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간조어객의 그림과 화제(畵題)-3] 신윤복 ‘가을나들이’
[홍간조어객의 그림과 화제(畵題)-3] 신윤복 ‘가을나들이’
  • 안국진 미술칼럼니스트
  • 승인 2024.08.22 16: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미인을 봤더라도 그리기는 어렵다네.
 

[더프리뷰=부산] 안국진 미술칼럼니스트 = 신윤복이 그린 이 그림은 원 제목이 알려져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해설을 달았지만, 대개 손철주의 해설대로 「처네를 쓴 여인」이라 한다. 그러나 정확한 그림의 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조금 유명한 사람이 붙인 이름대로 그냥 따라 부를 뿐이다.

그런데 저 여인이 쓴 것은 처네가 아니다. 처네는 '천의(薦衣)'에서 나온 말로 보온용이기 때문이다. 뒷모습을 보이는 저 여인이 쓴 것은 여인네들이 나들이 갈 때 쓰는 쓰개치마다. 화제의 끝에 보이는 초서체의 두 글자는 '맹추(孟秋)'다. 이는 음력 7월을 말하는 것이니 별로 추울 때가 아니며, 보온용 옷을 걸치고 나갈 시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살펴볼 글자는 ‘전몽(旃蒙)’과 ‘적분약(赤奮若)’이란 글자다. 이 두 글은 고대에서 사용하던 육갑(六甲)의 초기 이름이라 고갑자(古甲子)라 한다. ‘전몽’은 을(乙)을 뜻하고, ‘적분약’은 축(丑)이다. 그러니 저 그림은 을축년인 1805년에 그렸다는 말이다.

18세기 후반은 조선에서 중인들을 독자로 한 상업용 출판물이 아주 성행했다. 이를 방각본(坊刻本)이라 했다. 국가에서 출간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영리를 목적으로 만든 책이다. 그 중 유명한 책이 1799년에 처음 출간된 『사요취선(史要聚選)』이었다. 이 책은 당시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1823년, 1856년, 1865년 등 여러 차례 재판이 간행되었다. 중국사의 주요 인물들에 관해 29개 분야로 나누어 간략하게 서술한 일종의 인물 역사 사전인데, 정사(正史)가 아니라 비화(秘話)와 이적(異蹟)을 중심으로 엮은 것이다. 고갑자(古甲子)에 대한 설명은 첫 장인 「제왕편」에 나온다. 혜원이 그림을 그리기 6년 전부터 유행한 책이니 그도 분명 이 책을 읽었을 것이다.

전몽은 “만물이 서로 다투는 것”을 말하고, 적분약이란 “붉은 것이 분투하고 약진함 즉, 음기에 눌린 양기가 다시 떨치고 일어나려는 모습이며 만물이 가지고 있는 성질”을 말한다. 굳이 을축년이라 하지 않고 ‘전몽적분약’으로 쓴 이유를 짐작케 한다. 갑갑한 집에 갇혀 지내다가 모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나들이 가는 것이다. 쓰개치마 걸치고 나들이 나섰다가 스님을 만나 시주를 하는 여인들을 그린 혜원의 다른 그림 「노상탁발」도 있다.

 

신윤복, 노상탁발

위의 그림을 다시 보자. 주변 정경으로 그린 집을 보면 기와의 처마가 제법 위엄이 있고, 대들보가 튼튼한 것이 예전에는 꽤나 권세가 있던 집이었다. 그러나 집안의 흙벽이 일부 뜯겨있는 것으로 보아 현재의 가세는 그리 부유하지 못한 것을 알려준다. 이 여인은 집안에서 길쌈이나 바느질로 가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는 일을 했을 수도 있다. 쓰개치마를 한 탓에 얼핏 크고 뚱뚱하게 보이지만, 분홍 가죽신의 날렵한 선과 오뚝한 콧날은 이 여인의 미적 안목을 웅변하고 있다. 또한 두발 사이의 간격을 보면 보폭이 크지는 않으나 이 분홍신의 날렵한 선은 얼른 가고 싶은 마음까지 나타내고 있다. 치마와 바지의 주름에도 급하지는 않으나 동적인 움직임이 배어있다.

혜원이 본 여인은 옥색 치마에 하늘색 쓰개치마를 쓰고 분홍신 신고 가을 나들이 나서는 모습인데, 자태가 제법 아름다웠을 테다. 여인은 눈썹이 푸른 산처럼 까맣고, 눈은 가을 물결처럼 잔잔했을 지도 모른다. 고고하여 혜원이 슬쩍 던지는 추파(秋波) 정도에는 눈도 깜박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반집 여인이라 얼굴을 함부로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자의 후손이라 중인이었던 그가 함부로 추파를 던졌다가는 붙잡혀 가서 매타작을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미인을 그리는 것은 혜원(蕙園)의 주특기다. 등을 보이며 나들이 가는 미인인데 아무런 생각이 없었을 리가 없다. 자고로 미인은 화가를 두려워하는 법이 아니던가? 화가에게 잘못 보이면 흉노 땅으로 팔려가는 왕소군이 되는 법인데 하면서 여인을 그렸을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호인 혜원을 쓰고, 여인 그림에 자주 쓰는 낙관 ‘입보(笠父)’를 찍어 놓았다. 입보란 ‘갓 쓴 선비’란 혜원의 자(字)다.

입보란 말은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실려 고려 때부터 소개된 진(晉)나라 주처(周處)의 『풍토기(風土記)』에서 근원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승거대립(乘車戴笠)’의 고사가 실려 있다. 친구가 부귀하게 되어 마차를 타고 있고, 나는 빈천해 삿갓을 썼더라도 서로 만나면 마차에서 내려와 인사하고, 내가 걷고 친구는 말을 탔더라도 서로 만나면 말에서 내려와 인사하자는 뜻이다. 자신이 서자의 후손이라 중인이기는 하지만 근본은 양반이란 것을 강변하는 것이다.

이 그림에 여백이 있어 화제를 쓴다면 명(明)나라 고계(高啓, 1336-1374)의 시 「배면미인도(背面美人圖)」가 어울리겠다.

고개 돌리라고 부르고 싶지만 이름을 모르네, / 欲呼回首不知名,

동풍을 뒤로 하고 돌아섰는데 어찌 정을 허락하겠나. / 背立東風幾許情.

화가에게 원래 못 봤다 하지 말게. / 莫道畵師元不見,

경국지색이란 봤더라도 그리기는 어렵다네. / 傾城雖見畵難成.

* ‘父’자는 아버지라 할 때는 ‘부’, 남자를 높이 부를 때는 ‘보’로 읽는다. 어보(漁父)는 낚시하는 선비, 어부(漁夫)는 생업으로 하는 사람. ‘농보(農父)’는 농사를 관장하는 관리, 농부(農夫)는 농사가 생업인 사람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