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소리 없는 아우성'의 훌륭한 사례 - 국립정동극장 '모던정동'
[공연리뷰] '소리 없는 아우성'의 훌륭한 사례 - 국립정동극장 '모던정동'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4.06.04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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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작금의 예술세계는 단순하지 않다. 세상만사에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창작물, 스스로의 심연에 깊숙이 들어가는 창작물, 세상과 심연 사이를 횡단코자 하는 창작물이 서로 영감을 교환하며 공생하는 형국이라 그 어느 편에 서서 평가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그저 손에 쥐고 있던 프로그램북을 급히 내려놓고 손뼉치게 만드는 공연이라면 유형에 관계없이 호기심이 인다. 창작자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대하기에 이러한 결과물이 무대에 올랐는지, 그를 도운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지 오래도록 곱씹게 되는 것이다.

지난 5월 1일부터 4일까지 공연된 국립정동극장 예술단의 신작 <모던정동>은 세상과의 소통과 예술작품으로서의 심연 사이를 과감히 횡단하는 유형이었다. 창작자의 꿈과 야망에 철저한 전략과 실력이 더해져 독특한 색채를 취하는 데 성공했다. 기본 서사는 현대의 인물 유영이 100년 전 정동으로 시간여행을 떠나 과거로부터 위로 받는 이야기다. 관객은 유영의 시선을 따라 모던걸 화선과 연실을 만나고, 그들의 춤과 삶을 뒤흔들었던 시공간으로서의 정동(貞洞)을 알게 된다.

자료제공=국립정동극장
'모던정동'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정동은 한국 근대 개화기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고종의 대한제국 수립 선포와 함께 서구 열강은 이 곳에 공사관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이에 선교사들의 주택은 물론 교회, 학당, 병원 등 서구식 건물들이 생기고 호텔, 다방과 같은 신식 문화의 본거지로서 색다른 모습이 드러났다. 정치적으로 암울한 환경이었음이 분명하지만 변화를 가장 빠르게 흡수했던 지역으로서의 매력 또한 가득해 연극, 뮤지컬, 창극, 영화, 음반 등의 소재로 심심찮게 활용되어 왔다. 보통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갈등하며 나아가는 젊은이들의 군상을 서사로 활용하고, 전통과 모던이 오묘하게 뒤섞인 당대의 감성을 연출로 활용하는 식이었다. <모던정동>이 근대의 정서를 활용한 방식 또한 기존의 맥락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한국의 무용, 연희, 소리를 중심으로 전문적으로 풀어내면서도 대중의 흥미를 잡아내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는 부분이 괄목할만하다.

자료제공=국립정동극장
'모던정동'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근대 개화기가 수많은 장르며 담론이 동시에 등장하여 섞였다가 사라지는 대혼란의 시기였던 만큼 <모던정동>에서 다루는 장르 또한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춤의 경우 당시에 유행한 처녀총각 류의 신민요춤, 기본춤, 스윙댄스, 레뷰댄스까지 고루 등장한다. 주인공 유영이 과거로 돌아가 기생 교육기관인 권번에 도착했을 때, 그 주변에 치마를 말아 입은 기생들이 한국무용 기본 동작으로 구성된 춤을 연마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당시 무용에도 신식 교육의 영향력이 닿아 훈련 목적의 연속된 동작이 각 무용가들에 의해 안무되었으며 '기본' 혹은 '기본무'라 명명되며 무용학도들의 연습에 주로 활용되었다는 점을 정확히 고증한 부분이다.

자료제공=국립정동극장
'모던정동'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유영을 따라가는 관객의 시선은 이제 보다 자유로운 형식의 춤으로 연결된다. 특히 연실의 애인으로 함께 독립운동을 계획하는 미스터 정의 등장과 함께 무수한 춤들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연이어 등장하며 관객을 압도한다. 흥미 위주의 볼거리를 위해 온갖 춤을 모두 가져왔을 것이라 오해 사기 십상이지만, 대부분의 춤들이 한국 역사문화의 중심, 혹은 주변부에 실재하며 근대와 현대를 연결했던 춤이라는 점을 인지한다면 또 하나의 전통을 만들어내려는 제작진의 진지한 전략을 엿보게 된다. 만일 근대 이전, 즉 조선의 전통을 적극 반영한 한국춤이라든지 최승희, 조택원으로 대표되는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의 신무용 중심으로만 다뤘다면 다양한 춤의 용광로였던 근대의 특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다. 전통춤, 한국춤, 외국춤 사이 경계를 과감히 흐트러뜨리고 오직 고증에 입각하여 시대의 현상에 집중하고자 한 의도가 돋보인다.

'무용풍경' '음악풍경' '소리풍경'으로 이름 지어진 각 장르의 전문가들이 저마다의 방법론으로 무대에 서고 주요 제작진 또한 작곡, 연출, 안무, 극작 등 다양한 영역으로부터 모여 합심했으니 이 공연을 독립된 하나의 장르로 특정할 수는 없다. 굳이 장르를 언급하자면 '댄스컬'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다. '소리풍경'에 의한 대사와 노래가 자주 등장하면서 서사를 이끌어 가지만, 묵직한 갈등이 발생하고 해소되는 장면마다 노래보다는 춤에 무게를 실어 표현하는 모습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화려한 춤의 행렬이 끝나고, '소리풍경' 역을 맡은 배우 윤제원과 소리꾼 김유리가 무대 한 쪽에 서서 당대 세태에 대한 양극단의 시선을 묘사한다."실로 현대도시를 장식하는 가장 진보적 조명품이다.” "극락세계가 이상적이 아니라 현재에 임하얏도다.”라며 찬사하고 미스 코리아여, 단발하시오!"라며 부추기더니, “모더니즘 향락자들은 대체적으로 정신병자이며 문명병자들이다.”라며 욕하고 너희는 여자라, 장래에 남의 아내가 되고 남의 어미가 된다라며 협박한다. 이러한 시선 속에서 세 명의 주인공은 갈 곳을 잃고 헤매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그럼에도 어쩔 도리 없이 앞으로 끊임없이 나아갈 수밖에 없던 젊은이들. 그들이 처한 환경과 감정은 배우들의 숨소리와 걸음걸이로, 속도와 빈도를 달리하며 표현된다. 늘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걷는 모던걸, 모던보이들이지만 실은 그들의 등을 떠밀고 재촉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으며, 그들이 마땅히 토해낼 곳 없어 갑갑해진 숨을 춤과 함께 풀어내는 모습의 표현이 가히 감각적이다.

자료제공=국립정동극장
'모던정동'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한편 무대의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시간여행의 연출은 이 작품의 의도와 색채를 강하게 품으며 존재감을 드러낸다. 근대 정동의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주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와 과거가 크게 다를 바 없음을 말하고, 다양한 담론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달려나가던 젊은이들이 우리의 조상임을 강조하는 격이다. 무대 뒤에 드리워진 조각보에 비치는 과거 풍경은 곧 무용수들이 묘사하는 현대의 풍경과 겹쳐지며 시간여행의 끝을 암시한다. 공연을 관람하는 이 곳 정동에 그들의 숨결과 흔적이 남아있음을 말하고, 과거를 고정된 역사로 관조할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현상들에 직결되는 모태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렬히 드러나는 구간이다. 내용적으로 충분히 이해되고 공감되지만 사실 공연이 끝나고 극장 밖을 나가는 순간 관객의 시간여행은 자연스럽게 종결되며 그 잔상은 극장 밖 정동을 거닐게 될 관객 개개인의 몫으로 둘 때, 보다 진하게 남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유와 한계가 공존했던 근대의 정동, 그리고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냈을 젊은이들의 흔적이 무대 위에 가감없이 그려진 작품, <모던정동>. 감이 도무지 잡히지 않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의 전설이 아니라 조금만 과거로 가면 만질 수 있을 법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짜임새있게 연출하여 먹먹한 감동으로 끌어냈다.

국립정동극장은 이제 단체의 안무작을 국악계와 무용계에 발표하는 수준을 넘어, 가진 모든 것을 총동원해 브랜딩 전략으로 승화시키는 길목에 올라 섰다고 생각된다. 관객을 불안하지 않게 하는 작품의 완성도, 춤과 연희 자체의 원초적인 흥취를 살려 뮤지컬 앙상블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전략 면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히 관객 너머를 향해 입이 아닌 몸으로 뿜어내는 배우들의 에너지는 마치 유치환의 시 <깃발>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이자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과도 같다. 매 공연의 콘셉트에 맞춰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무대를 종횡무진하는 배우들의 실력이 독보적이므로, 제작진뿐만 아니라 배우 한 명 한 명의 서사와 예술세계를 브랜딩 전략에 활용하는 방식도 좋을 것이다.

자료제공=국립정동극장
'모던정동' (사진제공=국립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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