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조춘영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 = 마당에서 판을 벌여 추는 고창농악 고깔소고 놀음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빛나고 놀아질 수 있는지 다채롭고 풍성한 놀이판을 보고 왔다. ‘2024 소고놀음 4 허튼’은 김영희춤연구소와 서울남산국악당이 공동주최하고 고창농악보존회가 후원한 공연으로, 7월 17일 서울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렸다. 고창농악과 고깔소고 팬덤을 이룬 관객들이 시작도 전에 시끌하다. 4년째 소고놀음을 무대 위에서 선보인다니 나도 한껏 기대를 품고 객석에 자리했다.
한 판 공연을 다 보고 나니 이 제작진의 예술성과 작가주의가 상당한 궤도에 오른 것은 아닌가, 그동안의 실험들이 드디어 결실을 맺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인상이다. 특히 20여년 풍물판과 무용계 그리고 성균관대 동양철학 박사과정에서 동학으로 만나온 김영희 연구소장의 저력을 다시 확인하였다. 고깔소고와 풍물굿 장단을 가르쳤을 것이고, 각 춤꾼들에게 맞는 소고춤 창작을 이끌기도 하여 무용계에 파란(波瀾)을 일으키고 있는 현장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날 고창소고놀음에 참여한 춤꾼들을 잘 알지 못하고, 다리 건너 아는 분이 몇 분 있을 뿐이다. 고창농악의 풍물굿쟁이를 포함하여 전국에서 모인 다양한 춤꾼들이 김영희 소장을 중심으로 고창소고 놀음을 연습하고 연구하고 창작하고 공연한지 벌써 수 년이라고 한다. 필자가 느낀 공연의 전체적인 인상은 마당에서 놀던 농악계와 주로 무대에서 춤판을 벌인 무용계가 창조적으로 만났고, 이런 움직임들이 상당한 시너지와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예감이다.
그동안 전통공연예술 분야에 있으면서 느낀 몇 가지 무용계의 한계들이 있다. 근래 대학무용 교육에서 무용수들이 전통 한국 장단을 학습하지 못해 표면적인 동작 중심의 반쪽 춤을 춰왔다는 게 첫째다. 그리고 교방춤이 대다수를 형성하며 무용수가 (의도하건 의도하지 않건) 성적 대상화가 되어 주체로서의 춤꾼 담론이 소외되어 온 측면이 있다. 그리고 핵심적으로는 다양한 현장의 맥락과 생활 속에서의 춤을 떠나 과도하게 무대에서의 공연만을 추구해왔다는 인식이 그렇다. 풍물굿연구자, 풍물굿쟁이로서 한 면만 바라보는 나의 편견이길 바라지만… . 2020년부터 햇수로 4년 째 놀았고 올해는 허튼으로 무대에 올린 ‘소고 놀음’은 그런 면에서 이러한 한계를 넘어서고, 춤추는 이가 주체이자 창작자가 될 수 있도록 서로 고민하고 복돋아주고 배려해 온 과정이 오롯이 드러난 마음 풀이, 몸 풀이, 신명 풀이의 현장으로 느껴졌다.

고창소고놀음의 현장은 마을, 마당에서 보통사람들이 농사짓고 놀이하며 살아가는 생활 자체다. 정월에는 사람들이 모여 당산신을 모시고 집집이 지신밟기를 하며 농사짓다가 7월 백중에는 들판에서 풍농을 기원하며 다같이 퍼질러지게 논다. 허튼 판을 벌인다.
이런 현장에서의 다양한 풍경과 감정과 관계들을 춤과 놀이로 풀어내는 게 고창소고놀이가 아닐까? 소고 하나로 여러 춤꾼들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감정을 나누었던 것 같다. 문현주의 <고창농악 고깔소고춤>으로 판을 연 후, 전선미, 최진영, 오지영의 <소고 삼채>, 권명주의 <질굿 소고>, 위송이의 <가야금산조와 소고 세산조시>, 강은영의 <풍장 고깔소고>는 작년에 이은 작품에서 더 나아갔고, 올해 초연인 김경진의 <아리씨 소고>, 2022년 초연했던 박혜진- 권지혜의 <동동 듀엣>으로 풍성해졌고, 작품들은 무용수의 몸을 통해 더 선명하게 관객에게 전달되었다. 공부한 바와 지역과 신체적 조건이 달라 다양한 춤사위와 신박한 발디딤과 소고 발림 그리고 구성진 짜임새들에 눈과 귀를 팔 순간이 없었다.



흥미롭고 반가운 점은 고창농악의 오채질굿과 질굿을 소재로 활용한 작품이 있었다는 것이다. <소고 삼채>와 <질굿소고>였다. 오채질굿은 호남우도농악 장단의 꽃이라 하는데 2-3-3-2의 혼소박 불균등 장단으로 상당히 복잡하고 긴 장단이다. 겹장단이라 하여 꾸밈음도 들어가고 즉흥으로 변주도 가능한 장단이다. 춤꾼들이 어려운 질굿 장단을 제대로 이해하고 연주하는 가운데, 장단과 호흡 틈 사이로 새로운 사위와 동작이 엮어지는 것을 보았다. 때리기 어려운 첫 박에서 알차게 터지는 소고 소리와 혼소박을 타고 노는 손짓과 발디딤, 엇으로 가는지 정으로 놓는지 타고 가는 몸놀림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춤꾼들이 이런 농악 장단의 기운을 타고 유영하듯, 장난을 걸듯 반주자들의 가락을 몸으로 뱉어냈다. 우리 춤과 농악의 충돌이 이루어 낼 창발이 새로운 기운으로 예감된다.

허튼 소고놀음이지만 고창농악으로 문을 열고, 지역의 어르신들과 함께 한 아리씨구나 풍장 소리가 공연 중간에 들어와 객석을 들썩하게 했고, 팔소고도 농악 판굿과 함께 마무리를 하여 수미일관 농악과 마당의 형식을 놓치지 않았다. 고창농악보존회원이 출연한 <아리씨구나 풍장소리>는 한여름 농사일을 다 끝내고 들판에서 푸지게 노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후 판은 그런 농사, 농경 사회의 풍경으로 그려졌다. 강은영의 <풍장 고깔소고>는 중견의 농익은 생동감과 공력의 고깔소고춤을 보여주었고, 김경진의 <아리씨 소고>도 중년이지만 산뜻하고 푸릇한 맵시의 소고춤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이 신선하게 느껴진 것은 고창농악 판굿 호호굿마당의 콩등지기, 콩꺽자 같은 농사풀이 동작을 재해석한 대목이다.



이 판을 기획, 연출한 김영희 선생은 연구자인가, 춤꾼인가? 이날은 춤꾼이 아니라 사회자로 나섰는데, 지금까지 여러 춤꾼들과 함께 오늘의 결과물을 내오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현재 한국무용계, 특히 전통무용계가 과도하게 무대에 집착하여 맥락을 잊고 방향을 잃었다고 했을 때 오늘의 ‘소고놀음 4 허튼’은 작은 하나의 좌표나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된다. 마당과 무대가 만나고, 농악과 무용이 만나고, 다시 공동체 문화와 생활예술이 창발하는 푸지고 빛나는 잔치를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