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뭣이 중헌디? 우린 무대에서도 풍물굿으로 논다.

[더프리뷰=고창] 조춘영 성균관대학교 한국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 = 전라북도에서는 10년 넘게 한옥활용 상설 브랜드 공연 사업이 진행되었다. 고창농악보존회(회장 구재연)는 이 사업의 일환으로 고창 지역 문화유산을 소재로 풍물굿의 무대화, 풍물굿 양식의 새로운 실험들을 계속해왔다. 보존회의 풍물굿쟁이들은 웬만한 배우 뺨 칠 정도의 연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축적된 역량과 신진 세대들의 기획, 연출력(연출 홍예림)이 가세하여 세련된 감각의 풍물굿 공연물이 나오게 되었다.
고창농악보존회의 상설공연을 빠짐없이 관람한 필자의 관심은 “풍물굿이라는 매체를 무대 위에서 어떻게 펼쳐낼 것인가?” “‘샤이닝 고창’이라고 하니 혹시 농악이 아니라 ‘고창’이 키워드인가?” 두 가지 질문을 품고 유심히 공연을 마주했다. 풍물굿 연구자로서 이 시대 풍물굿이 무대 위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데, 의미있는 사례가 많지 않다는 현실인식 때문이다. 매년 한 번 이상 관람하던 고창의 상설공연을 올해는 겨우 마지막 공연에서야 마주하게 되었다. <2024 전통예술 지역브랜드 상설공연 컨템퍼러리 감성농악 샤이닝 고창>은 2024년 7월 6일부터 시작된 공연으로, 필자는 9월 14일 고창읍내 동리국악당을 찾았다.
예매한 표를 건네받으며 스태프 친구에게 그동안 관객들의 반응이 어땠냐고 물었더니, 객석 점유율이 100%에 가까웠단다. 지역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흥행이지 않을까? 아니나 다를까 관람석에 앉아 주변을 살피니, 어르신들이 많은 건 당연하지만 초등 전후의 어린아이나 중등 학생, 청년층이 상당히 많았던 것이 의외라 여겨졌다.

조명이 바닥을 비춰 다섯 개의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며 공연이 시작된다. 무대 뒤에서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여자아이(박성은)가 폴짝폴짝 시내 징검다리를 건너듯이 앞으로 등장한다. 여자아이는 무대 오른쪽에 배치한 바위 위에 자리하고 어떤 '수첩'을 읽는다. 무대 뒤편으로 영상이 재생된다. 고창농악보존회가 20-30년 전 복원사업을 했던 문굿, 풍장굿이 펼쳐지는 논밭과 들판에 대포수, 무동과 굿패... 아 돌아가신 고 박용하 대포수님도 보이네!
나발 소리가 나고 대포수와 상쇠만 등장하여 가락을 내고 논다. 소수의 치배들은 무대 뒤 막으로 그림자와 아득한 소리로만 등장한다. 대포수와 상쇠는 서로 조응하기도 하고 각자 동작을 취하는데 아마 영기로 문을 잡고 마을로 들어가기 위한 문굿을 놀리는 장면 같다. 상쇠가 퇴장하고 대포수와 장구잽이가 나와 역시 문굿의 한 장면을 말없이 연기한다. 대단위 인원이 펼치는 풍물굿에서 한두 인물을 뚝 떼어내어 무대 위에 올려놓으니 관객들은 연출된 그 장면에 오히려 집중하게 된다.

태평소, 각시, 대포수와 각 치배들이 모두 등장하여 굿 가락을 어루고 논다. 치배들이 일렬로 몸을 숙이고 여자아이는 소고를 들고 놋다리밟기처럼 다리를 건너건너 치배들과 함께 퇴장한다. 대포수만 홀로 남아 무대 왼쪽 바위에 자리하고 수첩에 무언가를 적는다. 영상으로 메모의 내용을 관객에게 전달한다. ‘이렇게 고창의 문굿이 기억되고 기록되어 왔구나!’
장구잽이 한 명이 오채질굿을 치며 서서히 등장한다. 질굿은 길을 걸을 때 치는 풍물가락이다. 옛 명인들로부터 이명훈 상쇠가 고창농악을 이어오고, 고창굿을 일구고, 지금 여기까지 인도해 온 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배경 영상으로 당산나무가 보이며 무대는 당산나무 앞 마당이 된다. 장구잽이의 연주는 설장구지만 개인놀음 설장구가 아닌 길의 노래가 아닌가 싶다. 전에 볼 수 없었던 흰 상의에 검은 하의를 갖추고 색이 바랜 고깔을 써서, ‘무슨 사연이 있는가 보다’ 상상력을 자극하고 어떤 서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무대 오른쪽 바위에 앉아 역시 수첩에 무언가를 적으며 기억하고 기록한다.

대포수, 장구잽이가 수첩에 무언가를 적는 행위는 상징적이며 의미심장하다. 풍물굿을 모르는 이들은 깽매기, 장구 대충 두드리는 거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한다. 하지만 풍물굿을 하는 이들은 악기 치는 것을 넘어 가락이 어떻게 전개되고, 전체 굿이 어떤 절차와 순서로 진행되는지, 각 치배(악기) 별 기능과 역할에 대해 오랜 시간에 걸쳐 학습해 간다. 그래서 글을 통해 기록하고 정리하며, 이런 문서들을 통해 지속적으로 재현을 한다. 현장에서는 '굿문서'라고 하여 전통이 있는 마을은 이런 굿문서를 자랑으로 여기기도 한다. 풍물굿이 비언어(넌버벌) 매체라고 하지만 언어, 문자를 통해 풍물굿쟁이들의 생각과 의식 절차를 표현한다. 그래서 수첩에 기록하는 장면이 소중하고도 귀한 장면이다.

수첩에 메모하는 장면과 맞물려서 여자아이가 등장하는데, 배경은 고 황규언 명인과 이명훈 상쇠가 장구를 마주하고 가락을 배우는 전설적인 사진이다. 아이는 장구를 가지고 나와 역시 선생과 장구를 마주하여 앉는다. 배경 이미지와 같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세대로 장구 가락이 이어져 간다. ‘아, 이렇게 이명훈 상쇠가 황규언 어르신께 배웠구나.’ 배경과 전경으로 장구 가락이 전승되는 사이 모든 치배들이 등장하여 굿을 일군다. 소고 선생과 젊은 소고잽이가, 북 선생과 북 제자가 서로 시범을 보이고 따라하고... ‘고창농악이 이렇게 살갑게 이어졌구나.’ 이렇게 장구, 북, 소고 가락과 몸짓이 이어지고 돌아가고 놀아진다.
배경을 꽉 채운 막이 내려오고 수십년 고창농악 기록 영상이 상영된다. 그동안 재현한 문굿, 줄굿, 당산굿, 도둑잽이굿, 풍장(두레)굿인데 황규언, 유만종, 정창환, 박용하... 돌아가신 고창의 명인들이 보인다. 시기와 장소, 굿판들이 다른데 굿거리 장단이 실제 연주되는 것처럼 정교하게 편집되어 펼쳐진다. 고창의 논과 밭, 당산나무와 동네 마당, 가정 집 안과 밖, 예전 폐교 전수교육관 등 눈 익은 풍경이다. 그 공간 안에서 이루어졌던 지신밟기, 콩등지기, 잡색놀이, 구정놀이, 장원놀이, 줄놀이, 소, 장화, 농기, 용기, 무동 아이들, “아리씨구나” 모두 인간적이고 정겹다. 고창의 마을, 고창의 사람, 고창의 풍물굿을 극장 공간에 있는 모든 이들은 공유하고 공감한다.

농사복장을 한 아낙네들이 김을 매는 동작을 하며 등장. 한쪽 바위에 누워 자는 태평소잽이. 북 든 아낙네가 혼자서 “호호굿” 가락을 연주하며 등장, 관객과 더불어 “호호” “이허” 가락을 따라 소리를 지른다. 풍년질굿(굿거리배)으로 분위기를 조여가면서 휘모리로 가락을 넘어가서는 태평소(고안나)가 가운데로 들어오고, 형형색색 가발의 아낙네들이 막춤으로 일상의 단조로움을 깬다. “우리 고창에서는 일하면서도, 일상 속에서도 이렇게 놀아.” 굿으로, 노래로, 춤으로 어울려 노는 아낙네들 참 격의없이 끌리는대로 잘 노는구나!
어느새 관객석에서 기침을 하는 노인이 등장. 왼쪽 바위에 놓인 수첩을 꺼내 과거를 회상하는 듯하다. 코가 한쪽으로 비뚤어진 탈을 쓴 창부(우창), 풍장굿의 장화, 각시, 양반, 막걸리병 든 중광대와 빨간모자 쓴 장구가 어울려 춤을 춘다.
아이가 나오고 노인과 함께 굿판에서 쓸 금줄을 꼰다. 노인은 굿문서인 수첩을 들고 아이에게 가락과 굿 절차를 설명한다. 대사 없이 동작과 연기만으로... 연기인 듯 연기 아닌, 연극 속 스토리인 듯 스토리가 아닌... 연극인 듯 풍물굿인 장면으로 무대가 채워진다.

복색을 갖춘 상쇠가 등장하고 노인과 가락을 주고 받는다. 노인은 일상이고 상쇠는 비일상의 세계로 풍물굿은 두 세계를 오간다. 지금 상쇠는 과거의 아이이고, 현재의 아이는 미래의 상쇠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섞인다. 영기를 든 아이와 대포수가 징검다리를 건너온다. 두 영기는 무대와 관객석 사이 양편에 서고 금줄을 묶으면서 문을 잡는다. 영기로 문을 잡으면서 무대와 관객석은 마을 안과 밖이라는 새로운 공간으로 전환된다. 무대와 관객석이 연결되고 대치되며 경계를 허물어야 할 관계로 정립된다. 대포수가 징검다리를 거슬러 퇴장하고 굿패가 등장한다. 그 사이 무수한 관객들은 앞으로 나와 금줄에 돈을 꽂기 시작한다. 한참을... 문굿에서 마을에 입장하기 전 풍물패들은 모든 기량을 총동원해 각종 예능을 선보인다. 분위기가 고조된다. 치배들이 논다. 오른쪽 바위에 차분히 앉은 아이는 수첩을 보고 있다. 눈 앞 풍경은 아이의 상상 속 굿판인 것이다. 조명은 무대 가운데 굿패의 풍물굿판이 아니라 아이를 비추고 있다.

이제 알겠다. 여기 이 아이는 단순한 연극적 역할(캐릭터)만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인 이 아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오가며 이어주고 있다. 이 아이는 일상과 비일상, 공간과 공간, 사람과 자연과 신을 이어주는 풍물굿처럼 '잡색'이구나. 아이의 소품은 사진기와 수첩인 것이다. 그래서 공연 시작과 끝에 아이가 수첩을 보며, 동시에 풍물굿을 바라보는 장면이 배치된 것이다. 풍물굿 가락과 춤이 펼쳐지는 무대 중앙이 아니라 조명이 비춘 아이의 수첩을 바라보는 장면. <샤이닝 고창>에서 창조한 잡색, 위대한 장면이라 단연코 말할 수 있다. 아이의 시선, 아이의 관점.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기성세대의 풍물굿은 어떻게 보여지고 있나? 기성세대 풍물굿쟁이들은 풍물굿의 무엇을, 어떻게, 아이들에게 이어줄 것인가? 묵직하고 심각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10년 넘게 고창농악의 무대 상설공연을 보면서 항상 느꼈던 문제의식은 공연장르가 굿인가, 극인가였다. 일반적으로 연극은 현실세계와 분리된 가상(허구) 현실의 이야기가 있고 인물(캐릭터)과 인물들의 대사가 있다. 그러나 풍물굿은 지금 여기의 세계를 기반으로 언어라는 매체를 배제하고 타악음악과 춤과 놀이, 연극 등 다양한 매체가 융복합하여 혼종성과 총체성을 특성으로 한다.

<샤이닝 고창>에서는 여기서 나아가 영상, 이미지, 조명이라는 매체를 끌어들여 무대 위 풍물굿을 보조하였다. 풍물굿을 풍성하게 포장했다기보다는, 고창에서의 풍물굿 역사, 풍물굿 장면 하나하나를 소환하여 차분하고 섬세하게 관조하게 만들었다. 아이의 눈, 아이의 사진기, 아이의 수첩 속 기록이 지금 여기 관객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영화 속 영화, 그림 속 그림과 같은 중층적 구조를 끝까지 가지고 가는 연출의 힘이 기존 마당에서의 풍물굿과 다른 지점이라 할 수 있다.
필자의 두 번째 질문, <샤이닝 고창>의 키워드는 '고창'과 '고창풍물굿'의 미래를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고창농악보존회는 1980년대(물론 고창풍물굿의 역사는 100년을 넘기지만) 태생에서부터 수많은 마을, 마을굿과 고창읍내 고을굿의 길항과 창발의 역사라 할 수 있다. 고창농악보존회가 고창의 문화이고, 고창의 대표적인 유산이 고창(마을) 풍물굿이다. 어찌 보면 전략적 판단이 대중에게 먹혀 입소문을 타고 극장을 찾는 것은 아닐까?
돌이켜 보면 고창농악 상설공연의 소재들은 고창의 문화유산을 두루 다루었다. 신재효와 여류명창 진재선의 사랑, 모양성 사람들, 정월 지신밟기, 이 지역 동학농민혁명의 광대들... 지역의 전통공연 예술단체들은 깊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작품을 잘 만들어 중앙(서울)으로 가서 무국적, 무연고의 뿌리없는 대중에게 상품을 잘 팔 것인가? 지역의 문화유산(문화콘텐츠)을 활용하여 작품을 만들고 지역으로 공연을 보러 오게 만들 것인가?

부산대학교에서 국악과 음악인류학을 강의하고 있는 미국인 학자 서이지 님의 글을 소개하며 글을 갈무리하고자 한다.
- 추석을 'Korean Thanksgiving'으로 번역하지 마세요.
물론 미국의 국가적 선전에서 Thanksgiving은 감사의 의미를 강조해요. 하지만 그런 식의 국가주의는 Thanksgiving의 끔찍한 역사를 지우지 않아요. 한국인들이 추석을 Thanksgiving과 동일시하려 할 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해요. 첫째, 한국의 수천 년 역사를 가진 명절을 겨우 400년 정도 된 미국의 전통과 연결짓는 것이에요. 둘째, 국제적인 사람들이 한국문화를 이해할 때 미국문화를 우선시하게 되는 것이에요. Thankgiving은 북미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으며, 세계 수백만 명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명절이에요. 따라서 'Harvest Festival'이 추석을 더 중립적이고 정확하게 표현하는 번역이며 더 나은 선택이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