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서울] 손인영 안무가/전 국립무용단 예술감독 = 몽펠리에는 코메디 광장을 중심으로 역사적 건물들이 나열되어 있다. 넓은 광장의 끝에 이탈리아식 건축물인 오페라 코메디 극장이 있고 그 앞에는 정교하게 만든 조각들 사이로 분수가 치솟아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었다. 대부분이 여행객인 듯한 무리가 광장을 오갔고 근처 오픈 카페에서는 젊은 남녀들이 여유롭게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광장의 끝에 있는 오페라 코메디 극장에서 6월 26일 오후 8시 조제프 나지(Josef Nadj)의 작품 <달이 뜰 때(QUAND LA LUNE SE LÈVE>가 초연되었다. 세르비아 태생의 프랑스 무용가인 조제프 나지는 30년 넘게 수많은 안무작을 시각예술이나 음악 등과 결합하여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다. 그는 2021년 이후 말리, 세네갈, 콩고 등 아프리카 무용수들과 함께 작업하며, 폴리 리듬(두 박자가 동시에 진행되어 엇박이 생기게 만드는 것)과 자유로운 에너지를 가진 그들의 몸짓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선풍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안무가다. 한국에서는 과거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 시댄스)와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 초청 받아 공연한 적이 있다.
<달이 뜰 때>는 강렬한 태양 에너지를 가진 아프리카인들의 끈적임이 절제되어 마치 어스름한 달빛 아래서 꿈틀거리는 검은 육체의 판타지 같은 작품이었다.
원시 가발을 쓴 남자가 상수에서 몸을 움찔하더니 오른팔을 내밀고 손을 펴서 천천히 움직였다. 양손을 앞으로 모으거나 주먹을 쥐는 등 몇 가지 움직임을 보여주자 갑자기 조명이 꺼졌다.
상의를 벗은 탄탄한 근육질의 아프리카 무용수들이 양손에 줄을 잡고 벌려 목에 걸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온다. 줄을 조형적으로 만들어 조금씩 다르게 움직이더니 무리가 사라지고 가면을 쓴 남자가 나와 솔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는 손에 펜을 들고 움직인다.
전체적으로 가발 쓴 남자와 군무가 대화하듯 번갈아가며 보였고, 조명이 인/아웃으로 교차되면서 다양한 움직임들이 펼쳐졌다. 이는 마치 나지와 무용수들 간의 교감 같기도 하고, 사고와 육체의 엇갈림 같기도 했다.
무리가 나와 한 명이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고성을 질렀다. 이어 간단한 동작을 하는 두 사람, 또는 세 사람이 옴니버스 식으로 움직임을 보여준다. 모두 유니슨인데 그 동작은 아프리카의 움직임처럼 보였으나 완전히 현대화된 독특한 몸짓이었다.
근육질의 흑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앞으로 뛰쳐나와 멈추고 긴 시간 가만히 서 있었다. 이어 양다리를 흔들기 시작하더니 율동적인 음악에 맞춰 소리를 지르며 아래위로 뛰기 시작했다.
인성과 음악이 번갈아가며 나오고 마치 원숭이 떼가 춤을 추듯 괴상한 소리를 냈다. 원숭이 무리가 천천히 사라지고 처음의 가면 쓴 남자가 등장해 펜으로 뭔가를 끄적였고 상모를 돌리며 공연은 끝났다.
열렬히 손뼉을 치는 관객 앞에 무용수들 모두 가면을 쓰고 나타나 단순한 움직임을 하고 가만히 서서 박수를 한참 받다 퇴장했다. 관객들은 발을 구르고 소리를 지르며 다시 나와 인사하기를 요청했으나 그들은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그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수 차례 나와 인사를 하는 것이 유럽식 인사법이지만 그들은 그것을 거부했다.
몽펠리에에서 본 작품 중 단연 최고라고 할 만했다. 초연한 작품이 완벽하게 만들어지기가 쉽지 않은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움직임이 일반적인 현대무용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아프리카 춤이라고 하기에는 정리가 잘 되었다. 일본 부토의 영향을 받았다는 조제프 나지는 움직임을 약간 느리게 배열했고, 조명 때문인지 움직임이 아주 명확하게 보였다.
안무가 사라지고 무용수들의 능력이 주를 이루는 유럽 무용계에서 안무력이 빛났던 무대다. 무용수들의 작은 움직임까지 안무된 이 작품은 야생의 에너지를 실내로 데려와 정리를 깔끔하게 한 느낌이었다. 인터뷰에서 나지는 재즈 음악을 틀고 무용수들에게 움직임을 요구했고, 그 움직임을 가지고 본인이 현대적으로 각색했다고 말했다. 뛰어난 안목이다.
27일 8시에 본 스페인 안무가 마르타 이스키에르도 무뇨스(Marta Izquierdo Munoz)의 공연 <Roll>은 여성 공동체와 그들의 한계를 탐구한 작품이다. 마치 바퀴 달린 여전사를 보듯, 자유와 저항의 행위인 스케이팅은 신체적 한계를 넘으려는 자기표현이었다. 공연은 체육관처럼 생긴 비녜트(Vignette) 극장에서 열렸다.
극장으로 들어서자 작은 소리로 객석을 향해 누군가 말을 하고 있었다. 누가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롤러 블레이드를 신은 무용수 네 명이 눕거나 앉거나 서서 각자 다르게 천천히 움직였다. 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은 다리만 보였다.
객석 조명이 꺼지자 무용수들이 중앙으로 나왔다. 이어 롤러 블레이드를 착용하지 않고 다리만 보이던 여성 A가 마이크를 들고 말을 하면서 일어섰다. 나이 들고 몸이 육중한 독특한 캐릭터의 그녀는 무대 중앙으로 와서 무용수를 한 명씩 소개했다. 소개받은 무용수들은 관객들의 박수 속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발휘하며 빠른 속도로 롤러 블레이드를 타다 속도를 늦추고 멈췄다.
멈춘 무용수 중 한 명이 각 무용수와 대무를 하며 움직였는데 그 롤러를 타고 하는 대무가 쉽지 않아 보였다. 불안하게 무용수들 사이를 다니며 대무를 한 뒤, 각색된 플라멩코 음악에 맞춰 플라멩코 춤과 비슷한 몸짓을 하면서 무용수들이 움직였다. 두 무용수가 양손을 잡고 돌았는데, 가속도가 붙어 회오리를 치기도 하고 네 명이 허리를 붙잡고 줄줄이 움직이기도 했다.
한 무용수가 무대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롤러 블레이드의 춤 순서를 가르쳤다. 그러고나서 음악을 틀고 가르친 시퀀스를 실연했는데 가르칠 때보다 훨씬 재미있게 움직였다.
우아한 음악이 나오고 네 무용수가 무대 전체를 다니며 부드럽고 유연하게 물 속을 유영하듯 움직였다. 이어 둘은 중앙에 다리를 들고 누웠고 둘은 원을 크게 그리며 팝 음악에 맞춰 2인무를 추었다.
마이크를 들고 멀찍이서 구경을 하던 여자 A에게 한 무용수가 같이 가서 롤러 블레이드를 타자고 했고 A는 불안한 목소리로 무섭다고 했다. 상수에 그녀를 위치시키고 4명의 무용수는 8자 형으로 무대 전체를 가로지르며 시원하게 달렸다. 움직임을 이어받기 식으로 따라 하면서 상수에 서 있는 여자 A의 손을 쳤다.
하수에 포개져 있던 긴 매트를 활용한 춤이 다양한 방법으로 펼쳐졌다. 매트를 상수에 차곡차곡 쌓아 놓고 세 무용수는 그 위에 앉아 무대 중앙에서 랩 음악에 맞춰 섹시하게 춤을 추는 한 무용수를 바라본다.
마지막에 다섯 명이 한 줄로 객석을 향해 굴러오면서 해맑게 웃었다. 작품은 이어 광대 같은 느낌의 희극적인 춤을 추면서 끝이 난다. 롤러 블레이드로 실험적인 안무를 한 안무자의 새로운 발상은 아주 좋았으나 내용상으로 안무가 다소 약했다. 무용수들이 롤러 블레이드를 신고 한 시간 가량 다양한 춤을 춘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근래에 롤러 블레이드 춤이 유럽에서 가끔 보이는데, 안무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 변화되는 실험성의 추이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27일 10시에는 아고라 극장(Théâtre de l'Agora)에서 디미트리 샹블라스와 킴 고든(Dimitri Chamblas & Kim Gordon)의 <집에 데려가다(Takemehome)>가 열렸다. 길잃은 사람들 또는 소외된 사람들을 시적으로 묘사한 작품이다.
관객들이 입장하자 몇 사람에게 양해를 구해 무대 바닥 여기저기에 관람객을 눕게 했다. 거대한 공이 무대 중앙에 있었고, 누워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공과 연결된 줄을 통해 공을 천천히 공중으로 올렸다. 한 남자 무용수가 걷기 시작했고, 헬리콥터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중앙의 거대한 공 안에 하얀 조명이 설치되어 비췄다.
한 무용수가 공 아래서 서성거리며 다녔다. 오른손을 위로 올리고 왼손을 옆으로 들며 움직였고, 다른 장소에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또 다른 무용수가 무대로 올라와 움직였다. 처음의 무용수는 바닥에 엎드렸고, 세 번째 무용수가 무대로 올라왔다. 두 무용수가 춤을 번갈아 출 때 상수에서 하수로 여러 명이 뛰어서 지나갔다.
각자 개성 있는 몸짓으로 멈춰있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는 등 다양한 자기 나름의 즉흥적인 움직임이 보였다. 움직임 사이로 남녀가 천천히 사선으로 걷자 모든 무용수가 관객을 한 명씩 일으켜 같이 사선으로 오가며 걷다가 퇴장했다.
무대에는 공만 남았다. 관객들은 한참 조형물을 바라봤다. 갑자기 무용수들이 상수에서 하수로 뛰어와서 각자 움직이다 서서히 공 밑으로 모였다. 몸짓은 잦아들고 무용수들은 엎드리거나 눕거나 앉았다. 중앙에 전자기타를 들고 서 있던 무용수가 엎드린 무용수들 사이를 다녔다. 이어 무용수들이 꿈틀거리며 서로 엉켜 천천히 기어다녔다. 중앙의 연주자가 노래를 그로테스크하게 불렀다.
남자 무용수 한 명이 고개를 위로 들고 입에 물을 넣어 가글을 하며 춤을 추었다. 마이크를 입에 설치해서 가글 소리가 잘 들렸다. 다른 무용수들은 바닥에 누워서 다리를 위로 올리고 있었다. 남자가 물을 다른 여자의 입에 넣었다. 입에 물을 물고 둘이 유니슨으로 춤을 천천히 추는데 무음이라 집중이 잘 되었다.
갑자기 무용수들이 사선으로 뛰어들어 춤을 추었고, 몇몇 무용수는 전자기타를 칠 준비를 했다. 두 사람이 기타를 메고 서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기타를 치기 시작했다. 똑같은 리듬의 반복이었다. 중간의 큰 공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세 사람이 치더니 네 사람이 치고, 다섯 명이 같이 똑같은 리듬으로 한 줄만 튕겼다. 조명이 완전히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같은 음으로 튕기는 기타 소리는 강력했다. 점점 소리는 강하고 커졌다. 어느 순간 모두 쓰러졌다. 한 남자가 무대로 들어와 무용수들을 깨우자 그들은 악기를 챙겨 무대 밖으로 다 나갔다.
공 안의 조명은 흰색으로 변했고 그 남자는 마지막 솔로를 췄다. 처음에 무대에 섰던 그 남자다. 작품은 그렇게 끝이 난다. 개인적으로 매력이 있었던 작품은 아니었다. 전자기타를 쳤다는 것과 큰 공을 설치했다는 것 외에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대단한 실험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무용수들의 기량은 나쁘지 않았다. 특히, 여러 명이 전자기타의 한 줄만 지속해서 튕기며 한 가지 음으로 주술처럼 소리를 지르는 것은 나름 압권이었다.
28일 오후 6시 아고라의 바구에(Bagouet) 스튜디오에는 소루르 다라비(Sorour Darabi)의 작품 <천일야화(Mille et Une Nuits)>가 올랐다. 미스틱한 아라비안 나이트의 천일야화 이야기를 배경으로 트랜스젠더 목소리의 미학을 탐구한 독특한 작품이다.
프랑스에서 작업하는 이란 안무가인 소루르 다라비는 극작가, 가수, 배우, 디자이너, 시인이다. 이 작품은 마치 이란 고원에서 밤의 적막을 마주하며 삶을 갈구하는 깊은 내면의 울림이 깔려있었다.
작은 창고극장의 무대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로 가득했다. 얼음은 공간에 걸려 있거나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연신 녹아내리는 얼음은 바닥을 흥건하게 했다. 무용수 세 명이 서 있고 객석 쪽에서 한 명이 천천히 움직였다. 남자 무용수들은 상의를 입지 않은 상태였고, 하의는 엉덩이만 드러나게 디자인되었다.
상체 위주의 그루브한 움직임을 하던 한 무용수가 물기로 가득한 바닥에 몸을 비비거나 물을 핥으면서 무대 전체를 휘저었다. 서 있던 무용수들은 천천히 즉흥에 가깝게 움직였다. 우주 속을 유영하듯 음악이 어둠을 감싸 안았다. 플루트를 부는 여자가 여신처럼 걸어 다니며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무용수들은 주로 바닥에서 원초적인 몸짓으로 기거나 남녀 듀엣을 했다. 얼음과 무용수들 사이를 비집고 날카로운 조명이 무대를 부분적으로 명료하게 했다. 빛과 어둠 사이에 몸들이 뒤엉키고 버둥거렸다. 조명의 시선은 다양했다. 위에서 바닥에서 또는 멀리서 가까이서 창고극장의 무대 곳곳을 누볐다. 신비로움이 공연장을 채웠다.
조명의 변화에 따라 움직임은 카메라 앵글을 통해 보듯 때로는 가깝게 다가왔고 또 때로는 멀리 벗어났다. 플루트를 불던 여자가 덩치 큰 남자의 무릎 위에서 다양한 몸짓으로 끈적거리며 듀엣을 했다. 조명은 계속해서 변했다.
조명이 아주 가늘게 긴 길을 만들자 여장을 한 키 큰 남자가 그 작은 조명 속에서 느린 움직임을 했다. 아주 극적으로 보였다. 이어 네 명의 무용수가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쉼 없이 머리를 흔들고 돌아다녔다. 조명은 얼음만을 비추어 무용수가 보이지 않게도 하고, 무용수 한 명씩 집중적으로 비추기도 하며 다양한 변화를 주었다.
플루트를 불던 여자는 서서 걷다가 의도적으로 몸을 바닥에 미끄러지게 했다. 긴 시간 무대 전체를 다니면서 그녀는 넘어지고 일어나고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때마다 물이 첨벙거렸으며 물을 머금은 긴 머리를 휘저으니 물이 공중에서 작은 파편으로 쪼개졌다. 날카로운 조명이 흩어지는 물을 선명하게 비췄다. 바닥에 있는 무용수들은 각자 아주 천천히 움직였는데, 무용수들의 연기력이 좋았다.
여성 같은 남자가 초를 허리에 달거나 들고 양손을 올려 좌우로 흔들면서 무대를 다녔다. 한 남자가 초를 달고 있는 남자를 눕혀 초를 입에 넣고 불을 붙였다. 초를 물고 있는 남자를 뒤에서 선도하며 둘은 듀엣을 추었다. 바닥으로 내려가게 하거나 다시 일으켜 세우기도 했다. 선도하던 남자는 나머지 초에 하나씩 불을 붙여 초를 물고 있던 남자의 입에 하나씩 넣었다. 남자는 5개의 초를 입에 물고 움직이다 어느 순간 초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초를 버린 입에서 소리가 나왔다. 그것은 천상의 소리였다. 이슬람 성전에서 들리는 이국적인 소리로 한참 동안 무릎을 꿇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소리를 했다. 그것은 슬픔이기도 하고 우주의 소리이기도 했으며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관객을 몰고 가는 소리이기도 했다.
이어 전자 하프의 느린 연주에 따라 매력적인 남자 무용수가 아주 천천히 신비하게 움직였다. 다른 무용수들은 움직임 없이 미세하게 흔들거렸다. 1시간 40분의 공연이 끝났으나 여운은 길게 남았다.
특별히 춤이랄 것이 없었던 이 작품은 관객에게 우주에서 유영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했다. 공연이 끝나도 소리의 여운은 깊게 길게 남았다. 세계의 컨템포러리 댄스는 각 나라의 문화와 만나 독특한 예술적 형태로 변이된다. 춤 공연에 춤이 없어도 예술로서 관객에게 감동을 준다면 춤이 없다고 탓하기도 어렵다.
28일 8시 대만 클라우드 게이트 무용단(Cloud Gate Dance Theatre) 예술감독인 청중룽(Cheng Tsung ling)의 작품 <달의 후광(Lunar Halo)>을 관람했다. 이 작품은 아이슬란드의 오로라 현상을 환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나 중국의 정치적 상황과도 맥락이 약간 닿아 있다.
상수에서 상의를 벗은 남자 무용수들이 계단식으로 한 줄로 서서 양손을 어깨나 팔꿈치에 두고 순차적으로 움직인다. 앞 사람이 허리를 틀면 연이어 뒤까지 뒤틀리거나, 양손을 앞으로 쭉 뻗어서 엎어지거나, 옆으로 벌리거나, 허리를 돌렸는데 마치 부채가 접히고 펴지듯 움직임의 연결이 환상적이었다. 다리를 고정하고 강약을 조절하면서 움직이다가 다리를 움직이기 시작하자 형태는 더 다양해졌다.
무대 중앙에서 여자 무용수들이 긴 머리를 흔들며 춤을 출 때 상수 쪽 남자들이 기웃거리며 바라보다 급기야 더 잘 보기 위해 사람 위에 올라타서 여자 무용수들을 본다. 무대 천장에는 거울이 비스듬히 객석 쪽을 내려다봤다. 무대의 움직임이 거울을 통해 객석에 보였다.
여자 한 명이 하수에서 솔로를 하는 동안 남녀 무용수들은 얼굴을 나란히 붙이고 무대 중앙에 서서 솔로를 추는 여자를 한동안 응시했다. 조명이 그들의 얼굴을 비췄다. 한 남자 무용수가 솔로를 하는 여성을 훔쳐보다가 듀엣을 시작했고 나머지 무용수들도 듀엣을 했다. 듀엣은 유니슨으로 하거나 각자 다르게 하다 한 무리로 뭉쳐서 원형으로 돌며 춤을 출 때 달무리가 중앙이 크게 떠 있었다.
마치 <봄의 제전>을 보듯 머리를 풀어헤진 여자들은 다리를 크게 흔들고 머리를 흔들며 강하게 움직였고 같이 있던 남자들의 동작도 과격했다. 남녀 전체가 무대 뒤를 향해 뛰거나 강한 군무를 추다 일렬로 앞을 보고 섰다.
무대 천정의 거울이 내려오고 영상이 보였다. 리어타드를 입은 남녀가 앞을 보고 좌우로 움직이는 영상이 긴 시간 시선을 고정했다. 영상은 무음에서 무용수들이 좌우로 움직이며 앞사람이 뒤로 가고 뒷사람이 앞으로 왔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 영상은 위로 올라가고 상수 바닥에서 무용수들이 꿈틀거렸다. 바닥의 무용수들이 일어나서 한 줄로 서자 여자 한 명이 무리에서 나와 춤을 췄다. 음악이 처연했다. 하수 쪽에 사람 3배 크기의 남자 영상이 내려왔다.
두려워하듯 무리는 몸을 밀착하고 한 줄로 걸었다. 영상 속 남자는 앞으로 보다가 아래를 주시했다. 마치 무리를 향해 위협을 가하듯이. 여자 한 명이 무리에서 나와 춤을 추자 무리는 흩어져서 춤을 췄다. 영상 속 남자는 점점 하얗게 변했다.
하수에서 상수로 열을 만들어 달려가자 춤추던 여자가 합류하고 다른 무용수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춤을 춘다. 여러 번 반복이 되고 군무로 격렬하게 춤을 추다. 모두 바닥에 넘어졌다. 폭포물 떨어지는 소리 뒤에 원시적인 음악이 나오며 여성의 허밍이 또렷하게 들렸다. 한 여자가 일어서 걸어 나오며 조명과 소리가 아주 천천히 사라졌다.
아시아의 무용은 춤적으로 뛰어나다. 거의 연체동물에 가까운 움직임은 시종일관 무대를 채웠다. 같은 동양인의 관점에서 늘 보던 무대화된 작품이라 특별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없었으나 관객들은 떠나가라 손뼉을 쳤다. 그들과 달라서 친 것인지, 작품이 좋아서 친 것인지, 습관적으로 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내 감각에 맞는 작품은 아니었다. 늘 보던 그것 중 또 다른 하나였다. 그런데도 아름다움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