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도쿄] 최병주 SAI 예술감독 = 전편에서 쓴 바와 같이 SAI DANCE FESTIVAL 2021에는 COMPETION과 EXHIBITION이 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COMPETITION을 볼 때가 더 가슴이 설렌다. 행사 준비를 할 때 손이 많이 가는 것도 있지만, 무명의 새로운 작품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번 공연에서는 베테랑인 기하라 고타(木原浩太)의 이인무 <Dancing neighbor>를 비롯하여, 요코하마 댄스 컴피티션에서 이미 수상 경력이 있는 다무라 고이치로(田村興一郎)의 그룹 피스 <nostalgia>, 시모지마 레이사(下島礼紗)의 <Package>(그룹), 시바타 미와(柴田美和)의 <blind with science>(솔로), odd fish의 <machi>(듀엣)도 유망한 젊은 안무가다운 능력을 과시한 수작들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나를 흥분시켰던 새로운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다.
춤 출 공간이 없었던 안무가들의 작품은 초반부터 뜨거웠다. 그 중에서도 오래전부터 아침 밥을 사진으로 찍어 올린다는 Asamicro의 <egg life>는 왜 이런 사람을 몰랐지 할 정도였다. 계란 흰자위를 상징하는 듯 원형의 백색 카펫을 깐 그녀가 노른자위가 들어가야 할 자리에서 앞을 보고 웅크린 채 시작한다. 잘 보면 남들도 다 사용하는 무용 테크닉이건만, 모든 움직임이 신체 부위를 잘게 쪼개어 마치 빠르게 사진 컷을 돌리는 것처럼 느껴지고 다른 움직으로 넘어갈 때는 어딘가의 부위로부터 반동을 받는다. 경쾌하고 빠르기도 하지만 너무 유연해서 처음에는 무엇이 특별한지 빨리 잡아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흰자위 밖으로 나와 크게 움직이는 후반부터 스트리트 댄서였던 경력이 영향을 미쳤다는 걸 깨닫게 된다. 기성의 무용 테크닉에 스트리트 댄스 동작이 아닌 그 원리를 넣어 자신만의 기법으로 소화해 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다음은 사고 위험성 때문에 극장에 각서까지 써야 했던, 에어리얼 퍼포머 야스모토 아사미(安本亜佐美)의 <Cover your mouth>. 무대 중앙에는 실크와도 같은 두 자락의 투명한 천이 길게 늘어져 있고, 등장하자마자 마스크와 함께 검은 원피스를 벗고는 천 사이로 들어간다. 테마는 새로운 생활양식을 강요 당하는 현재의 절망감과 그 극복이며, 그것을 일관성 있게 느린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은 아크로바틱한 서커스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너무도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점을 가장 높이 사고 싶다. 종반부 천천히 천을 타고 올라간 정상에서 보여주는 전신의 아치형과 마지막에 한 팔로 매달려 허공을 응시하는 장면은 우아하고 고고했다. 나중에 보니 천이 아니라 신축성 있는 특수한 비닐이었다. 안타까웠던 것은 프레이즈 간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해 자주 끊기는 점이었다. 이 점을 개선한다면 앞으로가 기대되는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와카바 고헤이(若羽幸平)는 부토 댄서이다. <those who ain’t damn nobody>는 부토 특유의 움직임으로 일관할 줄 알았는데, 아름다운 웨딩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걸어서 등장한다. 클래식 음악에 맞춰 우아하게 움직이던 그녀가 갑자기 커지더니 드레스 밑에 찢어진 검은 스타킹을 신은 흉칙한 다리가 비틀대고 발레 포즈를 하던 여성도 한계에 이르렀는지 쓰러진다. 치마 속에 감추려는 여성과 거기서 비집고 나오려는 다리는 마침내 전신이 빠져나온다. 웨딩 드레스의 정숙한 여성과 부토 특유의 흰 분칠을 한 얼굴에 찢어진 시미즈 차림인 흉측한 남성의 상반된 모습이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인간의 이중성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치마 속에 들어가 거인이 되는 작품은 많이 봐 왔지만, 이 작품은 흔한 부토 기법의 하나를 또 하나의 특별함으로 바꿔준 것 같다.
마지막 작품은 구로다 이쿠요(黒田育世)가 대표로 있는 BATIK 무용단의 댄서인 구마가이 리사(熊谷理沙)가 춘 솔로 <mother garden>. 흰 드레스 차림의 그녀는 무대 중앙에서 5분 가까이를 상반신만 움직인다. 높낮이를 사용하며 흐르는 듯한, 느린, 빠른 움직임들에 간헐적으로 삽입되는 포즈가 어울리며,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중반 이후 긴 치마를 벗어들고 난 뒤부터 전반의 강렬함을 뒷받침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앞뒤 대각선을 가로지르며 치마를 바닥에 팽개치는 동작들은 인상에 남지만 그 외에는 익숙한 피아노 멜로디 속에 움직임들이 묻혀진 감이 있었다.
EXHIBITION은 전년도 컴피티션 수상작을 재구성하면서 성장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SAI 2020이 취소되었고 올해는 해외 단체가 참가하지 못했기에, 설상가상으로 우수상(듀오 부문)을 수상한 도자와 나오코・스키모토 슌(戸沢直子・杉本俊)의 <TANGLE>은 안무가가 프랑스에 사는 지라 참가할 수 없었다. 때문에 시선은 오롯이 이 여섯 작품에 집중됐다.
그 중에서 대상을 수상한 시모지마 레이사(下島礼紗)의 솔로 <Monkey in a Diaper>, 우수상(그룹 부문)을 수상한 스이추메가네(水中めがね)의 3인무 <my body, my choice>는 이미 검증된 유명한 작품인지라, 2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작품의 짜임새도 탄탄해지고 전체적으로 한층 원숙해졌다. 객석의 열렬한 박수 갈채가 이 작품이 그들의 대표작이며 강력한 레퍼토리임을 입증시켜준 공연이었다.
컴피티션은 10분까지로 제한된 반면, 엑시비션은 15분 전후이다. 가끔 작품을 늘리는 과정에서 컴피티션 때의 장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하고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는 우수상(솔로 부문)을 수상했던 무라타 마사키(村田正樹)의 <SAI HA TE>와 심사위원 상(솔로 부문)을 수상한 요시미츠 요시야(好光義也)의 <Athletic Buildbio>를 소개하고 싶다.
무라타는 탭댄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표현을 사용해 독자적인 세계관을 표방하는 솔로 작업을 한다. 베테랑이긴 하지만 메인 무대에서 활약하지는 못했다. 이 작품은 시종일관 어두운 조명과 정사각형의 나무판 위에서만 이루어진다. 느린 움직임부터 절정에 치달을 때까지 치밀하게 기승전결로 몰고 가는 과정에서 그의 연륜이 토해내는 엄청난 집중감에 넋을 잃고 빠져들어갔다. ‘사이하테(最果て)’는 한 지점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그 이상은 없는 말단의 장소나 상태를 일컫는 표현이다. 작품 전체에서 탭이라는 징소리가 만들어내는 사이하테를 향하는, 마치 그의 인생처럼 여겨지는 희로애락의 여정이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내가 가장 걱정하던 작품 <Athletic Buildbio>. 요시미츠는 연극 배우이지만 무용에 관심이 있어 SAI를 개최하기 시작한 2017년부터 안무자 혹은 출연자로 매년 참가했다. 2019년에는 안무가 덜 끝난 듯 6분 30초 정도로 마무리가 엉성한 작품이긴 했지만, 해외 심사위원들로부터 장래 가능성을 평가 받아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나는 솔직히 컨셉추얼한 작품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다만 노래나 대사와 함께 생기는 돌발적이고 불가사의한 그의 제스추어들을 좋아했다. 무용계에서는 무명인 그가 15분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노래도, 춤도, 악기도 연주할 줄 아는 자신의 신체를 도구 삼아 첼로 등 여러 오브제와 함께했는데, 아주 짜임새 있는 공간 구성과 시간 조절로 놀라운 성장을 보였다. 완성도를 높이는 과정에서 내가 좋아하는 그의 돌발적인 움직임들이 자제된 점은 조금 아쉬웠다.
SAI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해외 디렉터들에 의한 컴피티션 심사와 해외 초청작 선정은 현재 각국 심사위원들에 의해 진행 중이라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다. 컨템포러리 댄스라는 특성상 어찌 보면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심사이다. 내가 주목한 작품들 중에서도 수상작이 나올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