적 힘에 매료되고 영감을 받는다. 메뉴힌은 자넨란트의 부드러운 알프스 풍경뿐만 아니라 서스위스(불어문화권), 독일어권 문화, 이탈리아적 요소가 공존하는 이 지역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슈타트와 그 주변은 국제적인 교육환경을 제공하고 있으며, 특히 르 로제(Le Rosey)와 존 F. 케네디 국제학교(John F. Kennedy International School) 등 훌륭한 교육기관 덕분에 메뉴힌은 가족과 함께 자넨란트에 정착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아이들과 함께 산책하면서 현지 주민들의 자연친화적 생활방식을 발견했고, 이들의 민속과 음악은 메뉴힌의 음악적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메뉴힌 사후 작은 갈등에 시달리기도 했던 축제는 2002년 크리스토프 뮐러가 예술감독으로 취임한 이래 오늘날까지 이 페스티벌 & 아카데미의 창립자인 예후디 메뉴힌의 정신을 계승하며 새롭게 발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프로그램 정책을 통해 미래 지향적인 프로젝트와 지속 가능한 예술적 틀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매년 여름이면 스위스 곳곳에 많은 클래식 음악 축제가 열린다. 세계의 정상에 있는 연주자들이 모두 스위스에서 여름을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한국의 연주자들도 이곳에서 공연하면서 세계적인 연주자로 커리어를 쌓아 가고 있다. 매년 그슈타트 축제의 현장을 목도하며 진행을 돕고 있지만 올해는 이처럼 많은 한국 관객들을 볼 수 있어 여러 날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