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 근현대춤 100년사를 무대 위에 –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정성숙
[인터뷰] 한국 근현대춤 100년사를 무대 위에 –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정성숙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4.04.05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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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국립정동극장이 근현대춤 백년의 여정을 8일간의 공연으로 구성했다. 근대 신무용부터 컨템퍼러리 한국춤까지 50여명 무용가의 몸으로 발산되는 우리춤의 연대기다. 출연 작품과 무용가의 명단만으로도 압도하는 규모인데, 차분하고도 열정적인 기획 의도가 켜켜이 스며 있다. 텍스트가 아닌 춤으로 표현하는 한국 근현대무용사이자, 현대의 우리춤을 낳고 기른 창작정신의 근거 찾기 여정으로 이목이 집중된다. 공연을 총감독한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실풍류: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는 우리 민족의 창조적 능력이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드라마, 영화, 뷰티, 음식까지 전 세계인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잖아요. K-춤의 측면에서 우리 고유의 춤도 더 큰 사랑과 관심을 받을 수 있는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변모하는 시대정신과 사회상을 반영하며 전통을 근간으로 시대에 맞는 춤을 끊임없이 창작해 내는 창조적 예술혼이 우수합니다. 우리 무용사를 살펴보면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수많은 춤을 만들어낸 역사가 오롯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근현대춤 100년사를 한번 올려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우리가 이렇게 대단한 창조정신을 가진 민족이고 춤꾼들 또한 대단한 창조적 예술혼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지요.

 

다양한 작품과 출연진이 돋보입니다. 총 8회 공연에 각 회차당 6-7편의 작품이 편성되어 있고요, 참여하는 무용가만 해도 50명이 넘습니다. 작품 선정이나 출연진 섭외가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오랜 시간 고민했고 공부도 많이 했습니다. 개인적인 친분이나 취향을 내세우기보다는 그 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름의 기준과 방법에 따라서 진행하고자 했어요. 한 달간 50편의 작품을 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생각보다 다양하게 창작된 근현대춤 중에서 일부 무용가와 작품을 선별해야 하니까, 역사적 근거와 철저한 고증을 통해 논리적으로 접근하려고 노력했어요. 전문가의 자문도 받았고요, 무용가가 춤을 누구에게 어떻게 배워서 지금은 어떻게 추고 있는지 관찰하기 위해 자료를 많이 찾아봤습니다. 그리고는 일일이 면담을 통해 공연 취지를 설명 드렸죠. 이 공연이 현재 우리 무용계에 꼭 필요한 공연이고 기획이라는 점을 말씀드렸던 것 같아요. 물론 무용가들의 개인 일정이나 상황 때문에 섭외가 어려워진 경우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정말 흔쾌히 응해주시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셔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사실 제가 무용가 분들을 많이도 괴롭혔어요. 각 시대별 춤의 경향을 최대한 살려서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사진 주세요, 영상 주세요, 역사적 근거가 확실한지 설명 좀 자세히 해주세요, 근거를 알아야 합니다, 자기소개서도 다 써주세요.”  매 번 전화해서 세세하게 요청드리니까 참 귀찮으셨을 텐데, 그 귀한 자료들을 다 보내주시더라고요. 진심이 통한 것인지, 복이 많아서인지…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열심히 임하고 있습니다.

 

'세실풍류: 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 포스터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세실풍류: 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 포스터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과거에도 독무 중심의 작품들을 시리즈 형식으로 편성한 공연들이 있었는데요, 이번에 국립정동극장에서 주력하는 차별성은 무엇인까요?

춤 잘 추는 여러 사람을 무대에 세우고 보여주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춤들이 연결되는 지점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무대에 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춤은 그들이 춤과 함께 살아온 여정을 대변하기도 하지만, 우리춤의 역사를 엮어내는 소중한 증거니까요. 이 무대를 모두 지켜본다면 근현대춤 100년사를 책으로 읽는 것 이상의 효과와 감동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기획 초기 단계, 무용가와 작품 섭외를 고심할 때부터 전체 무대를 필연적으로 구성하기 위한 시각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이들이 그동안 어떻게 춤을 배우고 활동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각자의 이야기에 주목해서 회차별 춤을 구성했습니다.

 

전체 무대를 목도하면 살아 움직이는 책을 읽는 듯한 기분일 것 같습니다. 한국 근현대무용사를 춤으로 풀어서 선보인다는 말이 제격이고, 특히 시대별로 붙여진 제목들이 하나같이 인상적입니다.

제목 선정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이 공연이 결국은 한국의 창작춤을 이야기하는 무대인데 이런 용어들이 과거 무용평론이나 연구의 측면에서 붙여놓은 용어이기도 하고, 용어의 쓰임새가 통일되지 못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장르나 유형을 이르는 용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춤과 시대가 뿜어내는 의미 자체에 집중하기로 했어요.

 

‘조선의 마음에서 태어난 춤, 꺼지지 않는 창작의 불씨’ 등 각각의 제목들이 녹록치 않았던 우리춤의 연대기를 대변하네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시작이 1920년대인데, 당시 배구자 선생님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인 발표회를 열었고, 이시이 바쿠가 경성공회당에서 공연을 하면서 우리나라에 새로운 무용의 형태를 알리기 시작했죠. 또 지금까지도 신무용의 대가라고 일컬어지는 조택원 선생님, 최승희 선생님을 포함해서 신무용의 등장에 관해 공연을 구성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배구자 선생님의 춤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으니까  <도라지 타령> <천안삼거리> 등 배구자 선생님께서 직접 취입하셨던 노래와 배구자 선생님이 100세 되던 해에 녹음된 대화 내용과 춤을 참고로 그 시기 춤의 형태를 짐작할 수 있도록 연출했어요. 대부분 돌아가신 분들이라 관련 자료가 부족하고, 많은 분들의 주장이 서로 겹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적 근거를 갖고 있는 춤인지, 안무가와 어떤 접점이 있었는지 하나하나 철저하게 확인하면서 구성했어요. 공연에 활용된 모든 자료는 출처를 표기하고요. 일제강점기 그 어려운 시절에 새로운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그로부터 영향받은 부분도 많지만 결국은 ‘조선의 마음으로부터 태어난 춤’이 제격이라는 생각에 제목을 붙였죠.

1950년대는 해방 이후 정치적으로 혼돈의 시기였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의 상태였죠. 당연히 공연이라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먹고 살기에 급급했던 시기였지만 김백봉, 송범, 김진걸, 최현, 최희선 등 신무용 2세대라고 할 수 있는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무용 뿐만 아니라 신민요처럼 전통을 모티브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는 데 불이 붙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러한 분위기를 ‘꺼지지 않는 창작의 불씨’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197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고, 한 편으로 국학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우리 것을 찾자는 생각이 각 분야에 적용되던 시기였죠. 정병호 선생님 등 연구하는 선생님들이 전국을 다니면서 우리 고유의 춤들을 찾아내 무대에 올리기 시작했던 때에요. 또 1963년에 이화여대 무용과가 개설되고 여러 학교에 무용과가 생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창의력과 학식을 갖춘 무용가들이 배출되었고, 우리의 전통을 제대로 공부하고 새롭게 해석하는 무용가들이 등장했습니다. 당시에 창작무용이라는 용어도 나오게 되었고요. 각 대학이나 무용단을 중심으로 아주 활발한 창작 흐름이 만들어졌던 시기에요. 그래서 '춤의 새로운 도화선' '타오르는 창작의 혼' '미래를 밝히는 정열의 횃불’ 등의 제목들을 붙였어요. 이 중 한 파트는 대학교육 위주로 활동하신 분들의 창작춤을 구성했고, 또 한 파트는 무용단 중심으로 활동하신 분들의 창작춤을 구성했어요.

그리고 2000년대 이후로 넘어오면서, 남자 무용가들의 활발한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한 파트를 구성했고요. 2010년대부터는 장르 해체, 융복합이 강조되기 시작한 시기니까 컨템퍼러리 한국춤을 중심으로 미래를 끌고 가는 여성 무용가들로 또 한 파트를 구성했어요. 그리고 마지막 무대는 우리춤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춘 무용가들을 섭외했죠.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및 '세실풍류: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 의 예술감독 정성숙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세실풍류: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 예술감독
정성숙 국립정동극장 대표이사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법고창신 –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하다’라는 말에 무게가 제법 있습니다. 전통을 소재로 창작활동을 펼치는 과제에 대해 개인적인 생각과 고민들을 듣고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춤을 춰오면서 무용하는 사람들이 이론에 약하다는 점이 좀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론과 실기의 병행을 위해 대학원에서 문화재를 전공했고 특히 근대문화유산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한국의 근대 시기가 우리 민족에게 아픈 시기인 것은 맞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수 많은 장르에서 창작정신을 발휘해 지금 모든 문화예술의 초석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역경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갖고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많은 것들을 창조적으로 만들어낸 시기였으니 이제는 이를 제대로 연구해야 할 시기인 것같습니다. 저는 이번 기획을 통해 그러한 우리 춤의 창작정신을 찾아서 보여드리는 것이고요.

 

국립정동극장의 정체성을 근대 한국 문화예술의 특성과 연결시키는 흐름이 보이는데 어떤가요?

국립정동극장에 오게 되면서 제일 첫 번째로 했던 것은 다양하고 다채로운 공연을 올리는 공연장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동극장만의 차별화된 콘텐츠를 개발하자고 이야기했어요. 작년에는 1923년에 지어진 ‘딜쿠샤’를 소재로 뮤지컬을 올렸고, 올해는 조선 최초의 미용사이자 신여성으로서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개척하고자 했던 인물 오엽주를 소재로 공연을 올립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극장이었던 원각사를 복원한 극장인만큼 근대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우리가 사물이나 춤을 전통으로 보존하는 것도 좋지만, 근대에 다양한 장르가 한국에 들어오면서 뒤섞인 부분이 있거든요. 그런 특성을 예술적으로 풀어보고 싶어서 올해 <모던정동>이라는 작품도 준비하고 있어요. 지리적으로 보나, 역사적으로 보나 정동극장은 근대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으니까 아주 행복하게 근대 시기를 조망하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국립정동극장은 근대문화 일번지라고 할 수 있어요. 극장이 위치한 역사적,·문화적 환경을 살려서 근대를 모티브로 한 차별화된 작품을 매년 한 편씩 올리고 있습니다. 관객들이 보고 나갈 때 짜릿한 전율을 느끼는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 극장은 정말 단 하루의 대관도 없이, 국립정동극장과 국립정동극장 세실이라는 두 극장에서 1년에 약 450회 공연을 하거든요. 특히 국립정동극장 세실은 오래된 극장이기는 하지만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등재되어 역사와 의미를 간직한 극장이지요. 두 극장 모두 무대에서 보는 객석과, 객석에서 보는 무대가 굉장히 아늑하고 예쁩니다. 그리고 정말 한 마음으로 열심히 하는 우리 극장 직원들 덕분에 좋은 결과가 이어지고 있어서 참 뿌듯합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공연에서 관객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4년 <세실풍류: 법고창신, 근현대춤 100년의 여정>은 단순히 시대별로 나열해서 보여주는 공연이 아닙니다. 그 춤이 만들어진 시대상과 사회적 분위기를 함께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시대적 상황에 맞는 공연 연출을 위해 어느 회차는 아코디언 연주자를, 또 어느 회차는 통기타 연주자를 모셨어요. 또 무용가들이 모아준 귀한 사진, 영상, 소개 자료들은 공연의 품격을 한층 더 올릴 수 있도록 해주었어요. 한국 창작춤의 100년 여정을 살펴 가는 공연이지만 회차마다 각각 독특한 콘셉트로 준비했기 때문에 만약 모든 회차의 공연을 관람하신다면 근현대 무용의 100년을 무대에 올린 전대미문의 시공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공연 내용은 더프리뷰 3월 16일자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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