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프리뷰=부산] 노영재 무용평론가 = 가끔 개인의 기억이 공연 감상의 리듬을 지연시킬 때가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처음 접한 즉흥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발레를 전공한 나로서는 ‘즉흥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일단 몸에 잔뜩 들어가 있는 힘을 빼야 했고, 잘 기억된 자세와 형태를 무너뜨려야 했고, 발끝에서 머리로 이어지는 풀업(pull-up)의 반대를 상상해야 했다. 여기까진 발레 아닌 다른 장르의 무용에도 해당할 수 있으나 그러면서 ‘자유롭게’ 추어야 하는 즉흥은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게다가 타인과의 신체 교감을 통해 움직임을 확장해가는 ’접촉 즉흥‘은 더욱 난감했다. 2000년대 초반 미국 대학원 과정에서는 접촉 즉흥에 대한 연구의 붐이 일었다. 즉흥이 적극적인 실천으로 나아간 것은 1970년대 포스트모던댄스 무용가들에 의해서지만 1990년대 후반 접촉 즉흥을 인류학적으로 분석한 신시아 노박(Cynthia J. Novack)의 저서 <Sharing the Dance>를 비롯해 수잔 포스터(Susan L. Foster), 앤 쿠퍼 알브라이트(Ann Cooper Albright) 등 무용학자들을 중심으로 즉흥 공동체에 대한 진지한 학문적 탐구와 실험, 치유에 관한 담론들이 쏟아져나왔다. 즉흥은 공연으로서뿐만 아니라 학문적, 실험적, 치유적 작업에 그렇게 뿌리를 내렸다. 비평가로서 지극히 개인적 느낌을 서술하는 것은 어색하지만, 이 글은 비평가로서만이 아닌 기록자, 참여자, 운영자로 오랜 기간 즉흥과 함께 해온 터라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비평이라기보단 경험으로 시작해 본다.
“나의 지금, 여기 존재 자체가 별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의 에너지는 각기 다른 빛으로 존재하는 별이 되게 한다.
별이 나를 깨우니 내가 별이었다.“ - <Tuning-ⅩⅧ The Star> 중에서
지난 9월 6일 부산시민공원에서는 부산대 무용학과 박은화 교수의 현대춤 <Tuning-ⅩⅧ The Star>가 열렸다. 올해로 18번째를 맞이한 박은화의 연작 <Tuning>의 주제는 ‘별’이다. 안무자가 “시대의 정체성과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한 구도의 작업”이라 밝혀 온 이 연작은 여섯 번째부터는 특별히 바람, 물, 불, 흙 등 자연의 요소를 하나씩 부제로 하여 그 정서와 교감하고 자기와 조율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서두에서 즉흥에 대한 사적 기억이 고개를 든 것은 이번 ‘별과의 조율’이 오롯이 즉흥 작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천의 역사나 학문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 즉흥춤이 활성화된 것은 십여 년에 불과하다. 그 시작은 서울이었지만 박은화는 연고지인 부산에서 부산국제즉흥춤축제와 소매틱 기반 춤 치유 작업을 통해 즉흥춤을 정착시키고 대중적으로 확산하는 데 힘써왔다. 이는 발레, 현대춤, 한국춤이 아닌 또 다른 ‘장르’로서의 춤이라기보단 몸의 근원적 감각을 일깨우는 즉흥, 혹은 몸과 마음의 연결을 추구하는 움직임으로서의 즉흥을 공연과 실습 등으로 다양하게 펼쳐온 작업이다. 일련의 작업 이력을 볼 때 즉흥을 통한 조율은 구도(求道), 즉 깨달음을 구하는 몸 작업과 어울릴 수밖에 없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의 <Tuning> 연작은 다양한 장소로도 주목받았다. 전통적인 공연장부터 복합문화공간, 갤러리, 야외공원 등 주제만큼이나 도시 속 다양한 공간에서 선보였기에 조율의 작업은 사색적이면서도 도전적이기도 했다. 이번 <Tuning-ⅩⅧ The Star>가 열린 장소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하다. 옛 하야리아 미군 기지의 반환으로 조성된 부산시민공원은 지역의 역사와 시대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일제 강점기 때는 조선총독부 경마장이었고, 광복 이후부터 2006년까지 주한 미군이 주둔했던 이곳은 지역민의 토로로 표현하자면 “이 번화한 도시 한 복판, 1세기 동안 남의 땅(!)”이었던 곳이다. 지속적인 반환 운동을 통해 2014년 시민의 쉼터로 돌아온 공원은 이제 과거 시간과 현재 문화가 공존하는 장소가 되었다. 특히 이날 공연이 행해진 곳, ‘기억의 기둥’은 미군 기지가 사용했던 나무 전신주를 재활용한 조형물로 부대의 흔적과 기억을 되새기는 공간으로 재해석한 곳이다. 군 부대의 산물이라고는 하지만 푸른 잔디밭 위에 박힌 10미터에 육박하는 수십 개의 기둥에는 시간이 누적된 나무의 낡은 질감이 살아있고 꼭대기마다 태양광 조명을 얹어 아련함을 더했다. 기둥 주위로 낮게 깔린 무대 조명들은 공중으로 길게 빛을 쏘아올리고, 전자음악과 보이스를 혼합한 즉흥 연주는 기둥이 형성한 공간을 현실과 거리 두게 함으로써 미지의 즉흥을 기대하게 했다. 연주를 맡은 모로코 출신 오마르 베나실라(Omar Benassila)는 2017년 제10회 부산국제즉흥춤축제(BIMPRO)에서 ‘경계 없는 뮤지션’으로 소개됐던 기억이 있는데, 하나의 언어가 아닌 물리적·심리적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언어로 소통을 이어가는 즉흥 연주가와의 재회 또한 반가웠다.
3장으로 구성된 공연은 크게 ‘나-나와 너-우리’를 구조로 하여, ‘관계와 공간의 확장에서 빛을 발하는 별’을 그린다. 실제는 즉흥 기반인 까닭에 무용수들은 어떤 하나의 약속된 구성이나 주제를 향해가기보다는 개인의 특성과 해석에 훨씬 집중하는 듯했다. 첫 장면은 12명의 무용수가 기둥 사이사이 일렬로 의자에 앉아 자기만의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그리고 한 명씩 달려 나와 앞쪽에 설치된 마이크에 대고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를 소개하며 시선을 끈다. “나는 산과 강이 아름다운 밀양에서 태어나...”와 같은 진솔한 자기 경험적 소개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나이 혹은 엉뚱한 별명으로 대신하며 연신 몸을 가만두지 않기도 한다. 만약 자신이 별이라면 어떤 별일까 혹은 내 안의 어떤 별을 끄집어낼 것인가에 대한 도발적인 탐색으로 읽혔다.

소개와 함께 흩어진 무용수들은 의자와 기둥을 일종의 지지로 삼아 자신의 에너지를 탐색하고 두드리는 듯 보였다. 그러다 서서히 고립과 한계를 느낀 것일까. 흩어진 의자가 하나둘 모여 더미가 됨으로써 나만의 공간이 사라지고 상대가 눈에 보인다. 즉흥이 듀엣, 트리오가 되고 거기에 접촉이 중첩되면 더 많은 감정과 서사가 읽힌다. 무용수는 각자 어디에선가 소품을 들고 끌고 등장하며, 의자가 사라진 곳은 실뭉치, 사다리, 가방, 토끼탈, 나뭇가지 등 다양한 소품과 함께 움직이는 무용수들로 채워진다. 소품의 선택은 개인의 자유인 것처럼 보이나 이질적인 소품을 다루는 (혹은 포기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또한 흥미롭다. 소품과 어우러져 복잡한 동선으로 확장된 춤은 어느 한 곳, 어느 한 무용수에게 집중하긴 힘들 정도로 산발적이나, 곳곳에서 느껴지는 인간 대 인간, 인간 대 물체, 인간 대 자연과의 연결과 교감의 에너지가 쉬이 감지된다. 대면의 결과는 연대이기도 하지만 타인에게서 나를 읽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결을 애쓰지만 끝내 연결되지 못하는 미완의 연결도 있다.

산발적 에너지의 발산과 충돌이 무르익고 큰 바위 모양의 오브제가 공간에 들어와 새로운 중심을 잡을 때쯤 등장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단연 눈길을 끌었다. 공간을 횡단하며 즉흥적으로 연주되는 바이올린의 칼날 같은 음색은 무용수와 섞여 움직임을 생성하고 지연되는 관계를 촉진하는 데 일조한다. 게다가 급작스레 터져 나오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울음과 웃음은 계획이나 연기가 아닌 ‘날 것’이 발산되었음을 직감할 수 있다. 바이올리니스트가 꺼낸 그 ‘별’은 무용수와 만나 공간 곳곳이 감정적 고조와 파열로 치닫는다. 평소 음악을 통해 치유 작업을 탐구하고 있는 이 바이올리니스트의 참여는 공연 당일 즉흥적으로 결정되었다고 하니 관계가 더욱 신선해 보이고 다시금 즉시성이 주는 춤의 묘미를 새겨보게 한다.

무용수들이 널려 놓은 소품들도 어느새 공간 가운데에 하나씩 쌓이며 ‘우리’의 공간으로 전환된다. 무용수들이 모이는 ‘우리’는 관객으로까지 확장된다. 관객들이 공연 공간으로 들어와 함께 춤을 추는 순간 문득 부산국제즉흥춤축제의 ‘난장 즉흥’이 떠올랐다. 즉흥춤축제에는 늘 공연 마지막에 관객이 모두 무대로 나와 함께 즐기는 ‘난장 즉흥’이 있다. 난장 즉흥과 유사함을 보였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공연의 피날레가 아닌 중간에 관객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공연의 일부, 즉 마지막 3장 ‘우리의 공간에서 빛나는 별’을 구성하는 듯했다. 그렇게 보니 ‘공연자로서’ 관객이 추는 춤의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세 가지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손에 손을 잡고 같이 뱅글뱅글 도는 거대한 원무, 일명 ‘막춤’과도 같이 억눌린 에너지를 몸에 실어 괴성과 함께 발산하는 사람들, 그리고 소품을 이것저것 탐색하고 만지며 무용수가 했던 움직임들을 모방해 보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예사롭게 지나쳤던 모습들에서 일종의 본능 같은 반복이 보인다. 난장판처럼 마냥 왁자지껄 즐겁게만 보아왔던 그들의 춤에서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불안(혹은 절실함), 체화된 자연의 야생성, 물체에서 닮음을 찾으려는 단단한 용기 등이 문득문득 읽혔으며, 이 아마추어 공연자들도 그들 마음속 별을 깨우고 있는 것 아닐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우리’의 의미, 각자의 색이 충돌하며 자연 속에 또 다른 자연이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한바탕의 에너지가 몰아친 후 관객들이 빠져나가고 무용수들은 시작점인 ‘나의 공간’으로 돌아가 분산된다. 조용하고 관조적인 태도를 지니며 공연은 마무리된다.


별은 서정적인 이미지나 종교적 비유가 강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 공연은 즉흥을 통해 발산하고 충돌하고 공명하는 ‘별’의 에너지를 보는 묘미가 더 컸다. 현실적 존재이면서도 우주적인 광대함을 품고 있는 하나하나의 별은 몸성을 일깨우며 자기 모습에 또 다른 색을 더해갔다. 즉흥 공연은 형식이나 서사를 통해 경이로운 예술적 감동을 얻기보단 이처럼 일상의 감각을 뒤엎어보고 무뎌진 감각을 단련시킬 수 있는 시간이 된다. ‘조율’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동적이지 않은가. <Tuning> 연작은 언제나 결과를 무한히 지연시키는 과정과도 같은 작업으로 다가왔다. 이번 <Tuning-ⅩⅧ The Star>는 즉흥의 ‘여기’ 살아있는 감각과 깨닫지 못했던 ‘미지’의 에너지가 실존하는 경험을 전했다. 전문 무용수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진지하게 체험하는 조율은 더욱 의미가 있었으며, 앞으로도 다양한 ‘삶의 변주’로 만나길 기대한다.