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예술원 70주년, 박명숙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
대한민국예술원 70주년, 박명숙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
  • 박상윤 기자
  • 승인 2024.10.10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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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숙의 '춤,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명숙의 '춤,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더프리뷰=서울] 박상윤 기자 = 지난 10월 5일 오후 4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춤, 미래의 신화>라는 타이틀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들의 대한민국예술원 7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이 있었다.

박명숙의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명숙의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명숙의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명숙의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명숙의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의 김영미(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명숙의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에서 김영미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이번 공연에서 박명숙 회원은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라는 작품을 올렸다. 죽은 이의 혼을 소리쳐 부르는 초혼(招魂)을 모티브로 한 현대무용으로, 춤의 핵심인 정중동(靜中動)을 조화롭게 구현한 작품이었다. 과거 이 작품을 두고 미국 평단은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의 결합이 각각의 특성을 지닌 채 고유의 생명력을 잃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라고 호평하며 성공적인 뉴욕 데뷔를 축하한 바 있다.

박명숙의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명숙의 '죽은 영혼을 위한 기도' (사진=더프리뷰 박상윤 기자)

박명숙은 195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부터 국립국악원을 다니며 한국무용을 배우기 시작했고, 미술과 음악을 개인지도 받으며 진명여자중고등학교에서는 발레 전공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이화여자대학교 무용학과에 수석 입학하여 현대무용을 공부했다. 데뷔 작품인 <Jesus Christ Superstar>(1973-1993, 2008년 출연)에 20년간 한해도 쉬지 않고 주역(마리아 막달레나)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박명숙은 한국 최초의 현대무용단으로 알려진 한국컨템포러리무용단(1975-2015년) 창단멤버로서 안무, 출연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다.

1978년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박명숙현대무용 발표회 <나에게 나의 춤을>을 올렸고, 1981년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한 <초혼 Invocation for the Dead Spirit>은 세계적인 무용평론가로부터 "동서양의 융합을 통한 한국현대춤" "한국인의 내면을 극적으로 표현했다."(New York Times의 Jennifer Dunning, LA Times의 Lewis Segal) 등의 극찬을 받았다.

1991년 <황조가 Song of Golden Oriole>를 통해 제13회 서울무용제 대상, 안무상, 연기상, 음악상, 미술상 등 5개 부문 수상에 이어 미국, 아시아, 유럽, 러시아 등 해외 공연을 통하여 한국 현대무용을 알리고,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현대무용가, 안무가로 자리매김했다.

1980년 공간사랑 소극장에서 <종이꽃 Paper Flower> <나물에게...To Greens> <일식 A Solar Eclipse>을 통해 국내 최초로 소극장 무용공연 운동을 시작했다. IDMD 세계현대무용사전(An Imprint of Gale, NewYork, London)(1998)에 등재되었으며, 2011년 현대무용 <윤무 Reigen>를 무용분야 최초로 10일간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장기공연으로 시도했다.

박명숙은 예술가로서 50여 년간 150여 편의 신작 및 700여 편의 공연 발표, 그리고 80여 차례의 수상이라는 놀라운 업적을 통해 "그만이 가질 수 있는 토탈적 감수성(感受性)"과 "이 시대의 진정한 컨템퍼러리 댄스 안무가의 길을 걷고 있다"라는 평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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