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재개관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재개관
  • 조일하 기자
  • 승인 2025.03.2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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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19일 징안구 쑤저우 강변에 재개관한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외관 (사진제공=아라리오갤러리)

[더프리뷰=서울] 조일하 기자 = 아라리오갤러리가 3월 19일(수)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자랑하는 중국 상하이 중심부 징안구 쑤저우 강변에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를 재개관했다. 2005년 처음 중국 베이징에 진출한 아라리오갤러리는 2014년 상하이로 이전한 후 현재까지 중국 내 아시아 작가들의 확고한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재개관을 통해 아라리오갤러리는 중국에서의 지난 20여 년 경험과 노하우를 집대성, 아시아적 정체성을 공고히 하려는 아라리오갤러리의 비전을 확장하고 새로운 담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가 새롭게 자리 잡은 장소는 쑤저우 강변에 위치한 문화공간 수허하우스(SUHE HAUS)이다. 1931년 건축설계사무소 앳킨슨 & 댈러스(Atkinson & Dallas)가 설계한 아르데코 양식의 건물로, 상하이의 역사를 품은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현재 수허하우스에 입주한 미술기관으로는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외에도 아치 갤러리(Arch Gallery), 롱라티 파운데이션(Longlati Foundation), P.art 그룹(P.art Group), 샹아트 갤러리(ShanghART Gallery), 수파 아트 스페이스(Soofa), 탕² 익스체인지(TANG² Exchange), 더 패럿(The Parrot) 등이 있다. 수허하우스 내 미술기관들이 3월 19일 동시에 전시를 개막해 현지 미술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재개관전
<Fluid in Forms 虛实相> (사진제공=아라리오갤러리)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의 재개관전 <Fluid in Forms 虚实相>는 19일부터 5월 11일(일)까지 계속된다. 큐레이터 량칭(LIANG Qing)이 기획한 이번 전시는 한·중·일 작가 10인의 작품을 함께 선보이는 단체전이다. 김병호(1974-), 김인배(1978-), 이정배(1974-), 이승애(1979-), 임노식(1989-), 천위판(CHEN Yufan, 1973-, 중국), 천위쥔(CHEN Yujun, 1976-, 중국), 후윈(HU Yun, 1986-, 중국), 포코노 짜오위(Pocono ZHAO Yu, 1990-, 중국), 야마다 코헤이(Kohei YAMADA, 1997-, 일본)가 참가한다.

이번 전시는 한 세대를 아우르는 이들 10인의 작품세계가 드러내는 일상적 사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현실의 유동성에 관한 각자의 개별적 표현방식을 탐구한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의 시각적 전통이 오늘날의 글로벌한 맥락 속에서 어떻게 진화하고 변모하는지를 조명하고자 한다.

<보태닉 드럼 I> Botanic Drum I,  2024, 흑연, 종이, 116.8 x 91 cm (사진제공=아라리오갤러리)

무형의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이번 전시의 제목인 ‘Fluid in Forms 虚实相(유동적 형태 허실상)’는 이러한 경계가 해소되는 혼돈 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키우는 역동적인 존재, 지속적인 생성 상태를 의미한다. 동아시아의 전통적 표현에서는 명확하게 구분된 경계를 그리는 대신 여백과 모호한 공허를 통해 보이지 않는 존재를 더욱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부재와 공허함, 불확정성 등 보이지 않는 것이 더욱 큰 존재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철학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형태의 모호함은 단단하고 구체적인 실체에 대한 집착을 줄여 사물의 고유한 물리적 제약으로부터 사물의 의미를 해방시킨다. 그 결과 더 이상 고유한 물리적 특성에 국한되지 않고 시간과 장을 넘나들며 더 넓은 가능성을 열어준다.

동아시아 전통사상의 문맥에서 ‘상(相)’은 사물의 외형을 뜻하는 동시에, 인간의 의식이 그려내고 구축하는 주관적 이미지이기도 하다. 이 둘 사이의 유동성과 어긋남은 ‘허실(虛實)의 상(相)’ 또는 ‘허(虛)의 실상(實相)’을 만들어낸다. 이때 사물과 이름, 형상과 의미, 현실과 상상은 얽혀 공존하게 된다. 나아가 경계를 모호하고 흐릿하게 지워냄으로써, 실재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가능하게 한다. ‘허’와 ‘실’은 존재와 비(非)존재가 교차하며 발생하는 변형이나, 파악하기 어렵고 묘사하기 어려운 인상과 인식을 나타낸다. 그 결과의 파생인 ‘상’의 유동적 상황은 더 이상 단순히 사물의 외부 표현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 의해 묘사되고 구성된 주관적인 이미지가 된다. 이번 전시의 참가 작가들은 일상의 사물을 탐구하며 물질성과 명명, 형태와 의미, 현실과 상상이 서로 얽히는 새로운 관계를 표현한다.

<Fluid in Forms 虛实相>(2025, 아라리오갤러리 상하이) 전시전경 (사진제공=아라리오갤러리)

큐레이터의 말 - 량칭

전시에 소개되는 10인의 작가는 사회문화적 맥락에서 동아시아 전통의 동질성을 공유하는 동시에, 국가 및 세대에 따라 서로 다른 근현대를 경험한 데 따른 개별성을 뚜렷이 지닌다. 출품작은 대부분 자연에 관한 주제와 연결되어 있는데, 그 이미지의 형태적, 의미적 모호함으로부터 ‘허’와 ‘실’이 융합된 ‘보이지 않는 것’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동아시아적 사유의 흔적이 발견된다. 한국 작가 김인배는 시각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현상을 상상함으로써, 인식확장의 촉매로서의 ‘보이지 않는 것’을 탐구한다. 그는 신체를 공간 속의 점, 선, 면으로 옮기거나 광활하게 그려내며 동아시아 전통 산수화의 분위기를 표출한다. 임노식의 근작 역시 풍경에 주목하며 무형의 힘을 지속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그는 상호적인 자기망각의 관찰방식을 통해 공기와 투명한 대기를 묘사한다.

중국 작가 천위판과 천위쥔은 고향에 대한 기억과 오랜 이주 경험을 그린다. 유사한 기억과 경험을 바탕으로 이들은 극명하게 구별되는 서로 다른 개성을 드러내는데, 전자는 개인의 존재, 반복적인 노동, 사회질서에 대한 경험과 성찰을 차분하고 추상적인 언어로 표현한다. 한편 후자는 기억과 현실이 열정적이고 통합적으로 엮이는 장면을 구성함으로써 자아의 구원과 먼 미래를 향한 유목적 삶의 방향에 대한 답을 모색한다.

한국 작가 이정배는 도시풍경 속에 산과 강, 하늘의 파편들을 담는다. 그는 기하학적인 분할과 FRP, 알루미늄 패널 등 산업용 재료를 사용하여 자본주의와 물질주의에 의해서 해체된 동시대 자연의 모습을 독특한 추상적 풍경으로 재구성한다. 일본 예술가 야마다 코헤이 또한 도시와 자연의 풍경을 주제로 다루는데, 겹겹이 쌓인 기하학적 색면으로 구축한 추상화면은 특유의 색채와 깊이, 밀도로써 관조적이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그는 수많은 층위의 중첩을 통하여 매개적 공간이자 접경지대로서의 '경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이번 전시에 깃든 또 다른 하나의 미묘한 층위는 작가들이 시도하는 사물의 의미론적 치환과 추론에 대한 태도이다. 사물을 원래의 의미에서 분리하고 분리함으로써, 그들은 단순한 물질적 형태를 초월하는 현대적 맥락에서의 새로운 해석을 활성화한다. 한국 작가 이승애의 작품에서 식물 이미지는 감정, 신앙 등 무형의 요소를 감추고, 보이지 않는 힘, 즉 에너지, 정서, 빛, 소리는 내면과 외면 사이의 공간에 스며든다. 김병호는 합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현대문명 속에서 개인과 집단 사이의 긴장과 모순, 동질성과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정밀한 기계적 복제와 역설적인 비평을 통해 자신의 조각을 인위적으로 가꾸는 '정원'에 비유한다.

중국작가 후윈은 현실과 초월, 물질성과 영성,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의 경계를 탐구하기 위해 역사적 단편을 추적하고 수집하고 재편집한다.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속 식물 이미지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깊은 문화적 맥락을 통해 더욱 풍부하고 다양한 의미를 획득한다. 반면 포코노 짜오위(중국)는 사적 문화를 타 문화 중 하나로 전환하고자 한다. 그녀는 걷기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기호학, 문학, 사회과학의 요소에 연결해 장면을 해체함으로써 문명과 문화 ​​변혁의 세계적인 흐름을 드러낸다. 그녀의 작품에서 새로운 화자는 역사적 진실을 탐구하고 원본과 복제품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탐구하는 침입자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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