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오페라에 숨은 이데올로기
[공연리뷰] 오페라에 숨은 이데올로기
  •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24.09.08 10: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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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부산오페라시즌 푸치니 '나비부인'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나비부인' 8월 31일 공연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더프리뷰=부산] 김정화 음악칼럼니스트 =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가 작곡한 <나비부인>은 일리카(Luigi Illica, 1857 -1919)와 자코사(Giuseppe Giacosa, 1847-1906)가 이탈리아어로 대본을 썼다. 대본과 음악이 완성되기까지는 몇 단계를 거쳤다. 푸치니는 영국에서 상연된 벨라스코(David Belasco, 1853-1931)의 단막극 <나비부인: 일본의 비극(Madame Butterfly: A Tragedy of Japan)>을 보고 감명을 받아 오페라를 만들었다. 이 연극은 미국의 변호사이자 작가인 롱(John Luther Long, 1861-1927)의 동명 소설 <나비부인(Madame Butterfly)>(1898)을 원작으로 한다. 원래 이 소설은 프랑스 해군 장교이자 소설가였던 로티(Pierre Loti, 1850-1923)의 자전적 소설 <국화부인(Madame Chrysanthème>(1887)에 롱이 자신의 누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보태어 쓴 것이다.

애초에 2막으로 만들어졌던 이 오페라는 1904년 2월 17일 밀라노의 라 스칼라 초연에서 엄청난 혹평을 받았다. 그러자 푸치니는 곧바로 수정에 착수, 제2막을 둘로 나누어 3막짜리 작품으로 바꾼 뒤 같은 해 5월 28일 브레샤에서 초연해 격찬을 받았다. 이 오페라는 푸치니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며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상연된다. 푸치니는 열다섯 살 어린 소녀가 열여덟이 될 때까지 겪은 격동의 시간을 사실주의적 비극으로 표현해 대성공을 거둔 것이다. <나비부인>은 오페라의 기존 상식과 틀을 깨는 형식을 시도했다. 무대 전환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소에서 모든 일이 전개되도록 연출했을 뿐만 아니라 무용적 요소도 과감하게 없앴다

소프라노 조선형, 메조 신성희, 고로 원유대, 메조 신성희, 테너 박지민, 바리톤 정승기(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왼쪽부터 조선형, 신성희, 원유대, 박지민, 정승기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소문난 잔치

지난 8월 31일과 9월 1일 부산에서는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 이처럼 유명한 <나비부인> 전막이 무대에 올랐다. ‘탁월한 무대 연출과 근래 보기 드문 세련미를 추구했다’는 평을 받으며 2019년 오페라 <나비부인>으로 대한민국오페라대상을 수상한 김숙영이 연출을 맡았다. 합창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시즌 부산오페라하우스 합창단·오케스트라가 함께 했으며, 오케스트라 지휘는 ‘올라운더 마에스트로’로 불리는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이병욱이 맡았다.

이번 기획에는 실력 있는 성악가들을 발굴하고 부산의 오페라 시장을 확대한다는 취지에 따라  일부 출연진은 오디션까지 거쳐 참가했다.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주역들의 자리는 초초상에 소프라노 임경아, 핑커톤에 테너 양승엽, 샤플레스에 바리톤 나현규, 스즈키에 메조소프라노 신성희·김세린 등 국내외 다양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실력파 성악가들로 채워졌다. 테너 양승엽, 바리톤 나현규는 부산 출신이다. 특히 첫째 날은 ‘실력파 성악가들과 제작진이 한자리에 대거 출연한다’는 언론 보도로 부산 관중들의 큰 기대를 모았다. 초초상 역에 완벽한 테크닉과 화려하면서도 청명한 목소리를 가졌다는 소프라노 조선형을 비롯해 뛰어난 가창력과 탁월한 연기력으로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테너 박지민과 바리톤 정승기가 핑커톤과 샤플레스 역으로 사전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기대는 말 그대로 기대에 불과했다. 곡 전체를 주도하는 빠른 오케스트라의 도입부는 정돈되지 않아 못갖춘마디가 갖춘마디의 음악처럼 들렸고, 2/4박자 안의 16분음표들이 마치 셋잇단음표처럼 들렸다. 푸가 음형에서는 악센트가 있는 강박들이 어긋나 악기 사이의 민첩한 대화를 들을 수 없었다. 큰 소리를 내려고 욕심을 부린 탓인지 둔하게 들렸다. 주선율을 이어받아서 나오는 바순의 멜로디와 나머지 목관악기는 살짝살짝 어긋나는 박자 때문에 우왕좌왕 다투는 것처럼 들렸다. 오페라 전체를 관통하는 다양한 박자와 음악적 분위기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 지루했다. 특히 중간중간 도드라져 나오는 플루트, 호른, 트럼펫 소리는 전체 음악의 균형을 깨뜨렸다.

그런데 공연이 시작된 지 8분 정도 지났을 즈음 갑자기 객석의 어둠 속에서 불빛과 함께 “ㅇ열 ㅇ번입니다.”라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안 그래도 오케스트라의 첫 시작 음부터 어긋나 집중을 못하고 있던 터에 늦게 들어오는 관객을 안내하는 공연장 안내원의 큰 소리는 객석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발소리를 자박자박 내며 틈틈이 들어오는 지각 관객 때문에 미리 와 있던 관객들에 대한 극장의 배려는 아예 없어 보였다. 공연이 시작되었는데 지각 관객을 들여보내는 구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왼쪽부터 신성희, 조선형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왼쪽부터 신성희, 조선형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제2막에서 초초상의 아리아 'Un bel di vedremo(어떤 갠 날)'의 첫 소절이 나오자마자 주변에 있던 관객들 가운데 마치 뿜어내듯 웃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객석에서 그냥 나가버렸다. 물론 아리아가 끝나자 “브라바!”를 외치며 박수를 보내는 관객도 있었다. 이 아리아는 <나비부인>을 본 적이 없는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정말 유명한 곡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별처럼 반짝이는 18세 아가씨가 품고 있는 간절한 바람과 굳건한 믿음과 기다림의 소리가 아니었다.

첫째 날의 주역들은 큰 성량을 내는 것에 욕심을 부리는 듯 보였다. 특히 핑커톤과 샤플레스는 짓누르는 듯한 소리와 책을 읽는 듯한 프레이징 처리로 캐릭터를 분명히 드러내지 못했다. 게다가 가수들의 노래 음정은 계속 플랫되었으며 텍스트도 명확히 전달되지 않았고 연기도 상황에 어울리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스즈키와 샤플레스가 주인공같이 느껴졌다. 끝날 때까지 도무지 집중하기 어려웠던 이 날 공연은 참여한 가수들이 월드클래스라는 말이 빛이 바랬다. 제1막이 끝나자 자리를 떠난 관객들도 제법 있었다. 전반적으로 음악 자체가 산만하여 마치 주파수가 제대로 잡히지 않은 1930년대 라디오를 볼륨만 잔뜩 올려놓은 상태 같았다.

왼쪽부터 임경아, 오바울, 원유대, 양승엽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왼쪽부터 임경아, 오바울, 원유대, 양승엽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소프라노 임경아, 테너 양승엽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왼쪽부터 임경아, 양승엽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왼쪽부터 임경아, 김세린(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왼쪽부터 임경아, 김세린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땀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둘째 날이 그나마 나았다. 첫째 날의 가수들과 비교해 소리가 약했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전날 공연보다 균형감이 있어 완성도 면에서는 훨씬 나았다. 가수들의 정돈된 소리뿐만 아니라 캐릭터에 어울리는 연기가 보태졌다. 텍스트는 대화하듯이 객석 끝으로까지 잘 전달됐으며, 가수들 사이의 조화로움도 볼 수 있었다. 고로(원유대)도 전날에 비해 뚜쟁이라는 직업을 더욱 밉살스럽고 간사하게 표현했다. 다만 과하게 흥분된 소리가 났다. 초초상(임경아)은 15세의 게이샤라는 설정에 접근한 연기를 보여주었고 노래를 들려주었다. 첫사랑에 빠진 소녀의 조심스러움, 설렘, 천진함, 행복감, 사랑을 기다리는 초조함, 두려움, 간절함, 배신에 대한 분노, 혼란, 절망 등 어린 초초상이 느낄 법한 다양한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했다. 핑커톤(양승엽)은 제1막 시작에서 한 손을 주머니에 자연스럽게 찔러 넣으며 미군 특유의 자신감과 건방짐을 잘 표현하였고, 젊은 혈기와 호기심에 들뜬, 사랑을 가장한 사기꾼이자 난봉꾼이라는 이미지를 제대로 보여주었다. 첫째 날 공연한 주역들의 거대한 성량에 파묻혀 존재감이 적었던 야마도리(오바울) 역시 둘째 날에는 다른 가수들과 조화롭게 섞였다.

특히 감명 깊게 들었던 곡, 제1막의 'Vogliatemi bene – Vieni, vieni(사랑해 주세요. 어서 와요, 와요)!'라는 사랑의 듀엣은 아름답고도 서로 다른 이중적 감정을 잘 표현했다. ‘꽃의 이중창’이라 불리는 제2막의 'Scuoti quella fronda di ciliegio(벚나무꽃 있는 대로 따서)'는 초초상과 스즈키의 듀엣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레오 들리브의 오페라 <라크메>에서 라크메와 말리카가 부르는 이중창과 유사하다. 합창도 둘째 날이 되자 무대에 익숙해진 탓인지 여유가 보였다. 제2막 마지막에 나오는 '허밍 코러스'는 기다림에 지친 초초상과 늘 곁을 지켜주는 스즈키,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한 돌로레(나예주)의 비애 가득한 심정을 제대로 드러내었다. 오케스트라도 첫 시작 템포가 조금 빨라졌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불편한 소리도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오페라 공연에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의 역할은 얼마나 많은 연습과 경험이 축적되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한편 연출은, 사람들 사이에서 천재 연출가라는 칭찬이 자자했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천재적이거나 혁신적인 부분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제3막 첫 장면에서 천장에서 떨어지던 낱장의 꽃이파리가 초초상의 죽음에 대한 복선으로 작용했던 점은 인상적이었다. 꽉 막힌 벽처럼 만들어진 무대와 기울어진 무대는 서구제국과 동양, 그리고 남성과 여성에게 작용하던 그 시대의 한계를 잘 드러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의상에서는 기존의 기모노를 벗어던지고 최소한 캐릭터에 맞는 새로운 시도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지만 신선함을 줄 수 있는 연출이 이 오페라를 진짜 예술로 만들 수 있다. 원작 그대로만 답습해 재현한다면 구태의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2024 시즌오케스트라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2024 시즌 부산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리허설. 지휘 이병욱.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오도(誤導)와 오보(誤報)

공연이 끝나고 10대 후반의 초초상을 연기하는 가수를 두고 “오페라의 비주얼과 작품 내용이 맞지 않아 생기는 괴리감 문제는 어김없이 불거졌다”는 지역신문의 기사를 보았다. 오페라는 뮤지컬과는 달리 출연 가수의 얼굴색이나 나이의 중요도가 덜하다. 노래가 훨씬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주인공인 초초상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페라 전체를 이끌어 가야 하는 비중이 큰 역할이기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과 에너지 소모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엄청난 체력을 요구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기량이나 오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나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아니다.

애초에 푸치니도 33세의 소프라노 스토르키오(Rosina Storchio, 1872-1945)를 염두에 두고 곡을 썼다. 스토르키오는 1904년 라 스칼라에서 초초상을 초연한 뒤, 1923년 바르셀로나에서 초초상 역으로 무대와 작별했다. 2024년 5월 미국 뉴욕 메트오페라의 <나비부인>은 43세의 리투아니아 소프라노 그리고리안(Asmik Grigorian, 1981-)이 초초상으로 데뷔했으며, 50의 나이를 바라보는 한국의 소프라노 임세경도 2015년 오스트리아 빈 슈타츠오퍼에 초초상으로 이름을 알려 최근까지 200회 가까이 나비부인 전문 소프라노로 활약하고 있다. 또 프로그램 노트에는 그냥 인터넷에서 베낀 듯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자칭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그릇된 지식이나 정보를 제공하면 그것이 사실인 양 돌아다니게 된다. '마다마 버터플라이(Madama Butterfly)'는 푸치니 오페라의 이탈리아 이름이지 미국 소설의 제목이 아니다.

소프라노 조선형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소프라노 조선형 (사진제공=부산문화회관)

태극기와 나비부인

이번 공연은 공연 외에도 다른 요소들로 부산 문화계에서 문제가 되었다. 하나는 상연 시기다. 8월 15일 광복절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물론 일장기의 분위기를 나타내지는 않았으나 태극기와 함께 걸려있는 옥외 광고를 상상해 보라. 내년은 광복 80주년이자 공교롭게도 을사년이기도 하다. 물론 주최측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라 믿는다. 당연히 예술작품 자체를 검열하자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지만 기획자라면 불편한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의 정서적 특수성을 고려해 시기를 조정하거나 작품을 대체하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 그 많은 푸치니의 작품 중에서 <나비부인> 말고도 그를 유명하게 만든 <마농 레스코(Manon Lescaut)>나 <일 트리티코(Il Trittico)> 전작을 보는 기회를 만들어 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부산의 한 오페라 애호가는 <나비부인>이 제국주의적 요소가 있다며 상연 자체를 문제 삼았다. 사실 이 논쟁은 2007년에 이미 한 차례 있었다. 영국의 음악학자 파커(Roger Parker, 1951-)가 “눈물을 쥐어짜는 신파조의 <나비부인>에 인종차별적인 요소가 많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핑커톤이 주인공의 가족과 종교적 관습까지 무시하고 조롱하는 것, 겨우 15세 소녀가 파렴치한 외국인과의 비극적인 결혼으로 사생아를 낳은 것, 초초상이 자살을 선택하는 끔찍한 순간에도 핑커톤은 그녀를 말리거나 놀라는 대신 소년을 데리고 떠난 점 등을 지적했다. 제1막에서 자랑스럽게 부르는 "아메리카여 영원하라”는 노래는 그 자체가 제국주의적 가치관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커는 인종차별이 전지구적 문제로 떠오른 지금 같은 시대에 원작을 그대로 상연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이 오페라가 가진 혁신성이나 음악적 완성도와는 달리 이 작품의 내용에는 분명 서구 제국주의적 시각이 근본에 깔려 있다. 서양 남자가 동양 여자를 쉽게 얻고 버리는 구조, 동양 여자가 그 백인 남자만을 바라보고 기다리는 구조는 서구우월주의가 아니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것을 우리는 '인종차별'이라 한다. 또한 남자가 여자를 그냥 버려도 순종적이어야 하며, 아이를 매개로 희생해야만 한다고 설정하고 자살로 마감하는 구조는 여자는 남성의존적이어야 한다는 또다른 표현이다. 이것은 성차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미군 사기꾼이 좋다고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일편단심 기다리다가 자살하는 게이샤의 이야기인 이 오페라를 <나비부인>이 아니라 '불나방부인'이라 불러야 한다고도 했다. 예술이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면, 예술이 가진 중요한 기능이 당대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있다면, 이 시대에 푸치니가 처음 만든 방식대로 <나비부인>을 상연하는 것은 분명 비판의 소지가 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고

마지막으로 오페라하우스 개관을 앞둔 부산시가 오페라를 제대로 할만한 역량이 있는가 하는 부분이다. 심지어 개관 준비를 위해 새로 왔다는 부산시 공연기획팀장은 6월 1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수준 높은 공연을 부산 시민이 정기적으로 접할 수 있게 하고 싶다. 다만 지역에는 대규모 공연 기획사가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부산에 '대형 기획사'가 없어서 월 2회 정도의 기획공연을 스스로 기획할 수 없고, 따라서 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공연을 기획해야 하는 공연기획팀에서 백화점 명품 쇼핑하듯 작품을 사 와서 공연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야말로 공연기획팀을 이끌 자격이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공연 기획자는 일반 공무원이 아니고 진짜 전문가여야 한다. 공연을 보는 안목을 갖추고 지역을 이해하며, 시대 흐름을 읽어내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이제는 ‘진짜’ 공연 기획을 해야 할 때다. 그야말로 갈 길은 까마득하게 먼데, 오페라하우스 건물만 시나브로 완성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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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순 2024-09-08 12:40:52
잘 읽었습니다. 프로그램 노트의 부실함은 어디나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제가 사는 지역에서 시립예술단에 자주문제 제기를 해봐도 고쳐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