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너는 물처럼 춤춘다 - 국립국악원무용단 '상선약수(上善若水)'
[공연리뷰] 너는 물처럼 춤춘다 - 국립국악원무용단 '상선약수(上善若水)'
  • 유화정 무용이론가
  • 승인 2024.08.09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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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프리뷰=서울] 유화정 무용이론가 = 물처럼 춤춘다는 말을 생각해 본다. 형태가 없고 무엇이든 넉넉히 받아들이며, 느리고 빠른 유속의 힘으로 세상을 순환하는 물. 때로는 거칠게 부딪혀 거품 일더라도 도도히 흘러가 어딘가에 닿고야마는 물. 춤을 물에 비유하는 것은 실로 익숙한 발상이다. 어디 물 뿐일까? 우리 땅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민속춤은 늘 자연에 빗대어, 혹은 자연 그 자체로서 묘사되어 왔다. 텅 빈 상태로 변화무쌍 이동하는 바람의 춤, 생명의 씨를 품어 피워내는 대지의 춤, 묵직하게 뿌리내려 가지 뻗는 나무의 춤, 빛과 이슬 담뿍 담아 틔우는 꽃의 춤 등 표현은 다채로운데 자연으로 귀결됨이 매한가지다.

자연을 닮은 춤, 아니 자연 자체로서의 춤은 어떤 춤인가. 공기를 가르며 속도를 과시하거나 중력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는 모양은 맞지 않다. 회전할 때는 주변의 온기를 품으며 차분히, 솟구칠 때는 땅의 힘에 순종하며 반동만으로 풀쩍 뛸 뿐이다. 춤꾼의 자유의지는 오히려 숨기는 게 낫다. 불어오는 바람 따라 사지가 절로 움직이는 흐름을 즐기는 것이 곧 자연의 춤이고 물의 춤일 것이다.

지난 6월 27일과 28일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정기공연 <상선약수>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올랐다. '상선약수'는 《도덕경(道德經)》 제8장에 나오는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다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기꺼이 머문다. 그러므로 도에 가깝다.'는 의미로부터 가져왔다. 춤이 자연, 그 중에서도 물과 닮아 있음을 강조하는 격이다.

총 열 개의 춤을 모아 장편의 연작을 구성했는데 각 춤에 <일무> <태평무> <훈령무> <승무> <살풀이춤> <한량무> <산조춤> <탈춤> <장구춤>이 녹아있으니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은 아니고 전통에 대한 재구성, 재해석, 재인식의 결과물이다. 대부분의 춤이 한민족의 일상과 노동, 솔직한 감정표현으로부터 유형화된 민속춤이고 일무만이 조선시대 궁중의 제례로부터 비롯된 춤이다. 자연스럽고 유연한 민속춤의 전승 흐름을 물의 흐름과 빗대어 표현한다는 점에서 일무의 삽입이 어색하다고 느껴질 수 있다. 이 춤은 역대 왕을 모시는 엄중한 의식으로서 철저한 계획 하에 의미를 부여한 움직임, 소품, 구도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 전체의 흐름을 봤을 때 춤의 유형을 구분해서 맥락과 특성을 강조하기 보다는 조선이라는 땅에 이런저런 신분으로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춤을 배열해 놓고, 현대의 관점을 살짝 얹어 재구성한 격이라 이해된다. 거시적으로는 이 모두가 한국춤이라는 큰물의 흐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일무는 무대의 첫 막을 연 <프롤로그>에서 활용되었는데 8명의 무용수가 무대 곳곳에서 상징적인 움직임을 수행하고 그 중심에 느리고 무거운 왕의 춤이 존재를 드러낸다. 프로그램북을 참고했을 때 이 인물은 한국춤의 정신적 근간을 확립한 한성준의 모습이라는데, 무대만을 접했을 때는 신하들 사이 슬픔에 젖은 왕의 모습으로 읽힌다. 무용수들은 정제된 움직임에 속도와 방향의 변화를 가함으로써 특유의 각과 질을 만들어내고 일무 본연의 소재와 정서 는 크게 변형시키지 않는다. 단단히 훈련된 신체를 활용해 가장 완벽한 자세에 신속히 도달한 뒤 다시 정해진 동선으로 움직이는 양상이다. 회전무대를 사용함으로써 영화적 연출을 시도하고 무대 바닥에 빛으로 그려낸 동심원이 끝없이 만들어지며 흐르는 중에 주변에 선 무용수들의 춤에서는 생명력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중심에 선 왕, 혹은 한성준의 생명력만을 강조하고 주변의 호흡과 색감을 한꺼풀 빼내는 것이 의도라면, 왕에 의해 세상 모든 질서가 돌아가야만 했던 조선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된다. 조선의 예술관은 예악사상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적어도 궁중에서의 춤과 음악의 존재 이유는 안정되며 조화로운 질서를 만드는 데 집중되어 있었고, 그것이 곧 나라의 평화를 유지한다고 했다. 질서정연한 무용수들의 동선과 고정된 자세, 그리고 중심에 선 왕의 빛을 가리지 않기 위해 절제하는 사지의 움직임은 예악사상과 같은 맥락에 있다.

두 번째 무대는 한영숙류 태평무를 활용하여 왕비를 중심으로 선 궁중 여인들의 춤, <태평연월, 그 오래된 염원>이다. 손끝을 머리 위로 치켜들지 않고, 저고리 앞섶을 단아하게 품어 지켜내는 고상한 춤이 한동안 이어지는데 특정 박에서는 디딘 발로부터 전해지는 몸의 튕김을 잡아내며 일순간 정지하듯 강한 인상을 주고 다시 부드럽게 흐르는 등 긴장을 자아내기도 한다.

'상선약수' 중 '태평연월, 그 오래된 염원'(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태평연월, 그 오래된 염원'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사실 국립국악원 예악당의 무대는 형태적으로 한국의 민속춤과 썩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웅장하고 시원하여 인류의 대서사를 담아내기 제격인데, 관객의 눈길과 손길이 쉽사리 닿지 않는 규모라 소담한 호흡의 춤을 돋보이기에 어렵다. 무용수를 둥글게 보듬는 요람의 무대라기보다는 잘 깎아놓은 은쟁반 위에 유리구슬을 올려둔 듯 필요 이상으로 잘 보이게 만든 무대다. 여러 명의 무용수가 모여 세련되고 반듯한 춤을 출 때 빛날 것이고 힘 있게 북을 두드리며 뿜어낼 때 그 무게를 지탱해 줄 것이다. 관객은 무용수 한 명 한 명의 태를 명확히 볼 수 있는데 무용수 입장에서는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다.

다양한 작품의 연작 <상선약수>를 보니 무대와 춤의 궁합으로부터 불거지는 차이가 두드러진다. 왕과 신하, 왕비와 궁녀들의 질서가 강조된 <프롤로그>와 <태평연월, 그 오래된 염원>이 깨끗하게 정제된 조각품처럼 빛났으며 장구춤의 <조화로운 기억>이 깊은 무대의 잔향으로 번져 관객의 가슴을 울렸다. 또 전체 출연진이 한데 모여 각자의 춤으로 장식한 <에필로그>가 육중한 무대 위 펼쳐지는 대서사시로서 빛을 발했다. 그에 비해 살풀이춤과 산조춤의 재해석을 시도한 <마음이 들고 나니 인연의 바다라!>와 <흩어진 가락의 자유>는 관객의 폐부를 찌르거나 뇌리의 한 구석을 밝히는 인상으로서는 부족하고, 보기에 어여쁜 그림같은 춤에 머물렀다. 박자보다는 선율이 이끄는 음악에 한국춤을 얹으니 호흡과 박을 동시에 짚어내기가 쉽지 않은 모양새다. 중반부 이후 장단이 강조되면서 무용수들 역시 호흡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상선약수' 중 '조화로운 기억'(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조화로운 기억'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마음이 들고 나니 인연의 바다라!'(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마음이 들고 나니 인연의 바다라!'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흩어진 가락의 자유'(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흩어진 가락의 자유' (사진제공=국립국악원)

한량무를 활용한 <술잔을 피해가는 학>은 작품 중반까지 조용한 듯했으나 말미에 무용수들이 힘차게 활개하며 무대 앞까지 뛰어오르는 사위로 방점을 찍었고 관객으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높이 올린 조형물 위에 앉아 술잔을 입에 대는 한량의 뒷모습이 이목을 끌었는데 그의 흥겨운 심리를 춤추는 한량들이 대변하는 듯 재치있는 어울림을 선사했다. 오랜 시간 전승되며 본연의 진한 매력을 간직하는 춤들의 경우 작은 터치만으로도 그 매력이 배가 되는데 훈령무를 활용한 <일만년의 기상>과 탈춤을 활용한 <또 다른 나를 찾아서>가 본연의 매력에 현대적인 호흡을 더해 특유의 질감과 형태를 발휘했다.

'상선약수' 중 '술잔을 피해가는 학'(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술잔을 피해가는 학'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일만년의 기상'(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일만년의 기상'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또 다른 나를 찾아서'(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또 다른 나를 찾아서' (사진제공=국립국악원)

승무와 바라춤을 녹여낸 <법고는 그리움을 부르고>에서는 세련된 무대연출과 절제된 춤사위가 조화를 이루었다. 무용수들은 황색 바지저고리에 청록색 장삼을 입고 자색 고깔을 쓴 채 담백하면서도 육중한 무게의 무대를 연출했다. 불교에 귀의한 사람이 해탈에 이르는 기승전결의 내용은 익숙한 전개지만 기존의 종교의식무에서는 통상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던 색감을 의상과 조명으로 표현한 점이 돋보였다. 전통을 소화한 뒤 완전히 탈바꿈하여 해석하는 시도보다는 본질을 고이 담아 작은 변화를 가하는 데 무게를 둔 듯하다.

'상선약수' 중 '법고는 그리움을 부르고'(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법고는 그리움을 부르고' (사진제공=국립국악원)

한국춤, 민속춤이라는 범주에 속한 춤들일지라도 각 춤의 발생 배경과 전승 흐름이 다채로운 만큼 그 매력이 사뭇 달라 이들을 연작으로 꾸며냈을 때 관객의 집중도와 감동이 끊길 수 있다. 이를 염려했는지 <상선약수>는 각 작품의 시작과 끝의 경계선을 의도적으로 흐려 점진적으로 연결되는 흐름을 강조했다. 관객 앞에 할 일을 다 하고 소멸해가는 춤의 음악과 그 뒤 이어지는 춤의 음악이 부드럽게 겹치듯 전개되었으며, 무용수들의 일부가 늦도록 남아있다가 퇴장하거나 미리 등장하여 무대 뒤를 채우니 은은하면서도 품격있는 무대의 전환이 이뤄질 수 있었다.

공연의 백미(白眉)는 가장 마지막 무대인 <에필로그: 하나가 되기를 꿈꾸며>였다. 출연진 모두가 무대에 나와 각자의 위치에 선 채 어우러지는데 상징적인 춤동작을 짧게 보여주거나 정지된 자세를 한동안 선보여 움직이는 사진, 혹은 살아있는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자신이 출연했던 춤을 에필로그에서 다시 한번 수행하는 무용수들은 왕, 왕비, 신하, 궁녀, 한량, 기생, 연희꾼, 농민, 별감, 승려 등으로 분하여 과거 우리 땅을 살아냈던 인물들의 계층이자 사회적 역할을 묘사한다. 조선시대 사회상을 한 눈에 보는 듯, 역사 속 인물들의 삶으로부터 형상화된 춤들이 어우러지며 특유의 색채를 만들어냈다.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마무리였다.

'상선약수' 중 '에필로그'(사진제공=국립국악원)
'상선약수' 중 '에필로그: 하나가 되기를 꿈꾸며' (사진제공=국립국악원)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올해 첫 정기공연이자 작년 12월 부임한 김충한 예술감독의 첫 작품이었던 <상선약수>는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는 민속춤의 다양한 레퍼토리들을 무대 위에 배열하되,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변화를 주는 방식을 택했다. 물은 그릇에 따라 그 형태를 바꿀 수 있으며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순리따라 흐르니, 수많은 사건과 희로애락을 견디며 살아온 한민족의 삶과 춤은 물을 닮았음이 분명하다. 또한 군데 군데 고이는 물 웅덩이는 춤을 전승하는 춤꾼의 몸이다. 무대 위 수많은 인물과 춤이 등장했으나 그 인물들의 이야기를 무용극의 서사로 풀어내지 않았고, 각 인물이 살아낸 삶과 춤의 질적인 특성을 작품의 정서로써 표현했다. 각 작품마다 시적인 글귀와 제목을 붙여 춤의 색채를 더욱 진하게 전달하였는데, 춤의 발생 배경이라든지 작품 의도를 설명하는 것보다 감각적으로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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